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번하드, 그녀는 누구인가
캐서린 번하드전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에서 올해 6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캐서린 번하드전' 공식 이름은 "캐서린 번하드 : Some of All My work"이다. 번하드는 원초적인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이다.
전시장 입구의 영상에서 그녀의 작업 모습을 볼 수 있다.

캐서린 번하드, 그녀의 그림체는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일상 속에서 보이는 수박, 담배 등의 물건을 주로 자신의 그림에 담는다. 또한, 인기있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캐릭터를 직접 따와서 그리기도 한다. ET, 핑크팬더, 새서미 스트리트, 심슨, 가필드 등 다양한 캐릭터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캐서린 번하드의 작업 방식

번하드의 작업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빠르게 외곽선을 그리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그 뒤, 많은 물을 넣어서 희석한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다. 붓을 비스듬히 들어서 외곽선 안의 색을 칠한다.

많은 물로 물감을 희석해, 그림이 흘러가도록 만드는 효과를 준다. 실제 작업실 바닥엔, 그림에 물이 너무 많아 뚝뚝 흐른다.
"그림은 흘러야 하죠. 저는 그림이 말하려고 하는 걸 멈추려 하지 않아요."
"좋은 화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과도하게 분석하지 않고, 주변 세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에 집중한다."
번하드는 직관적으로 빠르게, 자신만의 색채 감각에 의지하여 즉흥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캐서린 번하드의 초기작은 어떤가
번하드는 막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패션 매거진 속 모델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모델들의 화풍은 일반적으로 잘 그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휘리릭' 붓질 한 번에 그림을 끝낸다. 그녀의 초기작을 한 번 봐보자.


대부분 모델의 형태가 무너지고, 일그러져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그림이 아이스크림처럼 마구 녹아내린 느낌을 준다. 또, 정교하지 않은 구도와 흘러내린 물감은 고도로 정제된 아름다움보단 거칠고 대담한 느낌을 부여한다. 골똘히 볼수록 어딘가 슬퍼보이는 그림들은 이 당시 모델들의 삶에 호기심을 준다.
이때 당시 모델들은 상업광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환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붙이지 않았을까. 화려한 모델이란 삶 속에서, 녹아내려가는 내면의 불안함을 잘 드러낸 작품들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는 당신의 현재 내면 상태는 어떤가?
그림 주인공 교체 : 모델에서 소비 상품으로

2009년부터, 번하드는 스와치라는 손목시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모델'이란 인물 중심 회화에서 벗어나 시계를 그림으로써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번하드의 첫 아이이자 외동아들인 칼리파를 임신하며, 자신의 신체와 시간의 개념에 관해 이전보다 더 체감된다고 말했다. 시계의 둥근 모양은 임신한 자신의 배와 유사했고, 약 9개월 동안 성장하는 아이를 느끼면서 스와치 브랜드의 시계를 그렸다. 그녀에게 있어 스와치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이었다. 그녀의 중학생 시절엔, 주말마다 백화점에 방문하여 스와치 코너를 구경하는 것이 낙이었다. 당시 10대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스와치는, 번하드의 마음도 훔쳤다. 시계를 통해, 번하드는 그림의 중심이 인물에서 소비문화 속의 사물로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그리기 시작한 지점이, 그림의 방향성이 크게 바뀐 분기점이다. 붓질은 전보다 더 느슨하고 힘이 빠졌으며, 색은 더욱 강렬해졌다.
제 작업은 삶의 일기와도 같아요. 지금 제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
슈퍼모델, 스와치시계, 모로코 카펫, 푸에르토리코 제 작업실의 샤워기, 포켓몬, 축구 등등.
제 작업은 색채에 관한 모든 것이기도 해요.
교환학생 경험이 선물한 '패턴의 영감'
번하드는 15살 때, 교환학생으로 포르투갈에 머물면서 잠시 모로코에 방문하게 된다. 모로코의 다양한 작물들, 독특한 타일의 조합, 베르베르라 불리는 전통 카펫의 패턴이 그녀의 이목을 끌게 된다. 손으로 직접 짠 거친 기하 무늬와 강렬한 색채 패턴의 반복은 그녀에게 좋은 영감을 주게 된다. 번하드처럼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떤가. 새로운 장소, 문화로의 여행은 작가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고, 작가가 아닐지라도 삶의 활력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현대를 그리다; 이미지 권위의 상실

초기 모델 회화에서 소비문화 대상으로 시선을 옮긴 캐서린 번하드, 다만 각 사물의 배치에 관해 의문이 든다. 위 작품처럼 꼭 수박과 새가 다른 대상과 함께 존재해야할 당위가 있는가? 이는 과거 예술과 현대 예술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위 작품 이름은 '무제'이다. 제목이 없다. 바나나, 담배 등 연관성이 없는 사물들이 나란히 존재한다. 모든 것이 맥락이 없고 아이러니한 현대 상황을 설명하는 작품이 아닐까.
고전미술에는 그림의 맥락과 의미 고려가 매우 중요했다. 하나의 대상을 그리더라도, 정밀하게 묘사해야했다. 이상적인 값으로 존재하는 멋진 구도에 맞게 대상을 배치해야했다. 또한, 주위 배경에 조화로운 것들을 같이 그려놓아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대상들에 맥락과 의미가 꼭 부여되지 않는다. 현대는 맥락과 의미가 고정화되지 않고, 불확실하다. 예술에 당위성이 없다. 대상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상이 있더라도, 꼭 정해진 대상들끼리 존재해야한다는 의무가 없다. 현대예술은 이게 진짜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싶은 의아함이 들 때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의 몇몇 그림도 이정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예술의 현대, 실제 현실은 무작위적이고, 불확실하다. 사물들의 배치와 존재는 치밀하게 계산된 것보단 작가의 경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쉽게 얘기하면, 작가가 그리고 싶어서 넣은 대상들이다. 일상 속에서 보았던 대상들을 무작위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이런 특징은 그녀의 작업실을 묘사한 전시 장소에서, 두드러진다.
저는 예술에 유머가 있는 게 좋아요.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평범하고, 별거 아닌 걸 그리려 해요. 예를 들면 화장지나 담배 같은 거요.
그 누구도 '저걸 그림으로 그려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것들인데, 그게 오히려 웃기고 재밌을 수 있잖아요.


작업실을 묘사한 장소에선, 바닥에 번하드의 아들이 놓았던 포켓몬스터 카드들이 많이 놓여있다. 그림에 참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 찍혀있는 물감 자국은 실제 작업실 현장을 사진으로 인쇄해서 붙였다고 한다.

또한 위 그림도 번하드의 작업 공간에 있던 시리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캐릭터의 입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작업실에 있는 시리얼을 그린 것이다.

캐서린 번하드는 어릴 적부터 물건으로 가득찬 방에서 자라왔다. 번하드에게, 집은 잡동사니처럼 서로 관련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신문, 두루마리 휴지, 담배, 나이키 운동화, 아이스크림 틀 등 맥락없이 놓인 사물들이 겹쳐진, 비좁은 환경에서 그녀의 강렬한 색채 스타일이 탄생했다. 일상 속에 둘러싸인 사물들을 캔버스에 대담하게 담고, 과감한 붓칠을 시작했다.
제 작업은 제가 자란 집과 그 안에 있던 맥시멀리스트 미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모든 공간이 물건들로 가득 차서 숨 쉴 공간도, 더 이상 바닥에 물건을 놓을 공간도 없었죠. 제 작업도 제가 자란 집과 같아요. 모든 캔버스에 빈틈없이 상징과 사물을 꽉 채우는 식으로요.
번하드의 주변에 있는 소비문화의 아이템들은, 그림의 대상이자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의 본래 가치, 이미지가 유지된 채로 캔버스에 등장하지 않는다. 번하드의 주변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던 상업적 가치가 그녀의 캔버스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사물의 상업적 가치를 생각하는 것보단 형태와 색채에만 집중하여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대상은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상징에서 추출하되, 본래 이미지를 마음껏 훼손한다. 독특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라는 그녀만의 시각언어로 본래 대상을 재해석한다.
여러 이미지 중에 가필드, 맥도날드 감자튀김, 피카츄 카드가 눈에 띄었다.



번하드의 작품은 그녀의 감각과 기억이 스며든, 시간과 공간을 재해석한 내면의 풍경화이자 기록이었다. 그녀에게 기록의 본질은 손으로 직접 붓질하는 행위였다.
인간이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게 놀라워요.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어떤 행위를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요.
이 컴퓨터와 기술의 시대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사랑해요.
당신은 자유의 본질을 알고 있는가?
니체는 인간 발전을 3단계로 제시하였다. 먼저, 낙타의 단계이다. 낙타는 기존 지배 질서, 관념에 순종하는 존재이다. 낙타 위를 짓누르는 기존의 이미지, 지배 권위라는 짐을 싣고 나아간다. 두 번째는 사자의 단계이다. 사자는 기존 권위, 이미지를 파괴한다. 더이상 순응하지 않고, 기존의 규범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부숴버린다.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다. 아이는 자유로운 존재다. 놀이하듯 새로운 창조를 한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게 놀이라는 과정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계속 부수면서 다시 세운다. 이미 지어놓은 모래성을 부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시 쌓는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 의미를 짓는다.
번하드는 자유롭게 일상 속의 이미지를 기존 관념과 다르게 재해석하여 이미지를 창작했다. 기록의 본질인 붓질을 놓지 않고, 거칠지만 대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만든다. 당신은 자유의 본질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현재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가? 자유롭게 자신만이 추구하는 본질을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