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힘든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최근 마음을 괴롭히는 고민들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별거 아닌 생각들이겠지만 당장 현재는 그렇지 않다. 컴퓨터 파일 속에 나의 기록을 들춰본다. 과거의 난 어떤 것들을 괴로워하였는가. 계속 뒤지다가 문예 원고에 낙선한 에세이를 발견했다. 이 에세이는 내가 군생활 중 자기계발 시간 때 틈틈이 썼던 것이었다. 올해 1월에 전역을 하였는데도 꿈에선 아직도 전역일자를 세고 있는 웃픈 자신을 발견한다. 군대에서 언제나 그랬듯, 휴가를 계산하며 남은 복무일을 어떻게 견딜지 막막해하는 자신이 꿈에서 등장한다. 군복무 시절, 내가 힘들었을 때 위로하기 위해 썼던 글을, 그날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다시 편집해본다. 나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시작해본다.

내가 등산을 두려워했던 이유
우리 부대는 힘찬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새해가 오면 등산을 한다. 새해가 온 그날은 칼날 같은 바람에 코끝이 시렸다. 행보관님의 명령에 따라 내가 소속된 본부중대 근무지원대 전우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렬을 만들었다. 인원 확인을 마친 후 우린 등산을 시작했다. 전우 중 키가 큰 한 명은 부대기를 들고 앞장섰다. 우리는 민간인들이 가는 등산로로 가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길을 직접 개척해서 나아갔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간격과 깔아놓은 계단이 있어서 많은 걱정에 비해 등산길 초반은 힘들지 않았다.
많은 걱정이 있었던 이유는 사실 훈련소 때부터 내 몸 상태는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훈련소에서 나는 심하게 긴장을 해 과호흡과 발작성 빈맥으로 몇 번 실신했었다. 특히 전투뜀걸음을 마치고 쓰러졌을 땐, 손발의 경련과 함께 어지럼증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허리춤에 있어야 할 수통은 정신없이 뛰느라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고, 연병장에 쓰러져서 군복도 흙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너무 빠르고 얕은 호흡으로, 그당시 난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다행히 생활관 동기 중 한 명이 소대장님을 부르러 바로 뛰어갔다고 한다. 생활관 동기들과 소대장님은 나의 열기를 내보내기 위해 군복을 모두 다 벗겨놓고, 내 맨살을 주무르고 있었다. 안정을 위해 소대장님이랑 조교님께서 날 직접 부축하시고 휠체어에 태워서 응급실까지 태워다 주셨다. 군의관님께선 천천히 숫자를 세며 호흡하라고 하셨고, 고열도 시간이 지나면 진정이 될 거라고 하셨다.
나의 힘든 순간은 언제 끝날까,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았던 나의 존재
힘든 순간은 부대 전입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난 첫 주말 당직 근무 때, 맹장이 터져버렸다. 난 급하게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해 시술을 받았다. 가스가 찬 상황에서, 하루하루 견디는 행위, 가볍게 걷는 행위가 큰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걷는데도 난 외마디 비명을 질렸다. 몸이 건강한 것만으로 큰 축복이었구나!
유격 훈련 전엔, 오래 앉아 있는 상황실 근무로 인해 치핵과 급성 항문 열구가 발발했다. 항문에 피가 고여있어 부대 근처의 병원에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 후송을 또 갔었다. 맹장이 터진 뒤 별로 지나지 않은 일이라서, 너무 걱정했던 거 같다. 병원에 갔다온 뒤, 난 바로 유격 훈련에 투입되었다. 철모에 '치핵'이란 글자를 붙이고, 결국 훈련을 완수했다.
또, 난 크리스마스에 당직 근무를 받았는데 급작스럽게 외할아버지께서 곁에 가족을 두지 않고 홀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수화기 너머 부고를 전하는 엄마 목소리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직 근무를 후임에게 부탁하고,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사유들로 인해 일과와 당직 근무에 공백이 많이 생겼고, 몸도 계속 좋은 상태가 아니라서 선임과 간부님들에게 달갑지 않은 병사가 되었다.
포기할 것인가, 계속 할 것인가
등산하는 길은 가면 갈수록 인적이 드물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뿌연 안개가 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사진 땅의 돌부리에 군화가 자꾸 걸려 넘어졌다. 어느새 전우들과 간부님들은 날 추월해서 나아가기 시작했고, 점점 선두와 나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등산하면서 각 나뭇가지에 걸린 자그마한 부대 마크에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난 몇 번이고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계속 미끄러지며, 나뭇가지를 양손으로 붙잡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린 순간, 바로 낭떠러지 근처로 굴러넘어졌다. 다행히 나중에 행보관님이 날 발견하셨다. 굵은 나뭇가지로 날 올려주셨고, 선택지를 주셨다.
“여기서 그만 포기할래? 무조건 끝까지 하는게 능사가 아니야. 아니면 계속할거야?”
괜한 오기가 있었는지 난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행보관님은 이렇게 조언하셨다.
“길이 미끄러우면 그냥 넘어지면서 가도 돼. 체중을 무게중심 밑으로 실어서 가. 확실히 내딛는 한걸음에 집중해.”
타소속 간부님께선 벌써 산을 내려오시며 나에게 초콜릿을 건네주셨다. 부대장님과 참모장님도 산길을 내려가시고 계셨다. 부대장님께선 튼튼한 나뭇가지를 밟아 꺾은 후 직접 지팡이를 만들어 주셨다. 참모장님은 내 상태를 보시더니 헬기와 연락을 하겠다고 하셨다. 난 아직은 괜찮다고 지나가는 간부님들에게 계속 말하며 행보관님과 함께 나아갔다. 불현듯 부대원들과 함께하기로 한 활동이 생각났다.
‘정상에 오르면 다같이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내 뇌리를 스쳤다. 난 행보관님께 이렇게 말했다.
“행보관님 먼저 가십시오. 부대원들과 산 정상에서 사진 찍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행보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니야. 그깟 사진보다도 너가 끝까지 등산에 도전했다는게 의미가 커. 행보관은 너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함께한다.”
행보관님과 난 등산 기념 촬영은 못했지만, 마침내 등산에 성공했다. 앞서간 일행들은 이미 기념사진을 찍고 다 내려간 상황이었다. 난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긴장이 풀려 바로 풀더미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행보관님은 “목표와 타협하지 않네. 넌 어디서든 잘 할거여.”라고 말씀하시며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훈련소에서도 마지막 야간 기지방호를 하고 나서 군장을 맨 상태로 흙바닥에 드러누운 적이 있다. 그때 교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본 적 있습니다. 이곳은 하늘만 더럽게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끝나지 않을 거 같아도 결국 끝은 옵니다.”
힘든 순간은 결국 지나간다. 정상만 계속 바라보는 조급함을 버리고, 내가 내딛는 한걸음에 무게중심을 두자.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이 멋진 끝으로 이끌지 않을까. 그러니 설령 목표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어떤가. 흙투성이의 발걸음이라도 어떤가. 어쩌면 내가 느꼈던 몸의 고통이, 예민함이 센서가 되어 더 선명하게 경험하고, 풍부하게 음미하는 삶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유병욱 작가의 인생의 해상도란 책에서, 내 마음에 두는 구절이 있다.
산이 높으면 발끝을 보고 걸어라.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급함이나 무리한 욕심을 버리고, 지금 내딛는 작은 한 걸음에 집중하자. 정상만 바라보면 지치거나 포기하기 쉽지만, 발끝을 보며 꾸준히 걸으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내 마음에 자그마한 문장을 새겨본다. 힘든 순간도 결국은 지나가리라.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중심을 놓고, 그 위에 내 존재의 무게를 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