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은 언제나 좋아하는 계절이다. 적당한 겨울 냄새도 나고, 걷기 좋은 날씨에 맞추어 각종 전시도 화려하게 열리는 시즌이었기 때문이다(실제로도 지금 열리는 중인 전시 중에는 무척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가을이 오면 미묘한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것은, 본격적인 하반기에 넘어가며 나도, 내 결과물이나 작업물도 실력이 껑충 늘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월말이 되면 조금 힘이 빠질 만도 한데 어떻게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지, 놀러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다른 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때문인지 최근, 아날로그 방식의 페인팅에서 디지털 페인팅으로 옮겨오면서도 여러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기존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선호되는 느낌이나 편안한 방식으로 그려야 할지 늘 갈등 중이다. 올리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느낌의 작업들도 종종 해왔고, 개인적인 기호를 쏟아부은 듯한 느낌의 그림도 그렸다.
그럼에도 늘 올릴 그림을 정하게 될 때는, 기존에 해왔던 페인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림을 선정하여 올린다. 그럴 때마다 아직까지 스스로의 페인팅을 많이 좋아하고, 아직 손에서 멀어지지 않았구나 싶어진다.
작가로서의 무언가가 끝나는 시점은, 더이상 그리고 싶은 것이 없을 때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그리는 일을 욕망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또 그림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점에 진심으로 기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