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좋은 일요일,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앞에 내린 나는 마치 갓 입학한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까지 콘서트,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나름대로 공연 관람에는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는데(그렇다고 조예가 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아직 페스티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긴장되는 마음과 들뜬 마음이 합쳐져, 전날부터 '페스티벌 꿀팁', '페스티벌 준비물' 같은 것을 이리저리 검색해 보고, 페스티벌에 익숙한 일행에게도 조언을 구하고 있던 차였다.
낯선 환경에 놓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설렘 섞인 두근거림. 그럼에도 오늘, 첫 페스티벌의 경험에서 무언가 얻어 가고 말겠다는 패기 어린 다짐과 함께, 누가 봐도 페스티벌에 온 것 같은 사람들을 따라 부지런히 공연장으로 걸었다.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5]는 음악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홍대 롤링홀의 3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페스티벌로, 화려한 라인업으로 오픈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메인 스테이지였던 '사운드 플래닛 스테이지'에는 우즈(WOODZ), 넬, 체리필터 등 페스티벌에 문외한인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뮤지션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메인 스테이지에 자리를 잡았다.
안타깝게도, 페스티벌 하면 연상되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한가롭게 공연을 즐기는 장면은 초반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우선 돗자리 구역의 엄청난 인기로 돗자리를 펼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었던 데다가,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던 일요일 오후에는, 나도 익히 이름을 들어본 바 있었던 엑스디너리 히어로즈(Xdinary Heroes)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인생 첫 페스티벌 방문에서 경험하게 될 첫 번째 스테이지인 만큼, 기대와 설렘이 이미 한도를 초과했음에도 공연은 내 혼을 빼어놓기 충분했다. 지금 쿵쿵거리는 것이 드럼과 베이스의 비트인지 내 심장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 속에서 여러 멤버가 조화롭게, 또 때로는 개성 있게 만들어낸 멜로디가 무대를 채웠다.
YB가 무대에 깜짝 등장했을 때 더 이상 증폭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이 밴드는 그 열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한 번도 쉽게 쉽게 쉬어가는 구간 없이 꽉 찬 무대를 완성해 냈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종료되고 무대를 전환하는 타이밍이 되자, 마치 내가 무대에서 연주라도 한 듯 기운이 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진이 빠질 정도로 음악을 즐겼다면, 페스티벌의 또 다른 재미인 음식을 맛볼 차례였다. 페스티벌 마스터인 일행을 따라 찾아간 푸드 존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대기 중이었는데, 키오스크로 편하고 빠르게 주문할 수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페스티벌의 인기 메뉴라던 '김말국(김치말이국수)'이 아닌 다른 메뉴를 선택했기 때문인지 음식을 바로 픽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스티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맥주까지! 마음은 충만하고 양손은 무겁게 자리로 돌아왔다.
스나이퍼의 마음으로 빈 곳을 탐색해 겨우 찾아낸 틈에 일행이 가져온 아담한 돗자리를 꽉 채워 피고, 보고 나서 깔깔 웃었던 깃발의 멘트처럼 합주(합동 음주)를 즐겼다. 화려한 음악을 배경으로 맛있는 음식,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아직 여름이라 쏟아지는 태양 빛이 뜨거워 양산을 펴고 먹었어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페스티벌의 낭만으로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 나자, 넬의 무대가 시작될 시간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페스티벌에 문외한인 만큼 밴드 음악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나에게 넬은 발라드 음악으로 더 익숙한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초반의 무대는 그렇게 '내가 잘 아는' 넬의 음악으로 구성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잔잔한 음악으로 템포를 조절하고 나더니 파워풀한 음악이 그 자리를 채웠다. 라인업을 보고 내가 기대했던 종류의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귀와 심장을 모두 사로잡는 짜릿한 무대에는 영혼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함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과 귀를 활짝 연 채로 무대에 집중했다. 뮤지션들이 서 있는 뒤에 재생되는 배경 영상까지도 한껏 몰입을 도왔다. 무대가 모두 끝나고 난 뒤 이래서 '넬'이구나, 를 실감하며, 조용히 플레이리스트에 넬의 음악을 추가했다.
페스티벌 하면 기대하는 장면 하나가 파아란 하늘 아래 깃발, 맥주 그리고 음악의 조화라면, 노을이 지고 어두운 하늘이 내려왔을 때의 분위기도 정말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우즈(WOODZ)의 공연이 시작될 즈음 하늘은 어둑해졌고, 리드미컬하게 휘날리는 깃발과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은 한낮의 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대로 가득한 무대 위에 올라온 우즈는 노련한 무대 매너와 폭발적인 가창으로 기대에 화답했다. 게다가 공연에 익숙한 뮤지션의 바이브를 한껏 살려, 노래를 따라 할 수 있는 구간을 알려주며 공연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모두가 아는 명곡 'Drowning'을 부를 때 공연장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우즈는 혼자 60분의 시간을 채웠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무대를 선사하고 떠났다.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우즈의 공연까지만 볼 수 있었던 탓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건물 안으로 향했다. 공연장을 찾을 때는 너무 대기 줄이 길어 포기했던 셔틀버스였지만, 돌아갈 때는 그보다는 여유로워서 덕분에 편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이 없어 다른 페스티벌이나 스테이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첫 페스티벌 참가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뮤지션마다 50분에서 60분 정도의 긴 시간이 주어진 덕에, 무대 별로 그들의 음악을 충분히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좋았다. 그리고 사람은 많았지만 동선 구성을 효율적으로 해서 어디든 길게 기다리거나 지루했던 적이 없던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집에 가는 내내, 눈앞에는 내가 아직도 페스티벌의 안에 있는 듯 그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파란 하늘을 채운 각양각색의 깃발과 환상 같았던 비눗방울.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은 내게 충만해진 마음과 꽉 찬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남겼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갈 수 있는 페스티벌을 검색하고 있다. 결국 페스티벌은 이렇게 사람을 다시 부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