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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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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행복의 발견 조건 중 세 번째는 겸손의 중용에 있다. 나는 대학 재학 중에 더닝 크루거 효과 그래프에 관해 본 적이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 그래프는 한 사람이 무지했던 무언가를 알아갈 때,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에 관한 평가가 시간적으로 변화는 모습을 보여준다. 막 무언가를 알아가는, 공부한지 별로 안 된 사람은 실제 지식 수준보다 자신의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반대로 오래 공부해 지식과 능력이 상위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수준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내가 무언가를 많이 안다고 해서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배우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행복의 열쇠를 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만하지 않고 신중히 자기 자신을 관조하면서 몰랐던 나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실은 말야, 오늘부터 난 웃는 걸 선택하기로 했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울거나 웃는 건 유일하게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

 

“소오름. 사장님도 인생이 흘러가는 걸 선택할 수 없어요?”


오랜 세월을 살아간 지은은 타인의 마음을 치유해주며 감정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이 높아졌다. 또한 자신이 입는 옷의 꽃 색깔을 빨갛게 유지하며 감정 조절에 능숙해졌다. 지은은 평정심을 찾았음에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겸손함을 갖는다. 이는 나중에 지은이 어렸을 때 행복한 추억이었던 봄이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지(知)에 대한 자만심을 비우지 않았다면, 감정을 완전히 통달했다고 생각했다면, 언제나 곁에 있었던 지은의 행복하고 찬란했던 과거인 봄이라는 꽃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런 시가 떠오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그 꽃


이 시처럼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을 때,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행복한 추억은 발견하기 쉽다. 추억은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때, 자신을 겸허히 비워낼 때 불현듯 찾아오기도 하는 거 같다. 추억이라 불리는 행복, 작중에서 봄이라는 꽃은 자신이 잘 나갈 때, 승승장구할 때 자만심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성취, 성공에 대한 욕망에만 집중하여 앞만 보게 만든 경주마와 같을 때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지은이 계속 부모님을 찾는 것에 갈망하여, 백만번째의 삶까지 언제나 곁에 있던 봄이라는 행복한 추억의 꽃을 보지 못했듯이 말이다. 지은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의 슬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느라 그동안 곁에 있던 봄이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백만번째의 삶에서 마지막 생을 메리골드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이후, 지은은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강박을 버리고 마음의 경계를 느슨하게 풀었다. 지은은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봄이라는 꽃을, 잃어버린 추억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무조건으로 자신을 낮추선 안된다. 자신을 낮추되 자책하지는 말고, 자신감도 잃어선 안된다. 한 그리스 신화가 생각이 난다.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은 아버지를 찾아가 태양마차를 몰고 싶다고 말한다. 아폴론은 태양의 마차를 내어주면서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게 하늘의 중간으로 마차를 몰아가라고 일러준다. 파에톤은 처음에 마차를 조절하기 어려워 너무 높게 하늘을 날았다. 태양빛이 적어진 대지는 너무 추워지게 되었다. 이후엔 파에톤은 너무 낮게 마차를 몰았다. 그러자 대지는 너무 뜨거워 불타버리게 된다. 결국엔 제우스가 번개를 날려 파에톤을 제압하였다. 마차에서 떨어진 파에톤은 사망한다.


이 일화는 지나치거나 모자르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상태인 중용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다. 자만심과 자신감 사이에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라는 꽃, 행복의 파장은 자만심과 자신감 사이에서 관측이 더 쉬울지 모른다.


행복의 발견 조건 중 마지막은 서로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다. 관계는 나와 나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가 있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 되고, 이 시작점을 기점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사람이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게 된다. 그 중에 특별한 관계는 사랑이 싹트게 된다. 이 사랑이 깊어지면 하나의 가정이 만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함만으로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 설령 지은과 해인의 애틋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더라도 마음세탁소에서 해인에게 지은의 꽃을 보여줄 수 있음에, 해인이 바다 갤러리에서 지은의 감정을 담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음에, 서로의 마음을 건넬 존재가 있음에 덩달아 행복해진다. 서로 있음에 아름다운 것을 인지하는 것, 바로 관계인 것이다. 여러 타인들과의 관계 중에서 마음이 맞는 타인들끼리 모여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고 걱정해주고, 같이 밥 먹고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가 좋은 거 같다. 작중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손님들과 지은이 그렇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빨래의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는 노래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서울사리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 있었는지

마음에 담고 살아가나요


(중략)

 

서울살이 여러 해, 당신의 꿈 아직 그대론가요?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나요?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질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 줄게요


- 뮤지컬 빨래. 서울살이 몇 핸가요 중에서


이성 부관과 감정 렌즈가 현재라는 순간을 마음에 담아낸다. 이성 부관이 지휘통제실 창고에서 내가 잊어버렸던 꿈을 찾아, 꿈에 붙어있는 먼지들을 털털 털어낸다. 비록 나중에 찾아낸 꿈에 슬픈 마음이 젖어있어 슬플지라도, 위 노래처럼 서로를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타인이 모여 바람이 되어 젖은 마음을 말려주지 않을까. 바람이 분다. 즐겁게 오늘의 순간을 살아야겠다.


작중 지은의 곁에서 지은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탁소 문이 닫힐 때까지 우리 분식 사장이 지은이 혼자가 아니도록 기다려주는 것, 우리 분식 사장과 지은이 서로 무릎 약을 양보해주는 것, 지은이 적적할까봐 계속 찾아와 포트럭 파티를 여는 재하와 연희, 지은이 며칠 동안 꽃비의 바다에 휩쓸렸을 때 지은의 휴대폰에 온 수십통의 메시지와 부재중 통화들, 지은이 단 한 번도 메리골드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 번 버스여행을 떠나보라는 연자씨. 어쩌면 지은의 곁에 사람이 많았듯이 나에게도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지은은 우리 모두에게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가 있다는 것은 불안과 고독을 의미한다. 자유라는 별이 빛나는 건 불안과 고독으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흔들리는 불안과 고독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마음의 고통이 덜해지지 않을까. 서로를 이해해주고 걱정해주는 관계가 모여 나의 안전기지가 탄생되지 않을까. 마음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안전기지도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에 늘 좋은 일들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답게 개성을 발휘하는 자립과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의 의존을 반복할 존재들을 응원한다. 당신의 감정 렌즈에 긍정적 경험들을 많이 담아내길 기도한다.


만약 당신이 지은처럼 백만번째 반복해서 태어난다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면, 다시 반복해도 좋을 오늘의 순간을 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현재 당신의 의식 거울은 내면을 비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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