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이북 리더기 사기를 당하고 [사람]

고3에게는 너무나도 큰 비극이었다

by 김예은 에디터
2025.07.01 09:36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차 마시는 것을 즐겨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비 맞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 중 '집착광공' 도 있다. 집착 광공. 좋아하는 상대를 지키기 위해 감시 및 과보호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집착광공' 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매일 정장만 입어야 하고, 해바라기 샤워기만 사용하며 음식과 화장실은 금지된, 완벽하고도 절제된 인간. 하지만 상대만 보면 미친듯이 집착하는, 어떻게 보면 비운의 일생을 사는 이들을 우리는 '집착광공' 이라고 부른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저것이 내 대학 합격 결과가 아닐까 혹은 내 운명이 아닐까 한숨 쉬는 고 3 가을, 나는 집착광공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나는 별명이 '고물상 사장' 일 정도로 옛 물품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카세트테이프, 타자기, CDP 등등.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21세기 속에서 20세기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것은 꽤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전진하고, 공장도 이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니 옛것을 구하려면 항상 이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중고 나라', '번개 장터' 등의 중고 거래 앱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중고 나라를 자주 이용하며 정한 나름의 철칙이 몇 개 있다. 판매자의 가입일이 최소 한 달 이상은 되었을 것, 판매자의 판매 물품이 최소 두 개 이상이어야 하고 판매 완료된 상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아이디를 해킹하여 물건을 판매하는 사기꾼들이 있기에 게시물의 모든 말투를 확인하고 비교해 볼 것. 이 철칙을 지켜가며 상대방과 채팅하면 물품은 언제나 나의 것이 되었고 여러 번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나는 약간 이상한 자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중고로 구입 한 물품은 언제나 내 손에 안전하고 아주 완벽하게 오리라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때는 고 3 가을, 하늘이 아주 청명하고 푸른 날이었다. 대부분의 문예 창작과는 한 가지 주제를 던져주면 그에 대한 시나 소설을 쓰는 '실기'로 입시를 대신했다. 그렇기에 실기 시험이 슬슬 다가오니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기는 싫었다. 나름 고 3이라 이런저런 준비에 바빴고,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한 친구가 골대를 향해 공을 차는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집에 있는 낡은 이북 리더기, 교보에서 십여 년 전에 나온, 네모나고 귀여운 자태, 잠이 안 올 때마다 함께 밤을 새워 주었던, 오, 사랑스러운 그 녀석은 한 달 전에 이미 운명을 다 한 상태였다. 책을 읽다 잘못하고 떨어트렸는데 소위 '설탕'이라 칭하는 액정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갈 거면 예쁘게 가기라도 하지,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삐뚤빼뚤하게 난 금을 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이북 리더기가 생각나자 나는 급하게 은행 앱에 들어갔다. 잔고는 약 오만 원, 용돈을 적게 받는 편은 아니었으나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푸는 고 3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이럴 때 내 이름의 뜻인 '예수님의 은혜'가 발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익숙한 초록색 앱을 클릭했다. '안전한 거래! 중고 나라'라는 문구가 적힌 초록 배너가 떴다.

 

검색 창에 '이북 리더기'를 치자 여러 검색 결과가 나왔다. “어제 선물로 받았는데 필요가 없어서요.”, “잘 썼는데 다른 기기로 갈아타려고 팝니다.” 등등 다양한 이유와 함께 새 주인을 기다리는 이북 리더기 사진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 보아도 구입할 만한 기기는 없어 보였다. 가격이 싸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출시 되었을 법한 기기였고, 좀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비쌌다. 눈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다. '돈 없는 고 3은 이 북 리더기 보지 말고 공부나 하란 뜻인가. 이름 뜻이 예수님의 은혜라면서 왜 나에게는 은혜 한 번 오지 않는가?', 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린 끝에 한 게시글을 발견하게 된다.

 

“잘 쓰다가 최근에 다른 기기를 선물 받게 되어 판매합니다. ㅎㅎ 침대에서만 아껴 봐 상태도 좋아요. 먼저 연락을 하신 분께 판매할게요.”

 

가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깔끔하게 오만 원. 택배 구매 시 배송비 판매자 부담. 드디어 나에게 은혜를 내려주셨구나. 00사랑 이라는 닉네임을 쓴 판매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지켜야 하는 것은 지켜야 하는 법,  판매자 프로필을 클릭해 그동안의 활동 상태를 파악했다. 판매자는 딱 떨어지는 가격만큼 깔끔했다. 최근까지 물건을 판매했고, 지역 인증도 해 둔 상태이며,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직거래 제안을 해도 좋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이 가격에 이 상태? 정말 신의 은혜가 아니면 구하기 힘들었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채팅하기' 버튼을 눌렀다. 정전기가 올랐는지 손끝이 따가웠다. 하지만 이 또한 텔레파시라 생각하며 넘겼다.

 

연락이 온 것은 저녁쯤이었다. 거래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주말에도 일을 나가는 판매자의 입장을 고려 해 택배  거래를 하기로 하고, 계좌를 받고, 주소를 넘기고. 판매자는 온갖 이모티콘을 붙여가며 나를 응대했고 내일 택배를 보내겠다는 끝으로 메시지는 종료되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사건 파일을 작성하는 형사의 심정으로 그때의 일을 꼼꼼하게 적어보겠다.


- 토요일

판매자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택배 기기가 고장 나서 월요일쯤에나 보내드릴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고장'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 택배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사기라 생각하고 더치트에 넘겼겠지만, 사진을 함께 보냈기에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사진의 화질은 이북 리더기가 발매된 2015년에 찍힌 것처럼 구질구질했다.


- 일요일

'구매자님 불안하시니~' 라고 시작된 문자는 씨제이 기사님께 택배를 예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보내실 때 운송장 번호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답변을 보낸 뒤 운송장 번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운송장 번호는 다섯 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는 네 시쯤 택배를 수거해 가기에 네 시 전에는 운송장 번호가 발급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나는 직거래를 제안했다. 

하지만 판매자는 “제가 외출 중이라서요. 오늘은 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오늘 가기 전에 운송장 꼭 보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은 님~” 이라고 말하며 제안을 철회했다.

그날 저녁, 밥을 먹는 도중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빠르게 달려가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운송장 번호 열두 개가 정확하게 메시지 함에 찍혀있었다. 이 열두 개의 숫자가 뭐라고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물건이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 월요일

택배사 앱에 운송장 번호가 뜨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대한통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택배사 측으로 물건이 인계되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화가 나 천장까지 올라간 머리 뚜껑을 애써 붙잡고선 판매자, 아니 사기꾼이라 결론 난 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물품이 이동하지 않으면 증거 다 들고 경찰서에 가겠다고. 판매자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일 움직일 거라고 말하며 나를 달랬다. 다음 날, 다행히 택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수요일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읽던 책을 내팽개친 뒤 현관으로 달려갔다. 현관 등이 켜지기도 전에 현관문을 열자 바닥에 놓인 택배가 보였다. 하지만 택배는 이북 리더기보다 너무나, 너무나 가벼웠다.

 

‘무탈한 오늘.’

 

아직도 기억난다. 얄팍한 택배 봉투를 열자마자 보인 책의 제목. 책의 저자분께는 죄송하지만, 복근 공개를 위해 무대 위에서 옷을 시원하게 찢은 구 오빠처럼 책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아니, 찢다 못해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몸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기를 당했다는 허탈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고 3의 피 같은 돈을 쪽쪽 빨아먹은 모기보다도 파렴치한 그 사기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침착하게 해야 했다. 요가하듯 숨을 들이쉬고 내 쉬며 '사기꾼은 요가에서 말하는 무다(무지, 악의 상태) 이고, 나는 니로다(모든 정신 기능의 경지) 이니 흥분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텅 빈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 뒤에는 절망스러웠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무탈한 오늘? 장난하세요?’

 

하지만 판매자는 내 문자를 아주 맛있게 씹으셨고, 난 집착광공이 되기로 했다.


- 목요일

도망간 상대방을 찾으러 다니는 집착 광공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나는 사기꾼이 볼 때까지 문자를 보내겠단 마음으로 하교 후 정확히 십 분에 한 번씩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좋지 않은 해결법이지만 안 그래도 슬픈 고 삼의 코털을 감히 건드려, 라는 심정에 그랬던 것 같다.

집착 광공은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집착 광공이 잠을 잘 잘 방법이 한 가지지 있다. 바로 사랑하는 애인이 함께 자는 것. 하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판매자는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고, 기왕 집착광공이 된 거 그의 잠버릇까지 따라 하자는 생각에 밤을 새워 문자를 보냈다.


- 금요일

내 문자에 지친 판매자가 결국 꼬리를 내린다. 책의 표지 색처럼 아주 새하얀 패배 깃발을 흔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택배 보낼 것이 많아서 바뀌었나 봐요. 죄송해요,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계좌 보내주세요.”

어이가 없었지만 손목이 더 아팠기에 얌전히 계좌를 보냈다. 통장 계좌에 정확히 오만 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 한 뒤 더치트에 사기꾼 등록을 하기  위해 그의 계좌를 입력했다. 장장 6일 만의 사투가 드디어 끝을 맺었다.

 

 

스크린샷 2025-06-30 오후 7.49.12.png

▲  사건 후 새로 구입한 이북 리더기, 포크 3.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듯, 중고 나라에도 여러 종류의 물품이 있다. 또한 중고 물품을 잘 팔기 위해선 물건의 등급을 잘 매겨야 한다. 미개봉 새것이면 s등급, 거의 새것은 a등급, 중고 티가 나는 것은 b등급, 그 외의 것은 c등급. 사기를 치기 위해 자신의 신상을 중고 나라 판 그는 과연, 몇 등급의 인생을 살고 있을까?  또 가끔은 나에겐 c등급보다 못했던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s등급처럼 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기꾼이 내가 지나쳤던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집착 광공이 되어 본 후기는 '생각보다 할 만하다.' 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이틀간의 시간을 투자한 것은 꽤 힘들면서도 생각보다 뿌듯한 일이었다. 사기꾼이 연락을 해 왔을 때는 기쁨을 넘어 통쾌하기까지 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착광공 캐릭터의 인기가 많나?

 

아무튼 대학 입시를 앞둔 시점에서 경험한 사기꾼과의 조우는 원하는 일은 집착해서라도 쟁취하는, 집착광공의 힘을 알게 해 주었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

 

 

 

20250407001129_alqxmxlc.jpg

 

 

김예은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올곧고 숭고한 붉음을 향해 - 이유리의 둥둥 [도서/문학]
  2. 02 [Opinion] 썩지 않는 껌 [사람]
  3. 03 [Opinion] 어느 별에서 왔니 [게임]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