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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20년 미국 미시간 주 빌시티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의문의 발신자: 고등학교 캣피싱 사건>이 요즘 충격적인 내용이라며 바이럴 되고 있는 것 같아 보게 됐다. 이미 판결까지 다 난 실제 사건에 미리 보면 흥미가 떨어진다는 의미의 스포일러 주의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이 글은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미리 명시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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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린과 오언

 

 

미시간주 빌시티에 사는 고등학생 로린은 어느 날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동갑 남자친구 오언과 헤어지라는 메시지부터 인신모독, 성적 희롱이 담긴 저급한 메시지를 받는다. 메시지의 수위는 날이 갈수록 올라가 로린은 자살하라는 메시지까지 받게 된다.


가족 관계부터 누가 누구랑 사귀는지 같은 작은 가십까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만큼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직접적인 피해자인 로린, 오언을 비롯해 친구들, 학교 전체까지 조사하는 큰 사건에 이르게 된다.


서로를 의심하는 날이 많아지자 로린과 오언은 헤어지고 학교에서는 아는 척도 안 하는 사이가 된다. 1년 반 동안 로린과 오언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힌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지역 보안관이 FBI의 협조를 요청하며 사건은 더 커지게 된다. 발신인 번호를 숨길 수 있는 앱을 사용하긴 했지만 앱을 만든 회사에 IP를 전달받아 추적한 결과 그 범인은 로린의 엄마 켄드라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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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라가 직접적으로 오언에게 끌렸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언과 오언의 엄마 질의 증언에 따르면 딸의 남자친구라서 베푼 호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지속적인 메시지로 오언과 로린이 헤어진 후에도 오언의 경기를 보러 찾아왔다는 건 아무리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친한 사이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당사자인 오언이 꺼림칙하게 느꼈다는 점에서 켄드라가 오언을 이성적으로 대한 게 맞는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세 번 놀랐는데 첫 번째는 켄드라가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두 번째는 켄드라가 누구나 법은 어기고 살지 않냐며 본인의 범죄를 합리화했을 때, 세 번째는 자살하라는 메시지까지 보낸 범인이 엄마라는 게 밝혀졌음에도 저는 엄마가 필요해요, 저는 아직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말한 로린을 볼 때였다.


딸이 2년 사귄 첫사랑 남자친구와 헤어질 정도로 힘들어하고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집만 4번 이사할 정도였는데, 그 메시지를 다 엄마인 켄드라가 보냈다니. 아무리 피해자와 범인이 알려진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나와서 인터뷰까지 할 줄은 몰라서 중반까지는 켄드라가 범인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1년 반 동안 켄드라가 보낸 메시지는 프린트로 천 장이 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된 메시지는 그나마 수위가 덜한 것들 아닐까. 교육감 말에 따르면 53살 먹은 남자도 얼굴을 붉힐 정도의 내용이라고 한다.) 가족에게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지만 사촌을 인터뷰한 결과 그만둔 게 아니라 해고된 거라고. 다닌다고 했던 회사는 다닌 적도 없었다고 한다. 켄드라는 가족에게 자존심을 내세웠던 것 같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자신은 대단한 사람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자기 메시지 하나로 힘들어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딸을 보고 희열감을 느낀 것 아닐까. 그리고 자신을 잡지 못하는 보안관과 FBI를 보면서 내가 저 사람들 보다 대단하다는 우월감에서 이런 일을 멈추지 못한 것 같다.


처음 메시지를 보낸 건 자기가 아니라고는 하는데 그럼 FBI가 처음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줬을 텐데 그 과정은 없는걸 봐서는 이 말도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켄드라의 사촌이 켄드라는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켄드라는 이 모든 행동이 다 자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어렸을 때 강간을 당했다 말하는데, 그 트라우마를 혼자 가지고 앓는 것과 남에게 굴절 분노로 표출하며 또 다른 피해자를 생산해 내는 데 일조한 건 어떤 경우에도 용납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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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은 켄드라를 두고 실제로 앓는 병이 없음에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하여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정신 질환인 ‘뮌하우젠’이라고 했다. 정신과,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켄드라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서 로린과 주고받은 메일에서도 ‘나 너한테 화났어 네가 ’안녕‘이라고만 해서 슬펐어 사랑한다고 안 했잖아(용서할게)’라고 하는 걸 보며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가스라이팅의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반 동안 딸을 괴롭게 만든 메시지의 범인이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피해자와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는 그럼에도 자신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로린의 음성과 켄드라가 보낸, 두 줄짜리에 욕설이 가득한 문자, 자살하라고 한 문자를 번갈아 보여주며 무언으로 정신 차리라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굴, 이름도 모르는 익명으로부터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고 대뜸 성희롱과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받으면 멘탈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정할 시기인 청소년기에 저런 메시지를 받는다면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로린과 오언, 그리고 주변인들로부터 범인일 것이라고 의심받았던 클로이는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우리가 모르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범죄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특성상 사이버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과 부모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법이 더 잘 정비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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