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빚어낸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앨리스 달튼 브라운 : 잠시, 그리고 영원히> 전시는 더현대서울현대백화점 6층에서 올해 6월 13일(금)부터 9월 20일(토)까지 진행된다. 해당 전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란 예술가의 생애와 연결이 된다. 앨리스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최근 작품까지 약 140점의 원화를 감상할 수 있다.
지금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아름다웠던 찰나의 순간은 언제인가?
당신과 앨리스도 느꼈을 찬란했던 '잠시'의 순간을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작품 속에서 '영원히' 느낄 수 있다.
그녀가 포착했던 빛나는 순간을, 극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관객의 기억 속에 머물게 만든다.
잠시 일상 속에서 벗어나,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 빠져들어보자.
이 전시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생기를 불어놓은 순간을, 여유있게 감상해보자.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관람 동안 기억해야할 키워드는 바로 '경계'이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극사실주의 화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포토리얼리스트가 아니다. 포토리얼리스트는 사진 이미지를 캔버스에 투사하는 등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운 회화를 만든다. 그런데 앨리스의 작품과 인터뷰에 모순이 보인다.
그녀는 분명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포토리얼리스트가 아니다.
앨리스의 작업 방식은 신선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활용해 여러 이미지를 조합하고 재구성한다. 결국 그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그림을 탄생시킨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상화도 아니다.
현실 그대로가 아니지만, 실제처럼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몽환적 느낌을 선사해준다. 그녀가 만들어낸 비현실과 현실, 추상과 구체의 경계 지점에서 생동감있는 풍경이 구성된다.
한 번 그림 여정을 떠나보면서, 작가의 시선대로 이동해보는 건 어떨까.
청량한 시원함을 주는 그림에 도달하기까지 앨리스는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시작된 순간
전시회의 첫 부문은 '시작된 순간'이다. 앨리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화풍을 실험하고, 도전하면서 그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실 처음부터 밝고 명랑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진 않았다. 오히려 초기작에선 어두운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를 해서 사실적으로 풍경을 묘사했다.
앨리스가 20대였던 1959년엔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앨리스 또한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특정 부분을 추출해서 강렬하게 표현하는 추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때 당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은 미국 미술계에서 수준이 낮은 단순한 그림이라고 취급했다.
그녀의 초기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사람'이다. 앨리스는 뚜렷한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갤러리 속 두 여성>인데, 친구를 모티프로 했다. 그림에서 어느 부분이 여성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그림을 통해, 앨리스 역시 추상화를 그려내는데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이름은 <에버딘>이다. 해당 작품에서도 집에 방문한 친구를 모티프로 한다. 윤곽선과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지만 사람의 형태를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캔버스 작품은 양면이다.
뒷면은 위 사진처럼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추상적인 '무언가'를 그렸다. 어쩌면 앨리스에게 있어 추상과 구체는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이지 않았을까.
I fought for the time to make art.
작품을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어요.
그녀는 20대에 세 아이를 낳게 된다.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이어나가면서도 육아에도 집중했다. 하지만 온전히 작품 창작에 집중하는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눈여겨 볼만한 작품은 <주방에서>라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아홉달 된 둘째 아기와 함께 주방에 있는 앨리스를 담은 그림이다. 다만, 그녀의 형체는 조금 어둡고, 얼굴도 없다. 아내와 엄마, 작가라는 정체성 혼란으로 조금 어둡게, 얼굴없이 표현하지 않았을까.
추상화를 강조하는 세상의 시선에 맞춰, 앨리스는 그림을 그리는데 계속 집중했지만, 자기만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건축물들, 시각적 세계에 관심이 더 가기 시작했다. 특히 농가를 갔을 때 헛간과 곡식 저장고가 땅에서 솟아나온 특이한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시선은 추상보다도 외부에 실제하는 세계와 풍경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탐색과 전환
앨리스는 점점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게 된다. 1980년대부턴, 색채가 밝아지고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빛, 그림자, 반사를 통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러 풍경과 건물을 조합하고 균형감있게 배치하여, 자신만의 멋진 구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자연풍경에 다가가게 된다.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실제 있는 풍경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론 이미지들의 치밀한 구성 끝에 만들어진, 존재하지 않는 풍경들이다.
또, 집의 풍경에 집중하기도 시작했다. 집은 개인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 열린 공간이다. 집의 풍경에 집중하면서, 앨리스만의 시그니처가 생기게 된다. 바로 집 밖과 안을 매개해주는 도구인 '문'과 '창문'이다. 특히 현관은 바깥과 경계에 있는 공간이다. 그녀는 외부 세계에서, 집이란 내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형미가 있는 건물, 틈이나 창문 또는 문이 있는 건물은 언제나 저를 매료시키죠.
저는 집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낍니다. 집은 저에게 사람과 안식처, 기억과 꿈을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앨리스의 화풍은 '커튼'으로 완성되게 된다. 그녀는 커튼을 의식에서 숨겨진 베일이라고 표현했다.
저에게 커튼은 우리의 의식에서 반쯤 숨겨진, 가려진 부분을 상징합니다.
커튼이란 베일을 사이에 두고 보여지는 풍경과 물결이란 움직임을 찬찬히 바라보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실
전시장 내에, 앨리스의 작업실을 묘사한 공간이 있다.
이 작업실에서 놓쳐선 안 될 포인트가 있다. 바로,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색상표다.
앨리스는 1970년에 뉴욕으로 이사간 뒤, 미술용품점에 있는 유화물감으로 만든 색을 하나씩 붙여내서 커다란 색상표를 만들었다.
벽에 붙은 색상표를 통해, 각 색상을 칠한 연도를 기록해나가서, 같은 색 계열이라도 어떻게 작가만의 색채로 변화해 나갔는지 엿볼 수 있다. 그녀의 화풍이 단시간에,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 부문이다.
1975년부터 끊임없이 연구한 색채 변화, 작품 구상의 노력의 순간들이 모여 독창적인 화풍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그림을 창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창의성의 의미란 무엇일까
창의성의 본질적 의미란 모순에 있다. 창의성이란 혁신과 가치의 예상치 못한, 모순적 조합에 달려있다. 혁신은 기존과 다른 새로움이다. 틀에 박힌 수단이나 관점에서 탈피하는 것을 말한다. 혁신을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반해 가치는 유용함을 뜻한다. 무언가 창의성을 띄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선, 아이디어가 유용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새롭다는 사실은 완전한 창의성이 아니다.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유용하며 구체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진정한 창의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는 문제해결요소와 목적적합도를 포함해야한다. 문제해결은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를 없애는 것이다. 목적적합도는 특정 목표나 목적을 통해 아이디어가 가치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다.
마가렛 보든은 창의성을 개념적 공간의 경계로 정의했다. 개념을 나누는 경계 지점에서 창의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개념간의 경계를 기준으로 새롭게 통합하면, 기발한 창의성이 된다. 개념을 하나의 사고방식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고방식을 포괄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 또한 창의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가렛 보든은 창의성을 P-창의성과 H-창의성으로 구분하였다. P-창의성은 Psychological Creativity(개인 심리적 창의성)를 뜻하며, 개인 수준에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H-창의성은 Historical Creativity(역사적 창의성)를 뜻하며, 세상에 대해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P-창의성은 개인이나 같은 관심사를 갖는 일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다만, 사회적 의미에서 갖는 관심도와 가치는 제한적이다. H-창의성은 개인 수준의 관습에서 벗어난 차원을 넘어, 고착화된 사회 관습에서도 새로운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의미에서도 높은 관심과 가치를 갖는다.
쾌슬러는 창의성을 이중연관(bisociation)과 관련지어 설명하였다. 이중연관(bisociation)은 연관(association)과 크게 다르다. 연관은 하나의 개념이란 범주 안에서 해당된 요소들을 관련짓는 것(통합)이다. 즉, 하나의 개념에서 관련 요소들을 추출하는 것과 같다. 이와 다르게, 이중연관은 2개의 개념이란 다른 범주에서 각각에 해당된 요소들을 새롭게 통합시키는 것이다. 쾌슬러에게 창의성이란 개념간의 충돌이며, 다영역적 접근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개념간의 경계 지점에서, 개념 요소들이 서로 통합되는 것이 창의성의 핵심이 된다.
매슬로우는 창의성을 본질적 창의성, 이차적 창의성으로 구분하였다. 본질적 창의성은 일방적 또는 분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혁신과 같다. 갑자기 화산이 분출하듯, 아이디어가 터져나오는 것이 본질적 창의성이다. 이차적 창의성은 결과물이 구체적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틀을 형성하고, 분화적으로 발생한 것들을 합리적으로 구성해내는 것이다.
이번엔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 번 창의성을 새롭게 비유해 본다.
쉽게 말해, 창의성은 구슬과 부대찌개와 같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구슬이라도 목걸이를 만들려면 모아야한다. 반짝이고 예쁜 구슬이 많더라도 그냥 두면 구슬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 사조, 그림일지라도 자신만의 것으로 다듬고 정리해서 녹아내야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된다. 이는 분화적 사고(구슬)와 융합적 사고(목걸이)의 통합, 혁신(구슬)과 가치(목걸이)의 조합과 연관된는 해석으로 볼 수도 있다.
또, 창의성은 부대찌개다. 부대찌개의 핵심은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짜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육수, 라면사리, 햄, 소시지, 김치, 고추장, 두부 등 각기 다른 재료들이 적절히 조합되어야 맛있는 부대찌개가 된다. 만약 햄이 많거나 육수 조절에 실패한다면 맛이 급격하게 짜진다. 다양한 재료라는 개념의 경계들이 잘 어우러지도록, 하나의 완성된 부대찌개로 통합되어야 한다.
개념간의 경계 지점에서, 서로 다른 개념을 균형감있게 통합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창의성이 의미있는 건 아닐까.
앨리스는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풍경을 재조합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했다. 작품 초기엔 추상화에 집중했지만, 점점 추상 너머 '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실체 중 건축물, 조형물에 집중하여, 어떻게 하면 완성감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였다. 결국 자연풍경인 '실체 그 자체'를 그녀의 구도에 맞게 추상적으로 '구상'하였다. 개념의 경계를 살펴보고, 내부에서 외부 세계로 나아가는 그녀의 시선이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