개봉 당일, 그것도 이른 아침에 영화를 관람하는 건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식 개봉 전부터 들려온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과 시사회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나의 기대감이 이토록 증폭된 적은 오랜만이었다.
개봉 이틀 전, 집 근처 영화관에서 <세계의 주인> 상영 스케줄을 발견하고는 바로 예매했다. 다소 성급한 결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보게 될 거 기왕이면 정식 개봉일에 누구보다 빠르게 관람하고 나오자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수요일 오전의 영화관은 시작 전 안정적인 적막감을 느끼기에 그야말로 최적이었다.
영화를 전부 관람하고 난 후 가장 감탄을 금치 못한 부분은 바로 극의 치밀한 짜임새이다.
<세계의 주인>은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커다란 반전이나 신선한 플롯을 갖춘 작품은 아니다. 대신 한 개인의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다정한 복선과 장치들을 통해 그려낸다. 각 인물이 나아가는 점진적인 성장 과정을 다루는 윤가은 감독의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는 지금껏 아동•청소년 인물들을 동일한 눈높이에서 여러 번 동행해 온 감독의 노련함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 모든 인물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상처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애써 등을 보이며 회피하지만 결국 끝에 다다랐을 땐 이 아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윤가은 그가 꾸린 세계 안에서는 그렇다. 아픔의 감정은 나이대 불문누구에게나 서툴 수 있다고. 이 감정을 표현하는 건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란 걸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됐다.
특히 주인이 그동안 축적되어 온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세차장 장면은 가히 명장면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강렬하다. 차가 세차 기계를 지나는 동안 태선을 향한 주인의 원망 섞인 울분은 씻기고 닦이고 쓸려 내려간다. 그렇게 건조까지 마치고 나왔을 때 손수건과 물을 건네준 후 담담히 주인에게 한 바퀴 더 돌지 않겠냐고 묻는 태선의 물음에 관객들은 왠지 모를 위로를 얻는다.
<세계의 주인>은 이미 영화 <우리들>, <우리집>으로 잘 알려진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내보이는 신작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인물들의 연령대를 10대로 높여 청소년의 세밀한 감정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인>은 개봉 전,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Platform) 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초청되어 첫선을 보였다. 이후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2관왕, 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증했다.
모든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아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다만 그 아픔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는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때는 드러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타인의 속내 깊숙한 곳에는 정의하기 어려운 내가 있고 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 나갈 거라 선언하는 주인을 감히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난 후 나는 이주인이라는 아이와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