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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맆소녀(The Silent One)>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폭력과 상흔의 무대
NGO 단체 세이프코리아의 의료 구호 활동에 지원한 연영은 인도에서 농인 소녀 까이를 만난다. 까이는 불법 아동 노동 농장을 운영하는 어머니 시마 밑에서 담뱃잎을 수확하다 시마가 체포된 뒤 세이프코리아의 보호를 받고 있다. 연영은 또래보다 몸집이 큰 까이가 자신의 나이를 여덟 살이라 답한 데서 의문을 품다 그녀가 거인증과 니코틴 중독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연영은 까이를 돕기 위해 난치병 캠페인을 기획하지만, 시마의 반대로 난관에 부딪힌다. 어느 날 마을에서 수간 당한 소의 사체가 발견되고, 폭동과 함께 까이가 실종된다.
지난 9월 6일부터 14일까지 극단 생존자프로젝트의 대표 레퍼토리 [맆소녀(The Silent One)]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재연되었다. 연출은 맡은 본주는 폭력과 상흔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을 테마로 지난 수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맆소녀(The Silent One)] 역시 양천구 입양아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 인도의 아동학대 실정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을 통해 폭력 속에서 자라난 생명이 마주하는 잔혹한 현실을 묵직하게 조명한다.
운명이라는 굴레
[맆소녀(The Silent One)]의 이야기는 개발도상국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꽃과 음식 앞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풍경은 인도인들에겐 일상인 듯하다. 신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언제나 ‘운명’이란 섭리 아래에서 흘러간다. 까이가 거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술을 거부하는 시마의 말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신이 카이에게 특별한 몸을 준 거라면 거기엔 그 아이의 운명이 담겨 있는 거야.”
세이프코리아의 현지 코디네이터 명무 역시 운명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다며 까이를 둘러싼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명무는 한국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어렸을 때 미혼모인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뒤 보호 시설에서 자랐다. 그는 비가 오면 굴속에 숨을 수 있는 개미가 되고 싶다던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그녀가 개미로 태어나길 바란다.
전생의 업보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윤회 사상은 카스트 신분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낮은 계급으로 태어나 비천한 삶을 사는 것은 전생에서 다르마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작 여덟 살인 까이가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에 속한 성인 남성과 혼인을 맺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현실은 참담하다. 어두침침한 조명과 온통 무채색으로 가득한 무대 세트는 이들의 삭막한 운명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침묵을 가로지르는 기억
[맆소녀(The Silent One)]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The Silent One’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이자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침묵을 택한 방관자의 얼굴이기도 하다. 폭력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만다. 윤회와 업보는 까이와 같은 죄 없는 죄인들의 입을 틀어막는 신의 법이다. 이에 분노하면서도 위험에 처한 까이를 방관한 연영은 또 다른 ‘침묵하는 자’이다. 까이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한 명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영은 자신을 닮은 타인의 비극과 자신의 무력한 처지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듣는 환청과 까이가 듣는 들개의 발소리는 어디서 온 것인지. 왜 그곳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마침내 자신과 까이가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은 연영은 기억을 되찾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한테서 사라졌던 아이가 있었어. 근데 여기 있어. 아니, 사라지지 않아. 사라지지 않을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읊조리듯 전하는 연영의 말은 그녀 자신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담배꽃의 꽃말인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와 ‘기억이란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란 대사는 폭력으로 인해 사라진 목소리의 빈자리를 기억이 채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억하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돌아온 기억은 우리를 폭력의 원점으로 데려가 그것을 들여다보게 한다.
제4의 몸짓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라는 폭력의 삼각형에 또 다른 선이 그어지는 시발점은 기억이다. 기억이 보존한 폭력은 새로운 시선 속에서 진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피해자에겐 저항이 되고, 방관자에겐 연대가 된다. 피해자는 기억을 통해 자신의 상흔과 마주하며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몸짓을 발견한다. 피해자의 몸짓을 통해 드러난 폭력은 다시 방관자의 기억이 되어 몸을 움직인다. 마침내 그들이 손을 잡는 순간, 피해자와 방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프로그램북의 설명을 빌리자면 [맆소녀(The Silent One)]에서 시바의 이마에 달린 세 번째 눈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임의 시선을 중의적으로 나타낸다. 한편 힌두교에서 해는 진실을 가리는 빛, 달은 진실을 드러내는 빛을 의미한다. 까이의 비밀에 다가서는 연영을 비추는 커다란 달은 만물을 응시하는 초월적 존재이면서 시선이 품고 있는 진실로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너, 나, 달, 알아.” 연영과 까이와 달만이 아는 비밀은 우리에게 세 번째 눈을 준다. 우리의 시선은 진실의 편이 될 것인가, 방임이 될 것인가? 제3세계를 둘러싼 제3자의 시선을 달빛으로 이끄는 것은 [맆소녀(The Silent One)]와 같은 제4의 몸짓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장면의 개기일식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달은 폭력과 학대로 얼룩진 어두운 현실을 감추는 태양을 가림으로써 밤을 되살리고, 그 속의 진실을 드러낸다.
생존에서 삶으로
홀리는 매년 2~3월경 보름날에 열리는 힌두교 전통의 봄맞이 축제로, 전설 속의 악녀 홀리카를 상징하는 인형을 불태우는 전야제가 있다. 디네쉬가 수감된 중앙 교도소가 시마의 방화로 불길에 휩싸이며 무대 위의 거대한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권선징악의 신화가 현실의 정의 구현과 중첩되는 순간이다. 연영과 까이를 비추는 핏빛 보름달을 보며 이 장면을 위한 무대 장치였구나, 생각했다. 폭력의 삼각형을 부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방관자가 연대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제4의 꼭짓점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 역시 중요하기에.
결국 까이는 수술과 함께 결연 아동 후원을 받게 된다. 출생 신고조차 하지 못했던 까이에게 주어진 신분증은 그녀의 시간이 ‘생존’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까이와 작별하는 연영 역시 무언가를 털어낸 듯한 모습이다. 둘은 인사말 대신 가슴에 얹은 손바닥의 온기로 미래를 기약한다. 헤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마음에 품고 서로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그렇게 폭력의 생존자들은 연대를 통해 삶으로 나아간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이들의 몸짓이 무대 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와 성폭력이라는 트라우마적 소재를 다루는 만큼 불안을 느끼는 관객을 위한 열린 객석을 운영하고, 이어플러그, 릴랙스 쿠션, 스트레스볼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도움 가방’을 무료로 대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를 대상으로 할인을 진행하고 수어 통역과 자막 해설을 제공하는 등 공연의 메시지가 무대를 넘어 세상에 스며들도록 신경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연습실과 극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공연 의상과 소품의 판매 수익이 아동을 위한 기부금으로 활용되는 기후 프로젝트 역시 제3세계에 대한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여러 방면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사유 끝에 만들어진 공연이라는 인상이다. 기억하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기에 기억은 가장 작은 연대이자 모든 연대의 토대이다. 내게 [맆소녀(The Silent One)]는 몸짓이 되기 위한 기억을 요청하는 몸짓처럼 다가왔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에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믿거나 말거나지만 학대 피해 아동을 돕는 후원 단체에 소액을 기부했다. 좋은 공연을 관람한 보답이라 생각해도, 지난 침묵의 대가라 생각해도 아깝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