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새로운 반에 배정될 때마다 항상 회색 갱지에 가족관계와 장래 희망 취미 따위를 적어 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취미라는 진부한 항목에 늘 진부한 답을 적어내곤 했다. 음악 듣기, 그림그리기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였다. 종종 내 취미가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다. 매 순간 걸을 때마다 듣는 게 음악이었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리던 게 그림이었다. 그런 일상적인 것들이 '취미'가 될 수 있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취미가 뭐냐는 질문은 가끔씩 받았다.
"음... 스포츠 경기 보기...?"
기대하는 눈빛에 어울리지 않는 싱거운 대답을 건넸다. 속으로 '야구는 월요일 빼고 매일 하고 축구는 주말마다 하니까 이것도 그냥 일상적인 일인데 이게 취미가 될 수 있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흥미롭다는 듯 들어줬다. 무언가 열정을 가지고 보는 것이 부럽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최근에야 깨달았다. 사실 취미는 별거 없는 것 같다. 요즘 내게 취미는 나의 취향을 찾아 나서는 모든 여정이다. 요즘은 나에게 영감이 되어줄 느낌 좋은 피드, 트렌디한 레퍼런스 등을 수집하고 있다. 습관처럼 찍는 사진도, 나만의 아카이빙도, 스포츠 경기를 보고 드는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떠드는 것도 모두 취미였다.
다른 사람들의 취미는 거창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정작 주변 사람들의 취미가 궁금했던 적은 있었나. 취미가 뭐냐는 질문은 받아봤어도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말에 뭐 하세요?'를 다르게 말하면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쉴 때 하는 것. 딱 그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취미가 궁금해졌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질문을 하나 올렸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905_18391786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05190937_technamy.jpg)
친구들의 답변은 의외로 소소했다. 맛집 탐방, 헬스, 뜨개, 남자(?)
진작 질문해 볼걸. 괜히 내 취미를 검열하고 있었잖아?
엄마의 취미
엄마는 아침마다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성경 구절을 필사하는 것 같다. 손이 굳을까 봐 자꾸만 뭔가를 쓰고, 생각하려는 걸 안다.
최근엔 내가 일하고 있는 미술학원에서 도예 성인 취미반 클래스가 오픈됐다. 학부모님을 상대로 한 이벤트성 도예 수업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강사의 어머니도 괜찮다며 흔쾌히 제안해 주셨다. 나는 평소 그릇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엄마에게 바로 이 소식을 전했고, 엄마도 기분 좋게 수락했다.
![[포맷변환][크기변환]KakaoTalk_20250905_183917864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05191153_tglmxykz.jpg)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달을 꼬박 도예에 집중했다. 그 덕에 우리 집은 엄마가 만든 그릇으로 가득하다. 직접 만든 그릇에 직접 요리한 음식을 고이 담아 먹는 건 정말이지 근사한 행위였다.
엄마는 총 8번의 도예 수업을 마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떠났다. 바로 캘리그라피였다. 연습용 공책과 붓펜을 준비하는 엄마가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매일 아침 필사하는 성경 구절을 예쁜 글씨로 적고 싶어졌나 보다. 그렇게 엄마의 취미를 이해하고, 또 응원하게 됐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을 향유할 때면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과 취미를 엿볼 수 있다. 바보같이 그들의 글을 보며 내 취미는 되게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생각을 거두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화 예술 애호가답게 그들의 취향은 확고하고 취미도 재밌어 보인다. 특히 같은 대상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해지는 것들을 보면 흥미롭다.
이래서 취향은, 취미는 진부한 게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적어냈던 취미, 음악 듣기조차 서로 다른 감상으로 기록되고 공유되는 한 결코 진부해질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