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먼저 알아본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깊이 붙잡지 못한 게 아쉽다. 예전 같으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 경험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취향은 단순한 유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사랑해 온 것들을 돌아보며, 취향이 내게 남긴 이야기를 차분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공연
대학생 시절, 나는 뮤지컬과 연극에 푹 빠졌다. 과제를 미뤄도 공연장은 빠지지 않았다.
티켓을 예매하고 객석에 앉아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던 순간, 그 두근거림은 지금도 생생하다. 무대 위 배우가 첫 대사를 내뱉을 때, 조명이 켜지며 배경이 바뀔 때, 나의 심장은 공연의 리듬에 맞춰 뛰었다.
7년 전부터 대학생의 본분보다 더 강렬하게 취했던 ‘연뮤덕’이라는 이름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때는 공연 관련 리뷰 유튜브는 물론, 공연 영상도 많이 올라오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 진입장벽이 높은 세계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공연이 대중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리뷰 영상이나 SNS도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장은 늘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에게 모순적으로, 공연 문화는 더 넓게 퍼졌다. 매체의 유명 배우들도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아졌고 이에 대한 화려한 뉴스 소식도 계속 전해진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찾는 것을 보며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나의 열정은 옅어져 희미해져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시절 내가 공연 리뷰 채널이라도 열었다면 지금은 다른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무대에 몰입했던 시간이고 그 시간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기억이 된 것 같다.
요가
한동안 나는 요가에도 깊이 빠져 있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넘어, 요가는 내 일상을 정돈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매트 위에 앉아 호흡을 고르는 순간, 마음속 소음이 잦아드는 듯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지금은 예전처럼 꾸준히 하지 않지만, 몸은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무심코 어깨를 펴고 깊은숨을 들이마실 때, 요가가 남긴 흔적이 되살아난다.
요즘 많은 사람이 웰니스 페스티벌이나 요가 리트릿을 찾아 떠난다. 발리, 태국 같은 여행지에서 요가하며 삶의 쉼표를 찾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나는 조금 먼저 그 세계를 맛보았고, 그 경험을 확장하고 싶지만, 길게 펼쳐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음료
가장 오래 나를 지탱해 준 취향은 음료다. 특히 커피는 내 하루를 여는 의식이었다.
코로나 시기, 원두를 사서 직접 그라인더로 갈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내려 핸드드립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전자의 물줄기가 원두 위로 가늘게 떨어지며 방 안에 퍼지던 향기, 종이 필터를 통과하는 소리, 첫 모금이 입안에 맺히는 순간의 따뜻한 무게.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루를 준비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처음에는 전문 유튜브를 보며 정확한 계량을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곧 완벽한 레시피보다 중요한 건 순간을 즐기는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복잡한 과정보다는 그 시간을 음미하는 데 더 집중한다.
차 역시 나의 중요한 취향 중 하나인데, 꽃차를 생일 선물로 받기도 했고, 예쁜 다기를 장만해 다도 시간을 소소히 갖는 순간들이 참 좋다. 요즘은 말차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지만, 나는 앞으로 더 다양한 차 문화가 주목받을 거라고 믿는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결국 쉼을 마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취향이 남긴 흔적
돌아보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공연은 무대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요가는 오랜 전통 속에 존재했으며, 커피와 차는 언제나 사람들의 곁에 있었다. 내가 그들을 좋아했든 말든, 그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오직 나였다.
내가 그것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는가. 그 과정이 중요했다. 그래서 취향은 세상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자신을 채우는 시간의 기록이다. 세상이 뒤늦게 주목하든 말든, 내가 그 순간을 내 삶 속에 어떻게 심어두었는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자 해내야 할 일종의 퀘스트처럼 느껴진다.
유행은 바람처럼 불어왔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연장에서의 벅참, 요가 매트 위의 고요, 커피 한 잔의 향기. 그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취향을 만나고, 어떤 것과는 이별하겠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이다. 취향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방식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길이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의 취향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