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극장을 가기 위해 영국 여행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소개 할 극장은 섬세함과 창의성이 느껴지는, 영국의 국립 극장인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이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해외 뮤지컬이나 연극이 가끔 뜨게 되는데 그 중에서 ‘내셔널 시어터’의 작품은 매번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했다. 현대적인 무대 디자인, 공연 기술 등을 보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꼭 이 곳에 가서 공연을 봐야지’라는 마음이 생기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올해 초 '내셔널 시어터'를 방문했고, 2개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내셔널 시어터'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곳에서 관람한 총 2개의 공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영국 국립 극장이란?

영국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은 영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 기관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극장이다. 줄여서 NT 라고도 부르는데, NT Live 라고 해서 공연의 영화화, 매체화를 시키는 프로그램도 유명하다. 이 극장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추구하며, 셰익스피어부터 현대극까지 다룬다. 나는 사실 영국 국립 극장을 웨스트 엔드 상업 극장보다 더욱 방문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 극장의 공연을 보면 굉장히 트렌디하다는 생각이 들고, 국립 극장인데도 어느 하나에 고이지 않고 계속 현대적으로 앞서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영국 국립 극장은 단순 공연장이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 같은 곳이다. 카페이기도 하고, 공부 공간이기도 하고, 서점같기도 하다. 희곡 대본집이나 연극에 대한 이론서들도 가득해서,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면 너무 좋아할 공간이다.

무대화된 희곡들의 대본집을 전시해둔 공간
보유 극장
- Oliver Theatre (약 1,100석) -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영감을 받은 대극장
- Lyttelton Theatre (약 890석) - 프로시니엄 극장
- Dorfman Theatre (약 400석) - 가변형 소극장
세 자매의 꿈을 다룬 이야기, 'Ballet shoes(발레 슈즈)' - Oliver Theatre
공룡 뼈와 화석으로 가득한 허름한 집. 그곳에서 입양된 세 자매, 폴린, 페트로바, 포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후견인 실비아와 유모 나나, 그리고 다소 특이한 하숙인들의 보호와 지도 아래, 세 자매는 각자의 열정을 향해 나아가려 애씁니다.
하지만 여성의 큰 포부가 환영받지 못하던 시대 속에서,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하고, 가족의 유대감을 지키며, 심지어 춤 한 곡조쯤은 배울 수 있을까요?
- 'Ballet shoes' 시놉시스
이 공연을 보려 처음 내셔널 시어터에 가게 되었는데, 발을 내딛자마자 벅찼다. “내가 여기에 있다니…!” 라는 느낌이 들었달까. 나는 본격적으로 공연을 보기 전에, 극장 내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또한, 내가 영어를 잘 못 하기 때문에 <발레 슈즈> 줄거리에 대해 인터넷으로 예습을 했다. 찾아보니 엠마 왓슨이 나온 영화 <발레 슈즈>가 있길래, 2배속으로 빠르게 보기도 했다. 이것은 나의 철칙인데, 공연을 보기 전 대체적인 줄거리를 알고 가는 것이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입장 20분 전이 되었고, 나는 클락룸에 외투와 백팩을 맡기고 공연을 볼 준비를 했다.

출처: Arts professional
극장에 들어가기 전 봤던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접근성 배려 존이었다. MD를 파는 곳 옆에, 접근성 배려를 위한 점자 책, 비주얼 스토리북 등이 있는 테이블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언제 조명이 나오는지, 큰 소리가 나오는지 등을 표시한 책들을 보며 지독한 섬세함을 느낀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았던 건 '비주얼 스토리' 북이었다. 각 장면마다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자료였는데,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내가 그 공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동양인인 나도 접근성 배려 계층에 속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또한, 국립 극장에는 따로 '접근성 배려 매니저'라는 직책도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10분 전, 발레리나 학생들이 무대에 나와 프리쇼가 진행되었고, 이는 관객들의 흥미를 돋구었다. 함께 발레 동작을 따라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등, 이 프리쇼는 관객을 천천히 극 안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다른 웨스트엔드 극장도 그렇듯이, 국립 극장에서도 공연 시작 전후에 극장 내에서 음식물을 먹을 수 있다. 와인을 홀짝일 수도 있고, 4.5 파운드에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도 있다. 이는 한국과 다른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출처: The stage
이 극은 세 소녀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극을 좋아해서 연극 배우가 되고픈 폴린 포실, 비행사가 되고 싶은 페트로바 포실, 발레리나가 되고픈 포지 포실. 세 소녀의 감정과 입장이 달라서, 그 특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나도 세 자매이기 때문에, 우리 자매를 투영해서 보기도 했다.
나는 공연을 볼 때 어떠한 무대 기술을 썼는지에도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가끔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거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특히 이 극에서는 주인공이 와이어를 이용해 하늘을 난다거나, 차가 바람을 가르면서 가는 생생한 장면을 표현한다거나, 무지갯빛의 조명을 관객석에 듬뿍 비추는 시도들이 내게 기억에 남았다. 관객들에게 마치 정말 내 앞에서 극 속 세계가 펼쳐진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여러 몰입적 시도들이 내게 영감을 준 것 같다.
더불어 이 극은 무대 기술뿐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도 완벽했다.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함에도, 역시 문화예술은 감정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많았다. 공연 중에 깔깔 웃기도 했고, 펑펑 울기도 했다. 특히 나이가 든 주인공이 본인의 젊은 시절의 춤 추는 걸 회상할 때,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내 옆의 관객분들도 눈물을 훔쳤다. 이를 통해 스토리의 힘은 인종, 성별 상관 없이 모두를 이어준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렇듯 공연 예술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순간을 매우 좋아한다.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고, 이것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윈드러시 세대의 이야기, 'Alterations' - Lyttelton Theatre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평생 변방에 머무는 삶?"
워커 홀트는 자신의 양복점에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겐 반드시 완수해야 할 아주 큰 주문이 하나 들어오죠.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그는 새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재봉 작업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수록, 갈라지는 것은 바짓단뿐만이 아닙니다. 긴장감이 고조되며 워커의 우정과 인간관계 역시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의 성공은 대가를 요구하고, 워커는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이 재해석된 작품은 1970년대 런던에서의 가이아나인(Guyanese)의 경험과 ‘윈드러시 세대’의 열망, 그리고 그들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을 강렬히 비추고 있습니다.
- 'Alterations' 시놉시스

출처: National Theatre
두 번째 작품은 ‘Alterations’이라는 작품이다. 영국 국립 극장에서 한 작품만 보기 너무 아쉬워서, 볼 수 있는 다른 작품을 찾다가 예매한 공연이다. 이 작품은 ‘윈드러시 세대’의 이야기였다. 이는 한국인 입장에서 생소하지만, 찾아보니 영국 현대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민자 세대였다.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들이며, 영국 내 인종차별 갈등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나는 주제부터 생소했으나, 오히려 흥미로웠다. 예술은 각 시대에, 각 문화에 따라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현재의 영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이야기의 관심도 필요하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본인들의 이야기가 예술을 통해 구현되고, 그것으로 공감하는 것이 예술의 순기능이 아니겠는가?
이야기의 주제가 ‘윈드러시 세대’여서 그런지, 극장에 모인 분들도 이민자로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저번에 봤던 ‘발레 슈즈’와 다르게, 더 많은 인종분들이 함께 했던 공연이었다. 이번에도 맨 끝자리에서 나는 관람했는데, 그래서인지 그러한 커뮤니티가 소통하는 모습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을 통해 연대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는 것. 이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괜시리 흐뭇했던 순간이었다.
하나 아쉬웠던 건, 내가 첫 공연을 보러 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줄거리 이해를 위해 큰 도움을 받았던 ‘접근성 비주얼 스토리 북’이 없어서 아쉬웠다. 용기를 내서 직원에게 없냐고 물어봤지만, 아직 공연 첫 주라 완벽히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공의 묘미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문화예술의 영감이 가득한 곳, 영국
웨스트엔드 외에도 영국은 참 영감을 주는 문화예술 장소가 많은 공간이었다. 글에서 언급하지는 못 했지만, 복합문화공간 Wellcome collection이나, 셰익스피어 공연장, 대영 박물관, 브리티쉬 도서관 등등. 그리고 길 가다 어떤 서점에 들어가도, 왠지 모를 인사이트가 가득했던 공간이 바로 영국 런던이었다. 2번 다녀와도 충분하지 않은 영국 런던, 언젠가 또 다시 가서 문화 예술의 향기를 가득 맡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하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먹을 복은 그리 있지 않는 여행일 것이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우는 여행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간다면 배는 굶주릴 수 있지만 마음은 굶주리지 않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