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아리의 호출 - 서울문화재단 '시민관객단'이 되다.
글이 글을 부르고, 공연이 공연을 부른다.
뻗은 만큼 앞선이 길어지는 요즘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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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중순 무렵,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글을 서너 편 발행하던 중 우연히 서울문화재단에서 시민관객단 3기 모집 소식을 알게 되었다. 보자마자 외쳤다. — “아, 이건 해야 한다. 아니, 해야만 해!”
누가 봐도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활동이 아니던가? 당시엔 줄라이 페스티벌만 눈앞에 있었고, 그 이후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꾸준히 공연을 보며 ‘듣는 귀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만 조금씩 자라나던 시점이었다.
시민관객단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순수예술’ 작품을 월 2회 이상 관람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월 2회? 나는 월 10회!)
공고를 발견한 그날, 써 놓았던 글을 첨부해 자기소개와 함께 구글 폼을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꾸준히 공연 관람 기록을 남겨둔 덕분에 시민관객단 3기라는 타이틀과 공연 관람 기회를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당장 성과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어떤 방식으로 보답을 받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보지 않을 거라 여겼던 글이 내 명함이 되고, 텃밭을 여는 프리패스권이 되어 주지 않는가. (역시, 그냥 해야 돼)
처음엔 지원작 중에서 내가 직접 고르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재단 배정 시스템이었다. 클래식만 보려던 나의 원대한 계획은 무너졌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다.
비슷한 것만 들이키면 금세 매너리즘이 오고, 어항은 좁아진다. 연극, 무용, 음악, 전통, 시각, 다원이라는 다채로운 장르 안에서 넓고 다양한 공연을 경험해보는 일이 장기적으로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더군다나 클래식이 이제는 내게 힐링이라기보다 자기계발과 도전의 영역이 되어버려서, 아-무 생각 없이 관람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져버렸다. (최애 공연 제외)
오히려 연극, 뮤지컬, 발레의 대사와 몸짓, 조명이 내 복잡한 머릿속을 대신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고, 편협했던 선입견을 단번에 깨주기도 했다. 온라인 줌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9월에 관람할 공연을 확인해 보니, 운 좋게도 첫 번째 관람작은 ‘제14회 헤이리챔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였다. 주제가 특이했다 — '바흐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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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보니 두 곡은 바흐, 한 곡은 조우성의 신작 ‘바흐의 메아리’였다. 본 페스티벌을 위해 새로 작곡한 곡이라니— 이 공연, 연주자들의 진심이 한가득 담겼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걱정도 조금 되었다. 바흐가 아니던가. 연주자들에겐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지만, 나에겐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다.
아직 적극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단계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다들 바흐의 곡은 한 번씩 꼭 하고 지나가니까 결국 피할 수 없는 눈맞춤 같은 존재랄까. 그는 클래식이 왜 ‘교양’으로 불리는지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형식으로 음악을 쌓았는지 알아야, 이 방대한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도대체 이게 뭐길래 다들 유심히 보는 거지?”라는 물음만 머릿속에 동동 뜨지 않는가? 바흐의 곡이 나한테 딱 그렇다. 아, 듣기 좋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면서도 자꾸 혼잣말을 하게 된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가고는 있는 거야?
몇 번 그의 곡을 들어보니 ‘명상’이 따로 없다. 사람을 ‘제자리’에 세워두려는 의도 같기도 했다. 뭘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 모르는 게 정답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래나저래나 바흐를 모르면, 다른 걸 알아봤자 결국 피상적으로만 스쳐 지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겐 이만큼이나 어려운 사람이지만 옷자락만은 꼭 붙잡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 공연이 바흐의 메아리가 되어 내게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남의 손을 통해서!
이 정도면 나한테 일부러 이 공연을 배정한 건가 싶다. (자의식 과잉이다) 세상이 끊임없이 나를 공부시키려 드는구나 싶은 건, 이상하게도 “아, 이 작곡가는 당분간 절대 안 만날 거다”라고 생각한 순간마다, 다음 공연에 턱- 하고 메인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맞나)
안주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 같다. 뭐가 되었든, 나는 이 공연을 여러 의미 선상에서 관람해야만 했다. 바흐와 눈인사도 해야 했고, 보고서도 써야 했고, 리뷰 글도 쓰고 싶었으니까… 결국 내가 버텨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별일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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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주말 공연이었다. 평일을 가뿐히 보내고, 퇴근 시간의 고통을 받지 않은 채 남부터미널로 향하면 될 일이었는데 — 나는 욕심이 끝이 없었다. 그 주 평일에도 거대한 클래식 공연을 무려 두 편이나 관람한 것이다.
저녁에 잠깐 2시간 클래식을 들은 게 뭐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 공연이 시작되는 7시 30분을 지나 밤 9시 30분이 되면 내가 할 일이 용솟음쳤다. 더군다나 주말에 공연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니까 리뷰를 미룰 수도 없었다. (오호호)
글을 쓰기 위해 공연을 보고, 공연을 보기 위해 글을 쓰는 — 이 고단한 뫼비우스의 띠가 요즘 너무나도 감사하면서도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아름다운 목요일을 지나 고통스러운 금요일을 통과하고 맞이한 게, 이 메아리 울리는 바흐의 토요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먼) 옆동네 전당이 되어버린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길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왜냐? 지하철에서 꼬박 1시간을 길게 헤드뱅잉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환승도 못할 뻔했다. (불면증 있으신 분들, 한 달에 5회 이상 공연 관람 어떠세요? 단, 클래식 한정)
한참을 잠에 빠져 있었으니 개찰구 밖으로 나오면 눈이 번쩍일 줄 알았는데 —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하는 비루한 체력 소지인에게 그런 기쁜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해파리마냥 흐느적-흐느적-거리며 “제발 밖에 있을 때 비가 내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염원하며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는 무척 좋았다. (나뭇잎에 얹힌 빗방울은 속절없이 맞았다. 앗, 차가!)
주말 2시 공연이었고, 시작 15분 전쯤 도착했는데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공연뿐 아니라 그날의 관객을 구경하는 재미를 들인 덕분에, ‘오늘은 어떤 분들이 오셨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 가서 할 게 없기도 했다)
일단 남녀 성비는 비슷했지만 연령대가 다소 높았고, 모임 단위로 온 관람객도 꽤 많았다. 인터미션 때는 김응수 바이올리니스트도 계신 걸 보았다. 혼자 계신 한두 분을 보면서, 혹시 — 당신 시민관객단…? 이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동동 떴지만, 차마 말을 건네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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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은 IBK기업은행챔버홀. 이번에는 매번 앉던 왼편을 벗어나 오른쪽 사이드 좌석에서 관람했다. 오늘 연주에 하프시코드(건반악기)가 사용되었는데, 예술의전당의 그것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봤던 하프시코드를 주말이 되자마자 또 만났다. 인생은 수미상관이야)
구체적인 레퍼토리는 무엇이었을까. 9월 6일(토) 무대에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BWV 1048, 오보에 협주곡 d단조 BWV 1059R, 브리튼의 Prelude & Fugue Op. 29, 조우성의 신작 「바흐의 메아리」,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이 연주되었다. 앙코르로는 하이든의 교향곡 제45번 ‘고별’ 4악장이 준비되었다.
그렇다면, 시민관객단의 눈으로 본 헤이리챔버오케스트라의 무대는 어땠던가? 천천히 회상해 보자.
2. 메아리 속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BWV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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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I. Allegro — 빠르게, 생동감 있게.
바흐는 이래나저래나 참 끼어들 틈 자체가 없다. 다비드 조각상 앞에서 굳이 뭐라 말할 수 없듯, 바흐의 곡 앞에서도 괜히 해설을 얹기가 어렵다. 그냥, 바흐가 납신 것이다! 겸허히 받아들이며 들으면 되는 1악장이다. 마침 너무 나태해지지 말라는 듯, 생각보다 꽤 생기 있게 밀고 나가 주니 그 자체로 들을 만하다.
서주처럼 들리기도 하는 1악장이다. 잡념을 내려놓고 이 자리에서 준비를 시작하라는 안내 음성 같기도 하다. 듣기 평가 시작 전에 잠깐 흘러나올 법한, 단정하고 간결한 선율이 길게 그려진 느낌이랄까.
흥미로운 건, 이 음악이 뭔가를 ‘날려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려가는’ 것도 아닌데 — 방향성은 분명 앞으로를 향한다는 점이다. 뭐 하는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체계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제자리에 머무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소리가 소리를 밀어내고, 음들이 공처럼 옆으로 건네지며 파동처럼 번져간다. 고조는 아주 조금씩만 일어나고, 체통 없이 튀어 오르는 소리는 단 하나도 없다.
연주자들이 너무 능숙하다. 무조건 절제된 느낌은 아닌데 이미 너무 잘해버리니까 초심자는 절대 낄 수 없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고수들의 합주, 말 그대로 프로들의 잔치다.
II. (Adagio) — 느리게, 여유롭게.
이 악장은 특히 짧았다. 거의 ‘두 화음’으로 이어지는 연결부처럼 스쳐 간다. 하프시코드의 한두 번의 오르내림과 현악의 얕은 숨으로 지나가버린다.
III. Allegro — 빠르고 경쾌하게.
이렇게 고상하게, 또 빠르고 경쾌할 수가 있구나. 아까보다 조금 더 뚱땅거림을 줄이고 발걸음의 무게를 살짝 덜어낸 정도다. 공중에 흐름을 완전히 띄워낼 타이밍이 아닌가 싶었는데— 어느새 파도가 되어 있어서 뭐지, 싶었다. 관객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갈 길만 가버리는 곡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만큼 배려심이 없는데도 지켜보게 만드는 건 결국 그게 바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만큼 속도감이 있으니까, 또 그 나름의 볼거리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들었던 바흐의 곡 중에서는 가장 서사적이다. 원래는 소리의 방향 자체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오거나, 어떻게든 내 안쪽으로 돌아온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건 누가 조종한 것처럼 앞으로 진출하고 나아가 버린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전진도, 후진도, 튀어오름도 아닌 흐름 속에서 보고는 있는데… 차은우 군단이 지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막 다정하진 않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오보에 협주곡 d단조, BWV 1059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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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아깐 그렇게 맹렬하게 달리더니, 여기서는 조금 숨을 고른다. 오보에가 늦지 않게 현악기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꽤 분명한 색감의 악기였다.
‘색감이 분명하다’는 건, 소리가 귓가에 쨍하게 닿는다는 뜻이다. 당신이 아는 오보에의 소리는 어떤가? 사람마다 기억하는 결이 다르거나, 아예 모르는 이도 있겠다. 나 역시 흐릿하게 ‘이런 소리 아닐까?’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오늘 바흐의 품 안에서 들은 오보에는 확실히 목소리를 더 선명히 띄우고 있었다.
평소 중저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방송 톤을 위해 음성을 밝게 올리듯, 오보에도 바흐가 의도한 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리를 한껏 드높인 것 같았다. 연주자의 두 팔까지 함께 띄워 올린 듯한 느낌. 그만큼 이 순간의 긴장과 가치를 분명히 실어 연주하고 있었다. (설레 보이기도 했다)
듣다 보면 첫 곡과 비슷한 듯 다른데,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지 그 목적지가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기분이었다. 아마 오보에 덕분일까? 두터운 선 하나가 길을 함께 지나가 주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특정 주제가 반복되는데, 그게 묘하게 귀에 남는다. 둥따당-둥따당-… 대충 이런 흐름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내가 아는 오보에의 목소리가 다시 나타난다. 아까는 너무 생기 있어서 거의 다른 악기인 줄 알았는데.
이 곡은 바흐가 미완으로 남겼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들어본 적 없는 길이감과 파동이 있는 듯했다. 원래는 음표를 더 짧게 끊어서 탁탁 튀길 줄 알았는데, 이 안에서도 선율을 길게 그려낼 수 있구나 싶었다. 어쩜 이렇게 경건한 바이브일까. 애초에 청중에게 생각할 틈 자체를 주지 않으려는 것만 같았다.
“감히 내 음악을 들으면서 네 사견을 끼우려 해?” 하고, 부드럽게 입이 막히는 기분. 연주자들은 왜 이 사람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레퍼토리로 세우는 걸까? 그렇게 배워온 걸까?
음악을 깊이 배우다 보니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걸까. 뭐, 나도 이렇게 무작정 듣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 그냥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
지금은 열심히 이론으로 깨우치고 실전으로 뻗어내는 사람들 손끝에 의지해, 귀로 담아내는 수밖에 없겠다. “아, 바흐의 서정은 이런 형태겠거니” 하면서! 나는 마냥 구경하기 바빴는데, 사람들은 곡이 끝나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봐라, 내가 이만큼 배움이 부족하다니! 가짜로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이것 참.
벤저민 브리튼, Prelude & Fugue, O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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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충분히 준비된 연주자들의 첫음은 참 들을 만하다. 서사가 둥—당 하고, 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한순간에 드러난다.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 폭풍을 그려내는 양상을 지켜보는 맛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음 하나, 겹 하나 얹힐 때마다 바흐적 전통을 존중하려는 의도가 은근히 느껴졌다. 긴장감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방식이다. 빈 틀에 표면이 고른 소릿돌을 하나씩 꾹꾹 끼워 넣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그 공든 탑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까 싶을 때 둔탁한 기세로 대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날아오르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여긴 황무지와 다름없었다. 띄워내는 음보다 가라앉는 것들이 더 많았다. 쿵쾅거리며 바닥을 수차례 내리찍다가, 결국 막 내던지듯 터뜨린다.
이러다 땅이 갈라지겠다. 폭발 직전까지 달려드는 건 아니지만, 완성의 대미를 장식하는 음들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듯한 압박감이 있다. 그러다 몇 차례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호흡을 가다듬다가, 서서히 기세를 줄이며 가라앉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응축된 힘을 단 한 번의 ‘툭’으로 보여주고 끝낸다.
조우성, 「바흐의 메아리」 (세계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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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첼로가 두드러진 솔로 역할을 맡아 무대를 장식했다.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지휘자와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무대에 서는 것도 반가웠지만, 이 페스티벌을 위해 작곡된 초연곡을 실연으로 듣는 경험이 특히 좋았다.
처음엔 조금 의아했다. 첼로가 ‘G선상의 아리아’를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샘플링한 건가 싶었다.
첼로를 중심으로 양옆에서 현악기들이 장식음을 차곡차곡 더해준다. 그림자처럼 은은히 드리우면서 잔향을 그려주는 듯하고, 신비로운 기색 자체를 더 선명히 강조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사운드가 한층 다채롭게 확장된다.
숨을 들이쉬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듣기 좋은 바흐의 이명만 같다. 심장이 잠시 멎은 뒤에 들려오는 고상한 아우성 같기도 하고— 묘하다.
다만 워낙 유명한 선율 위에서 이런 변주를 만나니, 서로 다른 결들이 겹쳐져 거의 무지개처럼 보인다. 왜 제목이 ‘메아리’일까. 서서히 퍼졌다가 스며드는 소리의 모양새 때문일까.
방향성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전체적인 구조나 다루는 방식은 현대음악에 가까운데, 안에 담긴 감정은 묘하게 고전적이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복잡한 감정을 다채롭게 배치해 놓은 곡이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풀치넬라」 모음곡
![[크기변환][포맷변환]IMG_843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08111649_yprorrmh.jpg)
ⓒ 유진
내가 못 친해진 작곡가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트라빈스키다.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네..
I. Sinfonia — 서곡, 도입부
이 첫 서곡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듣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바흐한테 잔뜩 시달리고 와서 약간 피곤했다. 다만 이번 곡에서 제1바이올린을 맡은 분이 전 무대에서 등장하지 않으셨던 분이라, 색다른 음색이 눈에 띄었다.
II. Serenata — 세레나데, 사랑 노래
어떻게 세레나데를 부를까 싶었는데, 의외로 담백했다. 노골적인 사랑 노래라기보다는, 사랑 때문에 죽네 사네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측은한 표정의 누군가가 그려진다.
일단 물음을 받았으니 대답은 해야겠고, 할 말은 많지만 지나온 나날을 떠올리려니 생각이 깊어진다. 지난 가을을 떠올리는 기색 같기도 하고, 세레나데를 부르던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III. Scherzino — 작은 스케르초, 장난스러운 악장
누가 마음이 복잡하든 말든, “나는 지금 사랑에 빠졌다”라는 한 문장이 온 마음을 채운 소년의 손짓이 보인다. 그래, 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다. 나뭇잎도 너를 위해 춤을 추고, 대지도 너를 위한 무대다.
반바지에 긴 양말을 신고 길가를 뛰어다니는 말끔한 차림의 아이를 떠올려 보자. 신나서 종종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 여기도 첫사랑이 있네.
IV. Tarantella — 타란텔라, 빠른 이탈리아 춤곡
관악기가 바쁘게 재근거리기 시작한다.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른 크기로 사근거릴 수 있을까. 현악기들은 짹짹대며 맞장구친다. 이 자체로 하나의 광경이다. 장난스레 순차적으로, 또 웅장하게 눈을 깜빡이다 고즈넉해지는 장면을 본 적 있는가? (난 꽤 있다) 빠른 춤인데 품위를 잃지 않는다.
깜빡-깜빡- 눈을 맞춘 채 함께 손을 잡고 둥근 춤을 추는 시간도 있다. 이게 타란텔라의 매력일까.
V. Toccata — 토카타, 화려한 기교적 전개
‘화려한 기교’라고 하지만, 시각적으로 “대단하다.” 하는 기세는 아니었다. 막 날아오르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제때 피어나는 꽃들이 있듯이, 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피어난다. 저 무대가 하나의 화원인 걸까. 가만 보니 오늘은 홀로 추는 춤이 거의 없다.
서로 다른 색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를 바라보는 듯하다. 관악기가 일정하게 길을 내어주는 순간마다 묘하게 ‘행진’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장면을 많이 구경해서 그런가, 집중력을 확 끌어당겨서 참 좋았다.
VI. Gavotta con due variazioni — 가보타와 두 개의 변주, 우아한 궁정 춤곡
목가적인 것도 결국 누구의 평화 안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악장 제목은 가보타인데, 이상하게 ‘가제트 로봇’이 삐걱거리며 산책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여러 사건을 지나 양철 로봇과 이별하는 에필로그를 그리는 듯한 장면 같기도 했다.
햇살이 예쁜 오전, 이 길을 따라 브런치 카페에 들러도 좋겠다. 뭘 주문하냐고? 글쎄, 장난감 써니사이드업이라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아침 컵라면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음악이라 그런가. 비빔밥은 이 곡이 끝난 뒤에나 먹을 수 있겠다.
후반 변주로 들어서면 조금 더 동동- 떠오르는 느낌이다. 한껏 신이 난 것 같고, 음들도 한결 자잘하고 가볍다.
VII. Vivo — 생기 있게, 빠르게
이 장난스러운 뒤뚱거림은 아마 트럼펫일 것이다. 캐릭터성이 아주 선명하다. 이런 꾸왕거리는 듣기 좋은 저음은 이 악기만 낼 수 있으리라. 해그리드가 걸어다닌다면, 배경음악으로 이 곡을 깔아도 좋을 것 같다.
VIII. Minuetto e Finale — 미뉴에트와 피날레
마지막이라 그런지, 선율이 살짝 가라앉아 이별의 아득함을 머금고 천천히 관객에게 다가선다. 그동안 지나온 악장들 중에서도 가장 진득한 무게감이 있었다. 결국 축제의 마무리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침착하게 한 걸음씩 걷다가, 어느 순간 상승하고 점층하며 흐름을 신나게 이끌어 나간다. 악기별로 하나씩 인사를 건네는 장면도 사랑스럽다.
지켜보는 맛이 난다. 딱 보면 안다. 다들 자기 할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걸. 연주가 삶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의심할 것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이 알아서 소리를 시작하고, 지금처럼 딱 — 깔끔하게 끝을 내준다.
앙코르,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고별’ 4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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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너무 웃긴 곡이었다. 왜 웃음이 났냐고? 하이든의 장난스러운 지시사항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한창 지휘를 하고 있고, 곡은 흘러가고 있는데— 연주가들이 한두 명씩 벌떡- 일어나 악기와 악보를 들고 무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엥?
다 같이 우르르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관악기와 현악기가 차례로 하나씩 사라지고, 끝내 무대 중앙에는 지휘자 혼자만 남았다. 웃음 짓는 관객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는 서진 지휘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참 유쾌한 이별이었다!
3. 메아리를 뒤로 하며
![[크기변환][포맷변환]IMG_844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08111449_eftxdwvx.jpg)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근처 카페에 들러 글을 써야지— 했는데, 자꾸만 아른거리는 불안한 일기예보에 결국 노선을 틀어 고속터미널역까지 산책하다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도 공연을 봐야 했기에, 오히려 어딘가 앉아 있기보다 한동안 못 했던 헛둘-헛둘-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부터미널역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서초역까지만 걸어야지! 했는데, 걷다 보니 생각보다 발걸음이 더 길어져 있었다. 작은 결심이 이렇게 긴 결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오늘 공연에서 내가 무엇을 얻었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위태로운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 제발 폭우만 오지 않게…”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다. 빌지도 않았다. 그냥 바라봤을 뿐이다.
그래도 걷는 동안, 단편적인 생각들이 한 줄씩 스며들었다. 바흐는 여전히 알다가도 모르겠다. 스트라빈스키도 묘하게 적응이 안 된다. 현대 작곡가들이 저마다의 장난기와 위태로움을 품고 있는데, 유독 이 사람과는 결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희한해)
막 싫은 건 아니다. 다만 굳이 취향을 나누자면, 이 작곡가는 내 안에서 후발대에 가깝다. 물론 또 모르지. 9월 15일 이후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내 안에서, 이 사람은 바르톡보다 뒤다. 사실 이렇게 취향을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한텐 큰 수확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누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는데, 이제는 옆집 친구 이름 부르듯 작곡가 이름을 논하고 있으니. 웃긴 일이다.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원래 조금 아는 사람들이 말이 더 많지 않은가? 내가 딱 그렇다. 뭐, 공연 하나에서 한 줄씩만 얻어가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직 그들이 부르는 메아리는 내게 닿기엔 아주 멀—리 있지만, 괜찮다.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친해질 운명이니까.
그러니, 지금은 소소하게 귓속말 하나만 던져두자.
“바흐, 느긋이 친해지길 바라!”
— 내 첫 메아리는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