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 벌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도서]

글 입력 2022.09.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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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변신>은 짧지만 강렬하다.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하던 세일즈맨 '그레고리 잠자'가 갑자기 벌레로 변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에서 그레고리가 벌레가 된 까닭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레고리가 벌레가 된 후의 일들이다.

 

그의 모습에 가족들은 충격, 괴로움, 연민 등 복잡한 감정을 느낀 채 그와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그도 잠시, 가족들은 더 이상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상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벌레가 돼버린 그레고리가 마지막으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쓸쓸한 죽음 뿐이다.

 

이토록 음울한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프란츠 카프카의 생애에서 실마리를 얻어볼 수 있다. 문학과 예술사에 관심이 많았으나, 카프카는 권위적인 아버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법학을 전공했다. 이후 노동 보험 공단에서 근무하던 카프카는 열악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목격한다.

 

가정 안에서는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했고, 바깥에는 당대 노동환경의 민낯을 마주해야 했던 카프카의 작품에서 그 자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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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읽으면서 크게 충격을 받았던 점이 있다. 벌레로 변하자마자, 가장 먼저 그레고리를 감싸는 감정은 '결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흉측한 외형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두려움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막막함도 아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초조해하기 급급하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당장의 일상에 생긴 균열을 수습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인간의 삶을 이루는 '일상'의 무서움을 체감했다.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던 당시의 나 역시도 그레고르처럼 행동했을 것만 같다. 주말에 편의점에 나가지 않으면 교대자에게 얼마나 민폐가 될까. 초중등 영어학원을 말없이 결근한다면, 얼마나 책임감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이런 걱정들은 또 다른 물음을 남겼다. 만약 벌레가 된다고 해도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사람들이 나를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사실에 나는 안도감을 느낀 채로 살아가지 않을까? 벌레와 나의 삶이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가?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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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읽던 당시, 나는 1년째 휴학 중이었다. 휴학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막연하게 졸업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막상 휴학을 하고 나니, 주변에서는 동기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인턴에 붙었다는 소식. 공모전에 입상했다는 소식. 나를 제외한 모두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만 같았다. 불안함이 업슴하여 닥치는 대로 구인 공고를 확인했다.

 

그렇게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됐다. 당장에 생계를 유지하기 바빠서가 아니라, 돈이라도 벌어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처럼 경제 활동을 해야 겠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하다 보니, 정신도 육체도 지쳐갔다.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니 어떠한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남들이 사는 속도에 맞춰가며 애써 쳇바퀴 같은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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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맹목적이기만 하던 일상에 파문을 일으켰다. 삶에 대한 책임감은 없고, 오직 일상에 대한 책임감만이 존재하는 삶을 변신시킨 셈이다. 휴학을 하면서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바로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어떤 가치를 가장 중시하는지, 살면서 포기할 수 없는게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사실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다. 어느날 벌레로 변해버리듯, 영문 모를 재난이 닥칠지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세는 중요하다. 내 삶에 나만의 철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게 된다면, 휴학했을 때처럼 키를 잃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삶을 살게 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나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오로지 나뿐일 때 말이다. 세간에 떠도는 말들로 기준을 만들어 의미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 같을 때, 순식간에 꺼림칙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 벌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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