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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디스코! 햇살 아래 널린 그림들 [미술/전시]

비비안 수터 개인전《디스코》(25.06.12 - 25.09.07, 팔레 드 도쿄) 전시 리뷰

by 김예화 에디터
2025.09.0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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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드 도쿄 입구에 들어서면 북적북적한 카페 뒤로 탁 트인 전시장이 보인다.

 

이 공간은 층고가 높고 투명 천장 덕분에 볕이 잘 들어 내겐 메인홀처럼 느껴진다. 실험적이고 다학적인 전시를 꾸리는 팔레 드 도쿄에서, 이 공간은 대부분 가장 대중적이고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전시가 차지한다.

 

올 여름 선보이는 5개의 전시 중 이 공간을 차지한 건 브라질 출신의 비비안 수터(Vivian Suter, 194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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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초입 벽글은 전시 제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늘 전시 제목과 전시, 작품 제목과 작품의 관계를 먼저 파악하고픈 나에겐 고마운 글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흔하지 않은 첫 문장에 행복을 느끼며 이어서 읽어보니, 한층 더 귀여운 글이다. "비비안 수터의 전시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직설적이다: 디스코는 그녀의 강아지 이름이다(후략)." 사실 《디스코》라는 전시 제목은 이미 전시장 전경과 꽤 잘 어울린다. 단박에 와닿지는 않을 지라도, '디스코' 하면 떠오르는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의 분위기와 작품이 잘 연결되는 듯 하다.

 

따라서 이 설명은 나의 해석에 큰 변화를 주진 않았지만, 전시의 사랑스러움을 배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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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은 '디스코'와 함께 살던 집 정원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담아낸다.

 

세 개의 화산을 마주하고 있는 과테말라 중심부 호수 마을에서, 그녀는 지난 20년 간 약 5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493점의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 어떠한 정렬이나 규칙 없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작품에 쓰인 맑은 색감은 마을의 평화로움을 상상하게 하고, 식물, 잎사귀, 씨앗, 동물, 화산을 담은 실루엣은 그녀의 정원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캔버스 천은 볕이 스며들어 햇살 좋은 날의 빨랫감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상의 순간인지라, 왠지 섬유유연제에 햇살과 바람이 섞인 기분 좋은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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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도, 가로와 세로 비율도, 형체를 가늠할 수 있는 확률도 제각각인 그림들은 짜릿하게도 동일한 '톤 앤 무드'를 지닌다.

 

이번 방문에서 조금 더 마음이 갔던 건, 강아지의 형체가 보이는 작품과 그 곁을 채운 사람의 형체, 초록 내음을 풍기는 연두빛 작품이다. 벽글의 첫문장으로 인해 이 전시에 이미 '귀여움 렌즈'를 장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유달리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던 벽면에 붙어 있던 '희'와 '노'를 품은 인간의 얼굴.

 

별안간 눈길을 사로잡는 표정에 실소가 터져버렸다.

 

 

미니어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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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한편, 감각적인 전시 설치를 자랑하는 듯한 전시 설계 미니어쳐를 발견했다. 전시장 한 켠에 둔 미니어쳐는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귀여운 요소다.

 

뿐만 아니라 전시 막바지임에도 여전히 바닥에 붙어 있는 주황색 엑스자 마크와 캔버스 한 구석의 작품 크기 메모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면모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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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번 방문에서' 마음이 갔던 작품을 정해 소개한 건 재관람의 다짐이다. 작품이 많고, 배치가 자유로운 만큼 한 눈에 담기는 프레임의 범위가 순간 순간 바뀐다. 작품 사이사이를 돌아보면서 못 보고 지나친 그림을 발견하고 아까는 별 감흥 없던 형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경험은 재관람의 가치가 있다.

 

전시 마지막 주인 이 시점에 첫 관람을 한 건 큰 실수지만 한 번 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리라.

 

그 날도 햇살이 잘 드는 좋은 날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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