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SAL)은 예술감독 배진호를 중심으로 2021년 창단된 복합예술 단체다. 배진호 감독은 “저돌적이면서 감각적인 안무가”로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한 무용단은 단순히 ‘춤’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장르와 협업하며 동시대의 과제를 공간예술로 풀어낸다.
이번 [Bad Spicy Sauce] 또한 마찬가지로 경계를 허물며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보였다. '성(sexuality)'을 주제로 3년간 이어진 ‘색정만리(色情萬里)’ 시리즈의 연작으로써, 첫 작품이었던 작년의 [2122.21222] 초연과 유기적으로 맺어진 흐름이다. 인간 신체와 정신의 유기적 연결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육체 : 인간적 연대
무대는 남성과 여성이 무대 끝에서 서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치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모습 그 자체를 온전히 보여주듯, 긴 적막으로 표현된다. 관객들이 어렴풋이 추측해 볼 뿐인 그 형용할 수 없는 시간 끝,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난다. 어떤 이야기가 무용수 사이에서 펼쳐지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짐과 동시에 음악도 점차 빨라진다. 이에 육체적으로 표현한 안무의 템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실제 관객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감각 너머의 경험을 선사한다. 떨리는 심장을 몸 밖으로 고스란히 표출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Bad Spicy Sauce]에서는 본질적인 ‘소통’ 방법에 대해 연구한 점이 가장 돋보인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주제와는 달리, 단순히 성(性)적인 관계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무대 위 두 사람은 원초적인 안무로 교감하며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럼 다른 사람은 뒤로 몸을 기울인다. 또, 한 사람이 팔의 곡선으로 동그란 공간을 만들면, 다른 사람은 원형의 모양새로 그곳을 채운다. 마치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퍼즐이 된 것처럼 상호작용을 하며 완전한 하나를 만들어내는 ‘합일(合一)’의 경험을 이루는 것이다.
정신 : 화학적 변화
합일이라는 단어에서는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가 있다. 앞서 본 것처럼, 신체적으로는 그렇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떨까? [Bad Spicy Sauce]가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됐음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유전적, 감정적, 생리적 흔적에 대한 것이다. 즉, 누군가와의 접촉으로 생긴 호르몬, 땀, 체취, 숨결, 체온 등이 소통을 위해 필요한 단어가 되어 정서적 결속을 이루고 ‘마음의 일치’라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무대에서도 각 원자를 연상케 하는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신체의 근육을 미세하게 쓰는 단조로움을 미시적으로 표현하지만, 거시적으로는 복합적인 결합을 이어간다. 둘이, 셋이, 어쩌면 넷이 뒹굴고 섞인다.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느슨한 원자 결합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데 무슨 끌림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공연이 중반을 넘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면, 음악과 함께 무용수들은 그 어떤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실타래처럼 소용돌이 그 자체의 모습으로 엉켜있다.
결합의 변화, 새로운 화합물의 탄생
그러다 갑자기 미세하게 밝아지는 공연장 조명으로 한번 흐름이 뚝, 하고 끊기는 순간이 있다. 끝인가? 싶을 때 그 너머의 시간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화합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다. 이와 함께 내가 나로, 네가 너로만 여겨졌던 무수한 이분법적 사고들이 해체된다. 대신, 한 생명 안에 다른 생명이 들어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한다. 어떠한 특정 음식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 속 함께 있지 않아도 이미 깨어난 감각들은 대상의 모습으로 피어오른다. 무대 위 무용수들이 한 사람을 향해 달려들어 몸 구석구석을 침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안에 깊숙이 투과한 ‘너’는 ‘나’의 주체성을 빼앗는다. 공연은 이 치밀하고도 긴박한 마지막 순간을 ‘벼랑’으로 연출한다. 그가 무대 끝에 아스라이 깔려있고, 무용수들이 위에 올라 마지막 죽음의 길목을 가름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이때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무대 속 그가 악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발버둥 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뭘까? 하마터면 죽을 뻔한 꿈 그 안에서 폭발하는 충만함을 느낀다. 고통과 쾌락의 한 끗 차이, 이것이 미묘한 긴장감으로 전해진다.

시작은 두 사람이었고,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사람이다. 그 안에는 타인으로부터 화학적 변화를 겪은 우리가 원소처럼 스며든 흔적으로 남아있다. 결국 너의 존재가 나의 감각과 정신 안에 있기에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Bad Spicy Sauce]는 연고 없는 두 인격체가 육체, 정신적 관계를 통해 교감하며 서로의 일부가 되는 모습을 무용과 접목해 표현한다. 마침내 합의일체(合意一體)를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