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3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 - 김수연 리사이틀 [공연]

김수연의 바흐와 모차르트와 쇼팽
글 입력 2023.01.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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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연주회 이후 오랜만에 보러 간 리사이틀이었다. 신년에는 금전적인 이유로 교향곡이나 협주곡 공연을 줄이고 피아노 독주회 위주로 가자는 다짐을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밤에 아무도 모르게 했더랬는데, 5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올해 첫 공연이자, 금호아트홀에서 듣는 첫 피아노 리사이틀이자, 재작년 쇼팽 콩쿠르 때 관심있게 지켜본 연주자의 공연인지라 여러모로 기대가 꽤 있었다. 금호아트홀은 이전에 하프 공연을 보러 가느라 딱 한번 간 적이 있는데, 클래식 입문 극초기에 간 탓에 음향이나 홀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잘 남아있지 않았다.

 

롯데콘서트홀이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같은 곳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규모라 피아노 소리가 훨씬 좋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꽤 좋았다. 다만 내 자리가 앞쪽이라서 그랬는지 클래식 전용홀 치고는 반사 음향이 적게 느껴졌던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

 

 

<프로그램>

 

J.S. 바흐

칸타타 제147번 중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프랑스 모음곡 제5번 G장조 BWV 816

 

모차르트

아다지오 b단조 K. 540

 

프랑크

프렐류드, 코랄 그리고 푸가 FWV21

 

쇼팽

2개의 야상곡 Op. 48

피아노 소나타 3번 b단조 Op. 58

 

 

우선 김수연 피아니스트는 내가 유튜브로 들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음량이 큰 연주자였다. 굉장히 단단하고 정갈한 소리를 냈는데, 소리의 질감이 매끄럽게 옻칠한 단단한 나무 가구의 표면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단정한 음색에 이어 해석도 과하지 않아 누군가는 조금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좋았던 연주다.

 

전체적으로 고음부보다는 저음부를 많이 부각시키는 곡들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덕분에 파워풀한 저음부에서 연주자의 매력이 돋보였다. 김수연 피아니스트는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서 2023년도에 총 다섯번 금호아트홀 무대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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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짧고 소품격인 바흐의 BWV147 ‘예수, 인간 소망이 기쁨’(편곡: 마이러 헤스)은 이번 공연을 시작하는 곡으로 뿐만이 아니라 상주 음악가로서 올 한해 하게 될 다섯번의 연주 전체의 막을 올리는 에피타이저 격으로 선곡된 의도가 보였다.

 

BWV147의 담담한 연주에 이어 프랑스 모음곡 5번은 훨씬 밝은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보통 많이 듣는 쉬프가 치는 장조의 바흐는 매우 가벼운데 반해, 오늘 김수연의 연주에서는 무게감을 느낀 구석들이 있었다. Sarabande는 매우 사색적으로 느껴졌고, 특히 다섯번 째 악장 Bourree의 도입부를 갑자기 달려나가듯이 빠르고 강하게 처리한 부분은 이전에 듣던 날렵한 해석들과는 대조되어 묵직한 즐거움을 주었다.

 

다만 마지막 악장 Gigue가 조금 아쉬웠다. 이 부분에서 연주자는 이전 악장들과는 달리 최대한 가벼운 연주를 의도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건반을 비교적 얕게 누르며 산뜻함을 표현했지만 그것이 가벼움 자체를 지향하기보다는 무게를 덜어냄으로써 가벼움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이후 모차르트의 아다지오 b단조 K. 540과 세자르 프랑크의 FWV21은 오늘 공연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였다. 연주자의 음색이 모차르트와 너무 잘 어울렸고, 이 작품 특유의 얇은 칼날 위에 서있는 듯한 비애감과 묘미를 너무 잘 살린 연주였다. 프랑크의 곡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음향적으로 매우 풍부하고 어떤 이미지나 형상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드뷔시의 작품 ‘영상’이 떠올랐다.

 

선율미보다는 추상적인 빌드업에 집중하는 듯한 곡이라 자칫하면 헤맬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반복되며 계속 다시 등장하는 서정적인 주제 선율이 계속 곡을 따라가도록 도움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리사이틀의 베스트.

 

2부의 쇼팽 녹턴과 소나타 3번은 보통의 정서적인 뉘앙스로 가득한 쇼팽보다 훨씬 담담한 쇼팽이었다. 감정적임을 넘어 어쩔 때는 감상적이라고 까지 느껴지는 쇼팽 연주들에 익숙하다가 감정적으로 절제된 연주를 만나니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꾀하는 것이 연주자의 상상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쇼팽 소나타 3번의 3, 4 악장이 너무나 좋았는데, 3악장의 노스탤직한 멜로디가 담백하게 진행되자 악장 내내 천장을 바라보며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마지막 악장의 스펙터클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장 음악 자체에 집중한 구간이었던 것 같다. 4악장에서 돋보인 것은 왼손이 강하다는 점이었는데, 원래부터 이 악장에서 왼손이 상당히 부각되는 폴리니의 음반을 좋아하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실 왼손만이 아니라 양손의 음량이 매우 컸는데, 주선율을 연주하는 오른손은 매우 크게, 왼손은 오른손을 따라잡을 만큼 크게 하는 식으로 두 손이 서로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듯한 강렬함이 있었다. 생각보다 페달 사용량이 많지 않아, 작년 3월에 봤던 짐머만의 페달 사용량이 많은 연주와 크게 대조되는 스타일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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