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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언제 벌레가 될 지 모르는 나와 당신들에게 - 카프카 '변신' [도서/문학]

매클루언의 눈으로 바라보다.

by 김상준 에디터
2025.08.09 10:36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은 의외로 사소한 순간에 찾아온다.

   

가령, 이른 아침 다급히 집을 나서 간신히 올라탄 지하철 안에서 주머니에 이어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목적지까지의 아득한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해지는 그 순간, 익숙했던 감각의 세계에 균열이 가며 나를 지탱하던 무언가가 송두리째 사라진 듯한 공포가 엄습한다. 이 별것 아닌 일화를 거창하게 포장한 것에 공감하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다.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러한 세계를 관통한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그 작동 방식에 따라 우리의 감각 비율과 사회의 규모와 속도, 패턴을 바꿔버리는 것이며 콘텐츠는 이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앞선 일화를 예로 들자면, 이어폰의 메시지는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나 음악이 아니라 주변 인물과 소리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가둬버리는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한 소리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본질을 깨달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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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의 Jeremy Bishop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의 내파가 가져오는 충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게오르크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한다. ‘두 다리’라는 미디어의 ‘걷는다’라는 작동 방식에 맞춰 최적화된 감각 비율을 가지고 있던 그는 한순간에 ‘여덟 다리’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접한다. ‘걷는다’라는 작동 방식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기어간다’라는 새로운 작동 방식이 등장했으나 감각 비율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오르크는 침대에서 발버둥 치며 바닥으로 내려오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내파에 대비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처연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간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일 때, 마치 물에 비친 자신에게 도취한 나르키소스처럼 그것이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 마취(narcosis)’ 상태에 빠진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그 미디어가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이어폰의 부재, 스마트폰의 고장), 우리는 강제적 각성을 통해 그 지배를 인식하고 혼란에 빠진다. 마치 갑자기 주어진 여덟 개의 다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두 다리로 걸으려고 한다. 바둥거리는 게오르크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미디어는 각자의 언어를 번역하지 못한다. TV 주파수를 라디오로 송출할 수 없듯, ‘두 다리로 걷는’ 인간의 언어는 ‘여덟 다리로 기는’ 벌레의 언어를 해석할 수 없다. 게오르크의 가족들은 벌레가 된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 실패한다. 걷기로 작동하는 두 다리라는 미디어에 마취되어 있기에, 기는 것으로 작동하는 여덟 다리의 언어를 해석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잡음은 결국 나르키소스가 물에 빠져 죽어버린 것처럼 가족이었던 게오르크를 때려죽이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가족들이 게오르크의 죽음 이후 안도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집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이다. 가족들은 갑자기 찾아온 새로운 미디어가 가져올 내파를 받아들이는 것 대신에 그 변화를 차단하여 ‘두 다리’라는 기존의 미디어를 사수한다. 거실에 모여 함께 티비를 보던 사람과 각자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놀던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요즘 세상의 모습은 몇십 년도 더 전에 나온 책 속에 이미 예견되어 있다.

 

『변신』은 100년도 더 된 소설이지만, 매클루언의 통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미디어의 숙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미 나르시시즘에 절여져 내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조차 못 하고 자연화된 미디어에 잡아먹혀 서로 부딪히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저들은 어쩌면 그저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게오르크가 되어 생각해 보자. 저들은 그저 걷고 있고 우리는 그저 기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 반대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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