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최근 수업에서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름다움은 경외심을 동반한다'ㅡ계속해서 입가에 맴돌았음에도 어쩐지 음성으로 내뱉지 못했던 문장이다. 이제야 입을 뗄 수 있겠다. 나는 어떠한 작품을 대할 때, 아름다움의 기준을 추와 미에 두어 판단하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손을 뻗기도 죄스러워지고 두려울 때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경외심. 자신보다 한참은 더 고귀한,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존재 앞에서 피어오르는 이 감정은 어느 순간 ‘욕망’이라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개인적 욕망, 혹은 물질적 욕망. 도둑맞은 미술관은 주로 이 중 ‘물질적’ 욕망을 위해 미술품을 훔친 이들의 행적과 이에 희생된 작품을 나열한 책이다. 첫 번째 챕터는 도둑맞은 미술품에 대해, 두 번째 챕터는 되찾은 미술품에 대해 다룬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역시나 나치의 예술품 대량 약탈 사건이다. 나치의 잔악한 횡포로 당시 문화유산에 대한 광범위한 약탈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의 미술품을 약탈한 것은 물론이고, 독일이 점령했던 여러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 교회나 궁전, 민간인의 집에서도 수없는 작품을 약탈해 갔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두 번의 입학 거부를 받았다. 이에 당대 화가들에게 열등감을 품던 히틀러는 예술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당시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을 ‘퇴폐’적이라고 폄하한다. 그러한 나치 이데올로기 속에서 탄생한 용어가 ‘퇴폐미술’이다. 나의 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현대미술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총리가 된 이후에는 자신의 미적 이상을 나라에 강요하며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2만 점에 달하는 ‘퇴폐적’인 미술품을 팔아버리거나 폐기하라고 요구한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마자 시작된 유대인 탄압으로, 탈출하지 못했던 독일계 유대인 미술품 수집가와 판매상들은 소유물을 강탈당하고 살해되었다. 약탈한 미술품들 중에는 저명한 화가의 걸작들도 있었으며, 일부는 전쟁 자금의 조달을 위해 팔려 나갔고, 일부는 개인 소장품이나 독일 미술관을 위해 보관되었다. 당시 나치가 조직적으로 약탈한 미술품을 라우프쿤스트라고 불렀다.
나치의 현대미술 탄압에는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등 국가주의적 이념이 크게 묻어있었다고는 하나, 다른 시각으로, 그 출발점에 히틀러의 ‘열등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곱씹어 보았다. 자신의 예술관을 이해받지 못하던 히틀러는 권력이 쥐어지자마자 본인의 일방적인 예술 탄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폭력적으로 만들어낸 ‘이상’이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이 맞을까. 히틀러의 행동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의 열등감에 중점을 두어 보자. 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이상을 비틀어버린 것은 아닐까ㅡ하고.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오로지 단조롭고 폭 좁은 구상화 양식만을 그릴 수 있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기에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는 용어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대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실패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지워버려야만 한다. 그렇게 히틀러는 ‘퇴폐미술’이라는 용어로 국가와 자신을 세뇌한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사상을 바꾸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함께 '퇴폐 미술전'을 개최한다. 현대미술은 비난받을 ‘퇴폐적’ 예술일 뿐이고, 내가 고른 것이 옳은 예술이며,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이러한 예술에는, 경외심이 들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