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가 바다를 떠난 사이
10월 17일 밤 10시, 이제 이 글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웃음이 났다. 호텔의 조그만 원형 테이블 앞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나는, 어김없이 무언가를 길게 생각하고 있었다. 뭘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곳곳에서 글을 생각하고 내려놓는 낭만주의자가 되어 버렸을까?
모두가 잠결에 놓인 사이, 모두가 바다를 떠난 사이, 나는 아직도 10월 16일의 바다를 떠올리고 있다. 그날의 무대를 이끌었던 협연자도, 진행자도, 교향악단도, 관객들도 이미 지나간 어제를 ‘수고했다’며 털어냈겠지만, 나는 그날을 내 앞에 세워두고 “자, 이제 수고해 보자”며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왜 이 일을 자청하는가? 이유는 없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시켰는가? 내가 시켰다.
왜 시켰는가? 그냥. 진짜 그냥이다.
며칠 전, 한밤의 카페에서 희한한 이름의 그린티를 마시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들었다. “샘은 몰두하는 게 꾸준하네요. 그러면 클래식도, 언젠가 다른 게 생기면 다른 걸로 또 넘어가는 거예요?” 그 질문에 어떻게든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의 나를 보면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럴지도.”
어떤 것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고 느끼면 ‘아, 이만하면 됐다’ 하고 손을 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다음 것을 찾았다. 그러니 요즘처럼 무언가에 깊이 시선을 빼앗겨 있는 나날엔, 문득 그다음이 궁금해졌다. 다만 이번만큼은 스스로에게 여러 기대를 걸고 있다.
언제까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될까.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좋은 연주를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다른 곳에 눈 돌릴 수 없게.
흥미를 잃는다는 건 사소한 영역부터 커다란 마음까지 은근히 크게 흔들어놓지 않던가. 재미없다며 쉽게 등을 돌리지 말고, 할 수 없다며 완전히 단정하지도 말고, 꾸준히—이렇게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머물러야 한다. 어디에? 글과 소리와, 내가 바라본 시선 안에 무엇이 남아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잠결에 놓인 사이, 모두가 바다를 떠난 사이, 아직도 10월 16일의 바다를 떠올리고 있다.
창문 커튼을 살짝 젖히기만 해도 찰싹거리는 밤바다가 옆에서 길게 선을 긋고 있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2. 어디요? 포항?
제1132회 하콘(하우스콘서트)이 열렸던 9월 22일, 무대의 주역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룻바닥 위에서 기다리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지역 이름을 들었다. 포항에서 최애가 공연을 한단다. 그것도 협연 무대란다. 그 순간 어떤 곡이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협연’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묘한 직감이 있지 않은가. 이번 공연은 반드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포항행을 또 고민하자 “에이, 이미 많이 보셨으면서” 하는 말이 옆에서 들려왔지만, 속으로는 이미 반쯤 정해져 있었다. 아, 이번에도 가겠구나.
ⓒ 유진
어떤 공연인가? 지난 10월 16일, 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대공연장에서 서초교향악단 초청 연주회가 열렸다. 서초구와 포항시의 자매도시 교류 일환으로 마련된 무대였고, 클래식과 국악이 결합된 프로그램이었다. 서초교향악단(지휘 배종훈)은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왈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 이지수의 아리랑 랩소디를 연주했고 바이올린 솔로는 임동민, 국악 협연에는 가야금 연주자 노향이 참여했다.
갈 수 있는 공연이라면 응당 찾아가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내보자고 스스로 약정하지 않았던가. 마침 퇴사 후 가족들과 멀리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먼저 다녀온 친구가 포항의 영일대가 산책 코스 조성이 잘되어 있다고 알려줬다. 뭐야, 그럼 겸사겸사 같이 가면 되겠네. 오랜만에 여행 가이드로 일해볼 시간까지 주어진 것이다.
포항은 꽤 괜찮은 관광지였다. 택시도 금방 잡혀서 비루한 체력이 금세 소진될 일도 없었다. 거기다 이번 여행엔 가방마다 간식을 하나씩 쥐고 다녔다. 현지 직장인들이 드나드는 순대국밥집에서 든든히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하고, 죽도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영일대 근처 숙소까지 산책삼아 걸어갔다.
걷다 보니 친구가 말해 준 ‘시민제과’도 발견했다. 베이커리에서 파는 찹쌀떡과 과자가 때마다 ‘기빨림 지수’를 막아주었다. 미묘하게 고단할 때마다 달콤쫄깃한 걸 입에 물면 사람 마음이 넉넉해지는구나. 달달한 여유 덕에, 괜히 이런 말도 나온다. “음—버스가 아직이네. 조금 더 걸어가도 되겠다. 정 안 되면 택시 부르면 되지?”
다만, 날씨운은 약간 애매했다. 서울을 출발할 땐 하늘이 맑았지만, 도착할 즈음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일주일 내내 흐리다는 예보를 봐서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여행 둘째 날에 갈 호미곶이나 가옥거리에선 날이 맑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어떻게 되든 괜찮지만, 부모님 예쁜 사진을 건지려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17일 새벽, 아버지에게 깨워져 창밖을 보니 새파란 하늘과 구름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대박. 맑다.
ⓒ 유진
17일, 택시를 타고 ‘상생의 손’을 보러 달려갔다. 포항 택시 기사님들은 느리기보다는 달려 나가길 택하셔서 예상 금액보다 몇백 원이 덜 찍혔다. 호미곶으로 향하는 동안 기다란 도로가 쭉 뻗어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서 옆 창문과 앞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16일의 공연을 떠올렸다.
특히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와 배종훈 지휘자가 주고받던 시선이 자꾸 생각났다. 내가 봐 온 오케스트라 무대 중에서도 유난히 협연자와 지휘자의 시선 교환이 자주 목격되었고, 호흡을 함께 맞춰가는 현장감이 뚜렷했다. 협연자는 지휘자를 바라보고, 지휘자는 단원을 이끌면서도 고개는 늘 협연자를 향해 있었다.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포인트에서는 눈빛을 맞교환하고, 두 번의 끄덕임 뒤에 시선이 갈라졌다. 그 장면이 1악장부터 이어지니 욕심이 생겼다. 저 장면, 기록하면 좋을 텐데… 평소보다 더 길어진 욕심으로 나는 무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3. 이유를 찾아
ⓒ 유진
도저히,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왜? 그날의 공연장이 내게는 정말 비협조적이었다.
무대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양 벽을 타고 강한 선으로 확장돼 ‘쿵—’ 하고 내게 안겨야 하는데, 이곳은 그 확장감을 끝내 제공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나와 이 공간은 합이 맞지 않았다.
너무한 게 짱구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렇게까지 방임한다고? 이렇게까지 건초 같은 공연장은 또 처음이었다. 토마토홀과 함안문화예술회관, 그리고 오늘의 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대공연장까지—소리를 건조하게 받아치는 공간을 연달아 겪으며 새로운 유형의 맞받아침을 배웠다.
“좋은 장비 던져 놓고 알아서 하라”는 듯, 우아한 아이보리색 홀 한가운데 연주자를 세워두고 문을 쾅 닫아 버리는 그림을 넘어 16일의 공연장은 아예 현관문만 달칵 열어 주고 다들 퇴근해 버렸다. 엥, 뭐지?
공연장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무대 배경과 한눈에 담기는 시야도 좋았다. 다만 공간의 용도 자체가 악기 소리를 맞받아치기엔 너무 건조했다. 이곳이 과연 소리를 듣는 이를 향해 설계된 공간이 맞나, 약간 단절시키는 건가 싶었다.
협연자의 소리를 크게 듣겠다고 무대 가까이 앉은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대와 객석을 한 줄로 이어 주지 않는 ‘방임’은 처음이었다. 무대가 아무리 그림을 그려 앞쪽으로 보낸다 해도 소리는 나보다 훨씬 앞선 곳에서 끊겼다.
전체 양상을 크게 그려 보려 하면 악기 단위로 툭툭 끊겨 들어와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하나의 생각 줄기를 길게 이어 붙이며 공연을 기억하는데, 이날은 머릿속 30%쯤이 “이 공연장, 진짜 건조하다”만 맴돌았다. 소리에게 무자비했고, 사람에게도 그랬다.
나는 유달리 공기가 특이한 장소가 아니면 콧물이 나거나 눈이 뻑뻑해지지도 않는데, 이날은 선율보다 먼저 빡빡한 공기가 눈을 공격해 이슬부터 맺혔다. 공연 중반엔 오른쪽 코까지 막혔다. 별의별 기막힘은 겪어 봤지만, 코막힘은 또 처음이었다.
공간이 건조하다는 게 거창한 말은 아니다. 어떤 장소를 가면 특정 음이 유독 듣기 좋게 들리는 곳이 있지 않나—화장실, 성당, 지하주차장, 텅 빈 복도 같은 곳.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공간이 딱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저 끝 사람에게 말을 던졌는데 말의 그림자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다. 웅웅— 와이파이 모양으로 멀리 닿길 기대했지만, 중간에서 끊기거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특히 멘델스존 2악장에서 관악이 한두 번 치고 나오는 순간마다, 성량의 문제인지 공간의 특이점인지 왼쪽 귀가 아득해질 만큼 크게 다가와 깜짝 놀랐다. 이게 맞나? 큰 건 큰 대로, 작은 건 작은 대로 서로 내버려 두는 느낌. 아—참 특이한 공연장이었다.
이러니 그날의 자리는, 이래나저래나 황무지 한가운데였다. 야외 클래식 공연도 만만치 않게 별로였지만, 이곳은 또 달랐다. 곡은 좋고 연주는 최선을 다하는데, 듣는 이의 집중은 좀처럼 이끌리지 않았다. 야외에서 귓속말하면 누가 듣겠나. “쟤네 뭐 하나?” 하다가 금세 자리를 뜨지.
다양한 공간에서 악기 소리를 듣는 일은 좋지만, 연주를 명확히 담아내지 못하거나 생각보다 소리에 무심한, 무뚝뚝한 황갈색 벽을 만나면 “아, 너무하네—” 싶어진다. 이런 사태이니 나는 여러모로 시험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무엇을 들어도 감흥은 30%쯤 내려앉고, 전체 그림을 판단하는 시야는 뿌옇다. 설상가상, 오늘의 협연곡 중 하나인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최애 곡, 최애 연주자가 선 무대인데… 집중, 또 집중해야 했다.
내가 공간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포기할 성정도 아니다. 선율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면, 다른 방향에서라도 기록을 많이 해 두자—그 마음으로 갖은 애를 다 썼다. 가만히 있거나 잊어버리면 나만 손해다. 큰 숲보다 개별 나무에 집중해 보자. 그러다 보면 결국, 무언가가 보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이 단절의 선을 건너기 시작했다.
하차투리안 – 〈가면무도회 왈츠〉
ⓒ 유진
처음부터 대놓고 ‘듣기 좋은’ 곡이라서일까. 공간의 역할 부재가 더욱 또렷했다. 장중하고 매혹적인, 우아한 발걸음을 그렸는데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소리와 소리 사이를 받쳐 줄 ‘무언가’가 비어 있어 퍽 당황스러웠다. 예습한 버전에서는 분명 있었던 뒷그림자가 온데간데없다.
왈츠 스텝을 밟으며 다음 이어짐을 긋고자 하는데… 하는데… 약간의 개인전이다. 산책길에서 넓은 깃털 부채로 커다란 무도회 장면을 펼치려 하는데, 더 넓게 뻗지 못한다. (안 도와주는데요.) 진출하려 하지만, 구조적 한계 앞에서 저 소리와 이 소리가 미묘하게 따로 논다.
얘는 빡빡하고, 쟤는 파도를 닮아 가고, 또 다른 쪽은 씩씩한데 이쪽은 쿵쿵거린다. 아주 살짝씩 분절된다. 외롭다, 정말. 소리만 외로울 줄 알았는데, 듣는 이까지 분리된다.
거대한 파동을 데려오려 했는데, 결과는 오르골 속 작은 파도 하나였다. 음악은 분명 ‘왈츠’인데, 홀은 끝내 그 스텝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이 곡의 미덕이, 이 공간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멘델스존 –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작품 64
ⓒ 유진
이런 사태에서 나의 최애는 그렇게 두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멀스멀 눈치채기 시작하는 이 시점. 그는 내게 ‘이어짐’과 ‘기다림’의 추억으로 점철된 이 멘바협,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어떻게 설득시켜 줄 것인가?
그나마 이 공간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이 하나 있다면, 협연자에게 유독 하얀 조명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전체 무대가 노란빛으로 가득한데, 바이올리니스트 위로는 아주 차갑고 맑은 흰빛이 하나 탁— 내려와 있었다. 그 풍경이 묘하게 초연했다.
온갖 평화를 상징하는 파스텔톤의 봄·여름빛 멘델스존 위에 차가운 조명을 얹어 두다니. 그런 대비가 이 무심한 공간을 오히려 색다르게 만들었다. 애초에 내가 품고 있던 불만이 사실은, 이 공간만이 줄 수 있는 특이한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선이, 협연자로서 함께 이끄는 자로서 무대에 서 있지 않던가. 이번 라운드에서는 적어도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이 건조한 톤에서도 버텨 낼 만큼 단련된 내가 아니던가. 이쯤 되면, 그저 즐기면 되는 게임이었다.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 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
보통 오케스트라의 기다림과 예열 이후에 협연자가 등장하지 않던가? 이 곡의 1악장은 꽤 빠르게 메인 선이 나타난다. 서두부터 길잡이가 줄을 확 채어 가 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이 연주가의 소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청자가 향유할 시간을 충분히 내어 준다’는 점이다. 그 ‘충분히’가 이 메마른 zone 안에서도 살아 있으니 큰 도움이 되었다. 이미 내어 주던 것이 있으니, 끝부분이 조금 잘린다고 해서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 소리가 끊긴다. 미묘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만을 지워낼 수 있었다. 애초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파란선 위에서 노니는 것이니 지루할 틈은 없다. 오히려 평소였다면 유순하게 흘러갈 부분마저, 이 건조한 빛 아래에서는 전부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묵음이 생략된 것 아니겠나? 평화롭긴 한데, 수평의 노란빛이 아니라 살짝 대각선으로 흐르는 차가운 시냇물이다. 막 달려나가기보다는, 소리가 울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버티기로 작정한 상태이니, 짚고 나갈 지점들—특히 높은 음역에서 빛을 닮은 지점들은—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이 좋겠다.
아래로 내려올 땐 가장 밑 지점에 포인트를 둔다. 공명으로 넓히기보다는 오히려 강조를 두어, 소리가 외롭게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듣는 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감춘다. 빠르게 지나가면 들키니, 조금 느슨한 속도로 이 자체를 음미하라.
소리마다 숨을 들이쉬게 해 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이만한 평화도 없다. 1악장을 지나가다 보면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예쁜 회오리를 그리다가 끝부분에 여유를 풀어내며 짧게 너풀거리다 아스라히 이별하는 구간이 있다. 소리의 시작과 처음 음의 크기가 거의 동일하게 들려오니 그만의 묘미가 있다.
짧은 발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럴 때는 소리에 사람이 맞추는 수밖에 없겠다. 이만큼이나 놓여져 있으니, 툭— 툭— 음표를 더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멀리서 다가올 수도, 가까이 있다 사라질 수도 없다면 음표의 넓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수평이 막혔다면 수직으로라도. 파동이라면 위아래라도 영역을 넓혀야 하지 않겠나?
마냥 평화를 그리기보다는, 조금 더 아득한 마음을 이곳에 내려놓는 것이다. 첫음과 끝음이 결코 사라질 수 없다면, 되레 딱 두 계단만 더 높게 올라가면 된다. 성량을 조절할 수 없다면, 애초에 작게 말하고 서서히 커지면 된다.
분절된 소리의 세상에서 분투하는 일이다. 조명이 없는 곳에서 빛줄기 하나를 쏟아내야 한다. 평화를 그리기엔 턱없이 자원이 부족하다면, 더 거세게 노래하라.
세차게 추워져도 좋고, 평화로운 너울을 그릴 수 없다면 작렬하는 두드림으로라도 버텨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세기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으니.
내 목 끝까지 마이크가 들이대졌으니, 독백체로 나아가자. 더 긴 가로선의 8자를 그리다 보면 카덴차가 등장할 것이다. 그는 도대체 이 고난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그래, 더 높고 넓게 끝 지점을 짚어나가면서 가는 거다. 선명도를 높여라. 끊길 틈을 주지 마라. 성량으로 드높여라. 애초에 울려 줄 거라 기대하지 않고, 자잘하게 짚어나갈 수 있는 구역마다 조명을 켜 주면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두터워졌다가, 매섭게도 한참을 얄상해져라. 고지식한 공연장 안에서 끌어올 수 있는 포인트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 보였다. 이렇게 개성적인… 분명 성량은 큰데, 이만큼 초연한 멘델스존은 처음이었다.
협연자가 미묘하게 시간을 두고 나아갈 때가 있었고, 관악은 선명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임동민은 시리도록 긴 노래를 부르면서도 무대선과 객석선을 어떻게든 이어내려 했다. 평소보다 훨씬 속도감을 자제하며, 개별 단위마다 신경을 집중한다.
어차피 여기선 후진도 못 한다. 아주 내밀히 포인트를 주며 잔향을 만들 수도 없다. 취사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던 와중, 1악장이 마무리되고 2악장 초입에 이르러 예상치 못한 관객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관객 A의 2차 고난길이 시작되었다.
II. Andante – 느리게
그런 와중에도 멘델스존의 노래는 이어진다. (어떻게든!) 그래, 어떻게든 해낸다니까? 드디어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온다. 오랜만에 작은 단위에서 여기까지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만큼 좋은 바이올린을 금세 새초롭게 만들어 버리는 이 공간이, 다시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조금만 안아주면 안 되겠니? 정말로?
이 2악장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협연자와 지휘자의 시선 교환이었다.
진짜— 우리가 언제 ‘협연’을 ‘협연’이라고 느끼는가.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다음 파트의 중요 지점을 사전에 지시하는 모습은 늘 보던 장면이지만, 협연자와의 호흡 장면은 협연곡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은 서로의 템포와 순간들을 직접 교환하며 주고받았다. 사실은 그들의 이중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게 나눴다.
지휘자의 소리는 단원들을 통해 흘러나오고, 협연자는 자신의 악기로 목소리를 드높인다. 꼭 앙상블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고즈넉한 긴 바람을 가져올 수 없다면, 얇지만 분명한 세기에 톤을 맞춰 아랫선에서 평화롭게 노래하면 된다.
우리끼리 놀면 될 일이다. 약간 각자, 각자의 자리에서. 오히려 외로우니까 좋다. 이만큼 초연하고 담담한 개별적 내려앉음을 어디서 또 목격할 수 있겠는가. 하나하나가 알아서 서정성을 띄워 놓고 이야기를 건넨다.
III. Allegretto non troppo – Allegro molto vivace – 지나치지 않게 가볍게, 이어서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
지나치지 않게 나아가려 한다는 게 첫 서두부터, 화음이 이어지는 길목까지 다 느껴졌다. ‘먼저 휙 달려나가면 분명 놀라시겠지?’ 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었을까.
나야 뭐, 금세 지나가 버리면 아쉬우니까 좋긴 한데, 내가 머릿속에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멘델스존은 이것보다는 빠른 속도라서 내 기억의 단위보다는 다소 느릿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중간 지점에서 한두 번씩 빨라지려는 기점이 보여서, 그 순간만큼은 속이 시원했다.
나는 좀 야생마 같은 멘델스존에 익숙해져 있어서였겠지. 규정되고 획일화될수록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니, 차라리 하던 대로 내려앉든지, 아니면 확 달려가 버리든지, 하나만 해줬으면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공연장은 진짜 개별 악기의 형체감을 다 살려낸다. 쟤는 쟤대로 주인공을 만들어주고, 얘는 얘대로 돋보이게 도와준다. 살짝만 더 물러나 줄 수는 없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진짜, 소리를 이렇게까지 방임하는 공간은 내 취향이 아니… 지만, 연주자들이 어떻게든 애써 내주니, 끝까지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앙코르 –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3악장
ⓒ 유진
명동성당 이후로 이게 얼마 만인가. 그때보다 더 넓은 영역, 더 먼 장소에서 만나니 이만큼 반가울 수가 없다. 외로운 공간에서 텐션이 조율되며 울려 퍼지는 앞뒷길이, 오히려 풍요롭게 다가왔다.
사그라질 때도, 세 마디의 숨소리를 내려놓을 때도, 애초에 단선인 줄 알았던 것들이 이어짐과 이어짐으로 엮인다. 재미난 일이 가득한 오늘의 새벽녘이다. 함께였을 때도 외로웠으니, 혼자 있어도 외로운지 모르겠다.
이지수 – 아리랑 랩소디
ⓒ 유진
이 공간은 강한 소리는 강한 대로 내뱉게 만든다. 그래서 저 가야금이 뜯기는 순간, 귓청을 팍— 울려 버린다. 한 방이 있는 악기다. 특유의 내려앉음에 강렬한 기세가 섞여 있는데, 연주자는 그저 가볍게 양팔을 노닌다.
미묘하게, 단원들의 소리가 이 곡 안에서 그전보다 더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합의 일치도가 높아졌다.
아까는 없었던 바람 단위가, 이번에는 저 악기와 합을 제대로 맞춰 나가고 있었다.
가야금은 진짜 통나무를 닮은 물방울 소리를 가지고 있다. 가볍진 않은데, 산뜻하기도 하다. 뭉텅이만큼 거대한 소리를 내는데, 무겁지가 않다. 둘레길 산책 같다.
시작은 다소 땅을 울려댔다면, 그다음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려 특유의 리듬감을 더한다. 이 대목에서 소리 조절이 한층 세밀해져 있었다. 뭔가 더 긴 합으로서 응시해 보고 싶었는데, 우리는 금세 이별했다. (곡이 짧구나…)
멘델스존 – 교향곡 제4번 가장조 “이탈리아"
ⓒ 유진
I. Allegro vivace – 빠르고 활기차게
관악기가 이만큼 숨 가쁘다. 고즈넉하고 가라앉은 평화보다는, 오히려 분위기를 둥둥 띄우려는 의도일까. 악기들이 각자 영역 안에서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서로 방 한 칸 나눠 가진 채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이다.
올곧은 하나의 선율보다, 요소들의 행진을 지켜보게 된다. 애초에 온전히 하나로 융합되기엔 한계가 있는 공간 아니던가. 저쪽에서 자잘한 대각선을 그으면, 이쪽에서는 아래에서 소용돌이를 그려 주면 그만이다.
공간이 다정하지 않으니, 이에 맞대응하면 될 일이다. 이만큼 한가운데서 애를 쓰는데 벽과 벽이 오히려 그들을 가둬 두니, 버텨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음색이 진한 관악은 길게 너울거리며 나아갔다.
공간이 투박하니, 강한 성량을 지닌 것들이 기세를 보일 때 오히려 재미가 있다. 가장 앞의 현악은 그 뒷결을 사근히 받쳐 준다.
II. Andante con moto – 느리지만 움직임을 유지하며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 느긋하기보다는 꽤 절제된 경쾌함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득함보다는 현실적인 길을 택한 모습이랄까. 풍경보다는 사람의 품 안에 더 가깝다.
현악의 짤막한 의지들이 반복해 쌓여 갈 때, 묘하게 사람 냄새가 난다. 딱딱하고 인공적이라기보다, 흐를 자는 유순하게 흐르고, 박을 자는 견고하게 두드린다.
소리도 사람도 외롭게 하는 공연장,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연약한 것들끼리 한데 모여 작당모의를 한다. 큰 목소리로 기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생각’을 긁어모아, 혼자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선언문’을 하나씩 쌓아 간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묻고 싶다. 너희는 지금, 무엇을 쓰고 있나?
III. Con moto moderato – 절제된 속도로, 꾸준히
이 악장은 내가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구간이었다. 나보다 훨씬 큰 어른을 만나는 기분이길 바랐는데, 오히려 나와 눈을 마주하며 서 있었다. 그래서 더 깊게 집중해야 했다.
오늘의 연주들은 대부분, 모든 것과 함께 나아간다. 독보적으로 튀어 오르지 않는다. 지나친 완벽주의를 피하고, 상생과 포용의 골자 안에서 함께 이뤄 나가려는 길이 아닐까.
깊고 높게 파도를 치기보다는, 넓은 선으로 아지랑이를 그리듯 흘러간다. 수직의 고저보다 수평의 이야기.
복잡하게 중첩하기보다, 넓고 느긋한 대화가 오간다. 빡빡해질 필요가 있던가.
IV. Saltarello: Presto – 살타렐로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무대 왼쪽 끝에서 작은 회오리들이 아래에서 위로 피어오르려 한다. 재빠르게 스텝을 내딛는 존재들. 독무가 아니라, 다수의 재간스러운 춤사위다. 장미다발 하나를 함께 피워 올리려는 움직임 같다.
치밀하게 조성해 내며 향해 간다. 흐린 날씨의 파도처럼 출렁이지만, 나아감은 지체되지 않는다. 마냥 가냘프거나 숨 죽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관객을 집어삼키려는 기세도 아니다.
사실 이쯤 되면 아쉬워서 기절할 뻔했다. 이런 곡일수록 저 네모난 상자의 역할이 절실한데… 이 공연장에서는 클래식이 아니라 연극이나 대사극을 해야 할 것 같다. 현악의 뒷바탕을, 이렇게까지 벽들끼리만 나눠 듣게 만들다니.
관객석까지는, 최소한 여기까지는 보내 줄 수는 없었을까. 나, 이래 봬도 꽤 가까이 앉아 있는데… 물론 나아가는 자들은 끝까지 호흡을 닿게 하려 한다. 빗살로다가.
ⓒ 유진
4. 가장 기다랗게 남길 이를 위하여
ⓒ 유진
클래식 공연을 보다 보면, 이렇게 다양한 스팟의 공연장을 접할수록 생각보다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매일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만 다니시는가?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 보시라.
연주자들이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그날의 레퍼토리와 공간의 조건이 미묘하게 엇갈리면 빈틈이 생긴다. 내가 응시하려는 그림의 원형이 큰데, 그릇이 소박하면 흐트러지고 만다. 반대로 훌륭한 공간인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연주를 만나면 또 길을 헤매게 된다.
16일 공연은 어땠던가. 생각지도 못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날 수 있었고, 가장 생생한 형태의 소리 표현과 나지막한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서초교향악단의 또 다른 무대도 보고 싶다. 나의 부족한 청취를 감싸 줄 또 다른 장소에서, 그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지켜보고 싶었다.
모두가 이 바다를 떠난 18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그날의 공연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이방인은 나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포항을 떠나는 오늘까지도 나는 여전히 16일을 떠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멀리—사실 함안을 다녀온 이후로는 그리 멀게도 느껴지지 않지만—찾아오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세요?” 그러면 나는 슬쩍 웃으며 답한다. “다 제 욕심 아니겠어요?” 맞다. 이만큼이나 가지고 싶은 게 많다.
‘행하자’고 마음먹는 순간, 공연은 나의 일상 중심이 되어 앞뒤로 일정을 켜켜이 만들어 낸다. 이제는 어느 정도 패턴이 생겨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언제까지 예습하고 글을 써야 할지도 익숙해졌다.
스스로 갈피를 잡아 무언가를 완성해 내려는 이 욕심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어서, 더욱 재미가 있다.
공연을 다니며 알게 된 가장 큰 즐거움은, 종결 이후에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연주 소식을 미리 듣기도 하고, 가족들과 예상치 못한 장소로 여행을 떠나 서로의 오늘을 나누기도 한다.
요즘 들어 인물 사진을 자주 찍고 다녔다. 찍을 땐 “아, 망했다” 싶었는데, 나중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 “어, 왜 잘 나왔지?” 하며 웃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 카메라를 드는 일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상생의 손’ 앞에서 부모님의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18일 낮,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단체사진을 부탁하셨다. 나는 기꺼이 카메라를 받아 몇 장을 찍어드렸다. 잠시 뒤, 다른 곳에서 우리를 보신 그중 한 분이 다가오더니 이번엔 우리 가족을 찍어주시겠다며 카메라를 가져가셨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꼭 찍어주시겠다고 하셔서 부탁을 드렸는데, 결과물을 보니 너무 잘 나와서 무척 감사했다.
상생이란 어떤 뜻일까. 찾아보니,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가자는 말이었다. 그래, 우리 모두 둘 이상이 아니던가. 서로를 담아내며 각자의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한 것 아닌가.
바다와 나만이 남은 사이, 나는 아직도 지나간 16일을 떠올리며 오늘의 포항을 즐기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이미 많은 것들과 상생하고 있는 셈이다. 음, 기쁜 일이다.
지금 이 글을 토닥이고 있는 18일의 포항에는 빗줄기가 내리고 있다. 에잉, 끝까지 맑았으면 좋았을 텐데. 뭐, 상관없다. 예쁜 미소들은 이미 많이 남았지 않은가. 게다가 호미곶에서는 고양이도 몇 마리나 만났다. 얼마나 귀엽던지. 어디, 구경하실래요?
ⓒ 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