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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예민한 시각으로 포착한 뒤 탄생한 그녀의 소설은 대체로 문장이 경쾌하며 감정에 솔직한 양상을 띤다. 당시 보수적인 프랑스 문단에서는 감정, 그중에서도 주로 사랑을 논하는 사강의 작품을 두고 ‘깊이가 없다’, ‘가볍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에도 그녀는 자신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랑과 이별을 지속해서 작품에 투입한다. 사강에게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물질이자 존재에 다가가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강의 소설을 여러 권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작품이 경쾌하긴 하나 그것이 단순함이나 가벼움과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존재의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이를 특유의 재치로 중화시키려는 시도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도발적인 방법으로 심연에 닿으려 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에서는 마음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인물이 주로 등장한다. 사강은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들을 서사 속으로 밀어 넣고 마음이 깨지기까지 기다린다. 이리저리 치인 뒤 덩어리였던 마음이 파편화되면 사강은 조각을 집어들고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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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고민하고 자주 소설을 출간하는 성실함을 보였지만 대중은 사강의 사생활을 더욱 궁금해했다. 프랑스의 작가 필리프 바르틀레는 사강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내 작품들을 통해 평가받지 못했어요. 사강이라는 사람으로 평가받았죠. 시간이 흐르자 작품을 통해 평가받게 됐어요. 그리고 나는 그것에 익숙해졌죠.” 문학계에서 ‘매혹적인 악마’라는 호칭을 받은 사강은 지속적인 관심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스피드에 중독된다. 위험을 추구하는 방법은 고통을 심화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다. 결국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질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회복 차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되고 만다. 『해독 일기』는 약물 중독으로 괴로움에 빠진 사강이 중독 치료를 받으면서 써 내려간 일기다

 

일기 초반부터 의료 시설에 입원한 사강은 중단 증세로 몸부림친다.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의료 시설의 풍경은 평온하지만 그녀는 약을 끊으면 찾아오는 통증에만 매몰되어 있다. 한 번에 약을 끊을 수 없기에 간호사는 그녀의 쇠약해진 몸에 “앰풀(모르핀)”을 투약한다. 효과는 짧은 찰나에 발휘된다. 그러나 내성이 강한 앰풀은 사강이 또 다른 고통의 출발선 앞에 서도록 강요한다. 약을 끊어보고자 앰풀 없이 열세 시간을 버티기도 해 보지만 그 시간은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흔히 말하듯 심장이 쿵쿵댄다. 속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려는 마음이 시작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정말 고통스러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나를 감시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다른 짐승을 감시하는 짐승이다. - 19쪽

 


고통을 치유하고자 처방받은 약물이 중독이라는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지는 모순. 그 안에서 사강의 증상은 위태로워 보인다. 빠르게 뛰는 심장, 자꾸만 가빠지는 숨, 끊임없는 발작. 수많은 말줄임표와 물음표, 쉼표로 범벅된 문장은 그녀의 벅찬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약물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된 사강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을 잃고,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스스로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기까지 한다. 나아지지 않으리란 불안감은 사람을 얼마나 처량하게 만드는가.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 사강을 에워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사강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진다. 

 

일기 안에는 괴로움만큼이나 그리움도 짙게 깔려 있다. 그녀는 앙다유 해변에서 시를 읽었던 어느 날과 자신이 애호하는 자동차를 마음껏 운전했던 과거를 복기한다. 혈기 왕성하고 건강했던 시절은 약물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상태와 대비되어 그녀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아주 더웠고, 그 시들은 책과 누에콩과 무지개에 관한 것이었다. 열여섯 살이었다. 그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열여섯 살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그 자체라고 믿는 내가. - 65쪽


돌진하는 검은 보닛, 믿음직스럽고 정겨운 그 소리, 약간 길쭉한 재규어, 약간 묵직한 애스턴. 너희 때문에 죽을 뻔하고 나니 너희가 죽도록 그립구나. - 66쪽 

 


그럼에도 사강은 쓰기와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흐릿해지는 의식을 잡은 채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셀린, 랭보, 프루스트의 저서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자기만의 문학 활동을 다시 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중독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에 막연히 어떤 글을 쓸지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지만, 사강은 문학을 놓지 않는다.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 43쪽

 


또한 지겹고 고된 치료 과정에서 사강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유머는 절망을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한 사강의 배려로도 보인다. 예컨대 치료 기간 중 친구 베로니카와 나눈 편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건 단지 작은 불운일 뿐이야. 자고 일어나니 콧잔등에 여드름이 나 있는 것처럼. 아무 의미 없어.” 

 

마침내 모든 치료를 끝낸 사강은 일기 말미에 당시 상황을 한 줄로 회고한다.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시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사강은 후련함보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넉 달 동안 나는 두려웠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나는 지겹다.” 그러나 사강은 자신이 직면한, 암흑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통해 사고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멀리 있다고 여겨온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게 된 것이다. 


 

이 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한 가지를 더 짚어두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내가 평범한 생각에 그러듯이 죽음에 대한 생각에 조금씩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 나를 두렵게도 하고 혐오스럽게도 하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생각이 되었고, 만약의 경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내 몸을 오래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 83쪽

 


사강의 『해독 일기』는 원하든 원치 않든 무언가에 중독되고 그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한다.  자신이 의지하는 끈이 해롭다는 점을 잘 알지만 쉽게 놓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내면은 잘게 찢어지고 고통만이 새겨진 나날은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사강의 말대로 정말이지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하다. 그러나 절망만을 안겨주던 치료 기간 중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사강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영혼이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무척이나 끈질기다는 모순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그 모순이 가능하기에 우리는 여러 번 좌절을 맛보아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그저 찰나로 치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필름처럼 늘어진 인생이 지나치게 길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현재 불운의 웅덩이에 빠져 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해독 일기』를 권해본다. 우리는 사사로운 암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그 순간은 머지않아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참고문헌

프랑수아즈 사강, 『해독 일기』, 백수린 옮김, ㈜안온북스, 2023

프랑수아즈 사강, 『마음의 파수꾼』, 최정수 옮김, 소담, 2022

프랑수아주 사강,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김계영 옮김, 레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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