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참 행복하지만 고민이 된다.
아침엔 서늘해서 긴팔을 입고 나오지만, 점심쯤엔 햇살이 뜨거워서 괜히 후회가 된다. 저녁에는 또 바람이 불고, 손끝이 살짝 시려온다. 하루 안에서도 계절이 몇 번씩 바뀌는 기분이다. 하지만, 길던 여름의 끝에 불어온 찬바람은 왠지 내 마음에 환기가 된다.
학교를 걸어가다 보면 나무들이 천천히 색을 바꾸고 있다. 아직은 초록이 남아 있지만, 가지 끝에서부터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완전히 낙엽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햇살에 비친 나뭇잎들이 조금씩 투명해지는 걸 보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맘때의 햇살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여름처럼 쨍하지는 않은데, 온도보다 기분이 먼저 풀린다. 수업이 끝나고 잔디밭을 지날 때, 살짝 더운 햇살이 어깨에 닿는다. 공기 중에 아직 남은 열기가 느껴진다.
그러다 바람이 한 번 불면, 그 열기가 금세 식는다. 따뜻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그 중간 어딘가의 온도다.
요즘은 하늘도 유난히 높다. 구름이 얇게 흩어지고, 그 사이로 맑은 파란빛이 길게 뻗어 있다. 그런 하늘을 보면 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된다. 공기가 맑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숨이 시원하게 들어오고, 머릿속도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카페에 앉아 바깥을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 옷차림이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막이나 후드집업를 입었고, 어떤 사람은 반팔이다. 계절이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는 게 신기하다. 나도 아침에는 추워서 겉옷을 챙겨 나왔지만, 오후엔 결국 벗어 들고 다닌다. 이게 딱 지금 날씨다.
낮에는 여전히 따뜻하지만, 해가 지면 공기가 달라진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닌데, 바람의 결이 바뀐다. 햇살이 사라진 자리엔 조금 더 묵직한 공기가 깔린다. 그 공기 속에는 하루의 피로와 저녁 냄새, 그리고 약간의 쓸쓸함이 섞여 있다.
그래도 그 쓸쓸함마저 싫지 않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분식집에서 어묵 국물 냄새가 풍긴다. 완전한 겨울 냄새는 아니지만, 그 뜨거운 김 속에 계절이 슬쩍 고개를 내민 것 같다.
손을 비비며 잠시 서 있다가,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바람은 선선했지만, 그 한 모금이 참 따뜻했다. 이런 순간들이 지금 계절의 온도 같다. 차갑지 않고,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요즘의 공기는 어떤 화려함도, 특별한 냄새도 없다. 그냥 담백하다. 하지만 그 담백함 속에 묘한 여유가 있다. 사람들의 말소리, 하늘빛, 바람의 온도까지 다 부드럽다. 뭔가 시작하기엔 늦고, 끝내기엔 아직 이른 계절.
그래서 그런지 괜히 마음이 가볍다.
이 계절은 오래 머물지 않을 거다. 곧 바람이 더 차가워지고, 나무의 색이 사라질 거다. 그 전에, 지금의 공기를 충분히 느껴두고 싶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럽고, 하늘이 높을 때, 그 짧은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긴 아깝다.
해가 기울면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낮의 따뜻함이 서서히 식고,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아직 겨울이 오기엔 이르지만, 그렇다고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그저 가을의 공기가 주는 여유를 있는 그대로 느낄 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더 춥기 전에, 더 바빠지기 전에, 가을의 선선함을 마음껏 즐겨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