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0250815193111_yozinund.jpg


 

 

과거부터 반복된 행복의 진짜 의미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반복된다. 어떤 사람은 사업의 성공에서, 또 어떤 사람은 가정의 화목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에우다이모니아는 단순한 쾌락이나 순간적인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르고 깊이 숙고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얻어지는, 내면의 지속적인 번영이었다. 최초의 여성 철학자, 히파르키아는 테베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앞에는 부와 안정, 그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길이 놓여 있었다. 아름다운 옷, 세련된 교양, 훌륭한 남편감이 될 사람 모두 그녀의 인생이란 길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행복해지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 이 말을 항상 기억하고 지냈다.

 

 

진정한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올바르고, 깊이 숙고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녀는 올바른 내면을 가꾸어야만,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화폐를 훼손하라, 내면의 자유를 찾아라


 

거리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거리에서 연설하며 남루한 옷을 입고, 재산도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견유학파 철학자 크라테스였다. 크라테스의 철학은 단순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화폐를 훼손하라.” 여기서 ‘화폐를 훼손하라’는 말은 실제 돈을 파괴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신봉하는 가치 체계, 대중이 만들어낸 도덕의 가짜 화폐보다 진실을 더 귀하게 여기라는 뜻이었다. 그는 또한 금도, 모래도 결국 흙에 불과하다고 했다. 화려한 외양, 권력, 재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자유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 체계는 완전히 왜곡되었어요. 

채권, 증서, 증권 이런 것들은 헛된 희망으로 사람 마음을 기만하기 위해 탐욕이 발명한 허위입니다. 

하지만 금은 금이 아니고 모래는 모래가 아니에요! 현자는 둘 다 흙에 불과함을 압니다.

 

 

크라테스가 말한 화폐를 훼손하라 함은, 일반적인 견해를 무시하고 대중이 빚어낸 도덕의 화폐보다 진실을 더 중히 여기라는 뜻이지 않을까.

 

 

 

방귀로 사회적 관습을 부수다


 

히파르키아에겐 오빠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메트로클래스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제자로, 철학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위경련과 가스가 잘 차는 증상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침내, 증상이 완화될 무렵, 그는 철학 연설 수업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게 된다. 하지만 말하던 도중에 의도치 않게 방귀를 크게 뀌게 된다. 가스를 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변에서 조언했지만, 사회적 체면을 중시했던 나머지 그는 부끄러워 밖을 못나가게 된다. 크라테스는 이 소식을 듣고, 메트로클래스를 찾아오게 된다. 크라테스는 방귀로 곤란을 겪은 메트로클래스 앞에서 시원하게 방귀를 뀌버린다. 어떤가. 크라테스는 방귀 때문에 부끄럼을 느낀 메트로클래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들어봐요. 평판은 의견에 불과합니다.

자기 행복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 의견에 좌우된다면, 가장 하급한 형태의 노예 상태에 종속된 겁니다.

온갖 사회적 관습은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그런 사소한 일은 무시하려고 노력해요.

다른 사람들 의견에 노예가 되지 말고!

 

 

메트로클래스가 앓던 고민들은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를 옭아맨 사회적 관습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느꼈다. 그는 크라테스에게 감복하여 원래 따르던 학파를 버리게 된다. 크라테스에게 배움을 청하는 학생이 되었다. 견유학파에게 있어 행복의 핵심은 아우타르케이아(자족)였다. 필요한 것만으로 만족하며, 남의 평가나 시선에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크라테스가 추구한 행복의 핵심이었다.

 

 

 

히파르키아와 크라테스를 통해 본 행복의 의미


 

히파르키아도, 크라테스가 말하는 진리에 매료당했다. 그녀는 몰래 남장을 하면서까지 길거리의 크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그 당시 여성들은 함부로 혼자서 밖에 돌아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파르키아는 가족에게 크라테스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경악했다. “왜 그런 거지? 그 남자는 집도, 돈도, 명예도 없는데!” 그러나 히파르키아에게 중요한 것은 부나 신분이 아니었다. 크라테스는 그녀의 청혼에 고민한 뒤, 몸에 두른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맨몸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만약 그대가 이런 삶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결혼을 못할 것입니다." 히파르키아는 주저하지 않았다. 화려한 혼례복 대신, 그와 함께 광장에서 살며 철학을 논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히파르키아와 크라테스의 삶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고 궁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나 평판에 휘둘리지 않았고, 사회의 ‘성공 공식’에서 자유로웠다. 바로 그 자유가 그들의 행복이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 살고 있다. 도파민이란 이름으로 ‘가짜 화폐’들이 우리의 행복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크라테스와 히파르키아의 삶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가?”

 

 

진정한 행복은 사회가 정해준 틀 안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히파르키아와 크라테스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걸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