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을을 맞이하는 가장 확실한 5가지 방법 [문화 전반]

오감만족의 계절, 가을
글 입력 2024.09.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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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절을 불러온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완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 구질구질하게 붙잡아도 봤지만, 수족냉증을 달고 사는 내겐 밀어낼 수 없이 확실한 온도로 체감된다. 여름을 더 강렬히 즐기지 못했다는 미련에 끝이 보이는 온기를 꼭꼭 씹어 소화시켰다. 뒤를 돌아보며 밀려오는 변화를 무방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이번엔 완벽한 가을을 맞이하는 오감 만족 일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홍콩 누아르 – 천장지구(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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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누아르 영화는 공기가 식어 내려앉을 것만 같은 가을에 찾게 된다. 그중에서도 홍콩누아르는 겪어 보지 않았던 과거의 화려하지만 공허한 도시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나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진 현재 상황에선 그 시절의 혼란스럽지만 아름다운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향수가 되어 준다.

 

<천장지구>의 트레이드마크인 웨딩드레스와 바이크 질주 신은 많은 콘텐츠들이 오마주하곤 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범죄 조직에 몸담은 남자 주인공 이화와 그의 인질이 된 여자 주인공 죠죠. 그 둘은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현실에 부딪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어가게 된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청춘들의 우정과 의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우리의 상실감을 자극한다. 모든 것은 순간에 그치기에 가장 찬란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찬 바람이 이불 속을 파고드는 가을밤, 샤워를 하고 제일 아끼는 파자마를 입고 맥주 한 캔을 곁들여 감상하길 추천한다.

 

 


2 플레이리스트 – 재즈와 인디


 

음악은 낯선 공간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우울하고 외로울 땐 익숙한 노래를 듣는 것이 위안이 되고, 좋은 날씨엔 상쾌한 노래를 귓가에 들려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가을에 필요한 노래는 어떤 것들일까? 필자는 차갑게 식은 마음을 단풍잎의 빛깔로 풍요롭게 채워주는 포근한 선율을 추천한다.

 

 

You’re Mine, You! - Chat Baker

 

 

You're mine, you

넌 내 거야, 너는

You are mine completely

넌 완벽하게 내 거지

Love me strong or sweetly

날 강하게, 아님 부드럽게 사랑해줘

I need you night and day

밤이면 네가 필요해, 물론 낮에도

 

로파이 재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천천히 고요하게 데우는 성질을 갖고 있다. 휴식이 필요할 때, 혹은 집중이 필요한 상황의 백색소음으로 제격이다.

 

 

This Happy Madness – Stacey Kent

 

 

What should I call this happy madness that I feel inside of me
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이 미친 행복함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Some kind of wild October gladness that I never thought I'd see
내가 볼거라고 생각해 본적 없는 10월의 행복함
What has become of all my sadness all my endless lonely sighs
나의 모든 슬픔과 끝없는 외로운 한숨은 어떻게 된걸까
Where are my sorrows now?
내 슬픔들은 어디 있는거지

 

속삭이듯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악기가 된다. 보사노바 리듬에 가볍게 눈을 감고 몸을 맡기며 알 수 없이 차오르는 10월의 행복감을 함께 만끽하길 바란다.

 

 

K.– Cigarettes After Sex

 

 

We had made love earlier that day with no strings attached

우린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했었어

But I could tell that something had changed how you looked at me then

하지만 난 그때 니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Kristen, come right back

크리스틴, 내게로 돌아와줘

I've been waiting for you

난 기다리고 있어

To slip back in bed When you light the candle

니가 불을 켜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길 말이야

 

마음이 뜬 게 눈에 띄게 티가 나는 연인에게 전하는 애간장 타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싱숭생숭한 가을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K 같은 이가 있다면 정신을 차리시기를!

 

 

꿀차 – 우효

 

 

하루는 차를 마시려고 했어 물을 끓이려고 주전자를 켰어 그러다 잠깐 네 생각을 했어

잠시 눈을 감고서 꿀 같은 향기를 들이 마셨을 때
내 볼을 적시는 한 방울 두 방울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기분을 따라
이상하긴 해도 좀 슬프긴 해도 나 왠지 눈물이 나 너무나 달콤해서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환절기엔 따뜻한 우유에 꿀을 타 마시는 게 좋다던데. 가을의 변덕에 꿀차를 타 마실 때까진 그 사람이 생각나겠죠. 너무나 달아서 아릴 수도 있다는 걸.

 

 

Datoom - 백예린

 

 

그와 다툰 뒤엔 난 시집을 꺼내 읽어
모자란 내 마음 채우려 늘 그래
그가 없어서 부족한 건데 그래
그와 다툰 뒤엔 난 물을 벌컥벌컥
허무한 내 안을 더 더 채우려
그가 가고서 속이 텅텅 비었네

 

불안하고 공허할 땐 좋아하는 시집을 꺼내서 빈자리를 채우는 습관을 들여보자. 눈에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다. 아직은 가을이니까.

 

 

 

3 뜨개질 - 바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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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연희동을 걸어가다 보면 지나칠 수 없는 곳. 바늘이야기는 다양한 뜨개실과 부자재를 파는 곳으로 이것저것 구경할 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내 키보다 높은 진열장에 놓인 몽글몽글한 실뭉치들이 꺼내 주길 기다리고 있다. 도안에 따라 만들어진 완성품이 함께 진열되어 있어 나도 이번 가을엔 따뜻한 목도리를 떠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2층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으니 원하는 실을 사서 뜨개질을 하며 도라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보는 것도 좋겠다. 향긋한 차와 사람, 그리고 보드라운 실 가닥을 소담히 엮는 순간은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줄 것이다.

 

 

 

4 단팥죽 –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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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다시 말해 하늘이 높고 맛있는 계절 음식들이 넘쳐나 살이 찌는 시즌이란 말이다. 각자 선호하는 간식이나 식사류가 존재하겠지만 이번 가을엔 단팥죽을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최근에 꽂힌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팥이 들어간 건 죄다 싫어했다. 퍽퍽해서 목이 막히고 집에서 만들어 준 팥죽은 단 맛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는 너무 단 음식은 쉽게 물려서 도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외식으로 단팥죽을 먹었을 때 몸과 마음이 함께 녹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담긴 스토리와 감정도 중요하다.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게 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혹시 올 가을에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은행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 소중한 사람의 손을 붙잡고 삼청동을 거닐다 달콤한 단팥죽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5 향수 – 구어망드


 

단팥죽과 같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우린 향으로도 맛을 재현할 수 있다. 달달한 디저트 향을 테마로 만든 향수를 ‘구어망드’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어로 ‘미식의’, ‘미식가’를 뜻하는 단어다. 바닐라, 초콜릿, 시나몬, 캐러멜 등 다소 찐득하고 무거운 향들이 대부분이라 주로 건조한 가을부터 많이들 찾게 된다. 서늘한 공기를 싫어하는 내가 가을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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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말론 진저 비스킷

 

 

미슐랭 평가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음식에 대한 지식과 식견임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음식을 먹었을 때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함’이라는 항목 또한 자격요건으로 요구된다. 이처럼 음식은 스토리텔링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추억의 매체다. 따라서 음식을 모티브로 만든 향은 추억을 되살리는 기능을 자연스레 할 수밖에 없다.

 

친한 친구와 카페에서 맡은 달달한 버터향, 집에서 엄마랑 오븐에 구웠던 쿠키의 향, 할머니집 찬장에서 꺼내 먹던 딸기잼의 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구어망드 향수는 코끝이 시려지는 계절에 동화 같은 장면을 그려낼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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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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