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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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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의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 「둥둥」은 주인공 ‘은탁’이 좋아하는 아이돌 ‘형규’를 위해 구한 대마초가 든 트렁크와 함께 호수에 빠진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 「둥둥」이 담고 있는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을 함께 분석해 보려고 한다.

 

 

 

1. 변화하는 아이돌 팬덤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는 아이돌의 사례가 상당히 많아졌다. 여기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데뷔를 하지 않은 아이돌 연습생들이 무대 경연과 시청자의 투표를 통해 데뷔하는 프로젝트 프로그램을 말한다. 예시로는 Mnet에서 방영한 프로듀스 101, 걸스 플래닛, 보이즈 플래닛 등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단순히 연습생들의 무대 경연 장면만 방영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 생활, 연습 비하인드 등 연습생들의 사생활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엔터사들이 앞다투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팬이 직접적으로 데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구축된 팬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이벤트를 열고, 투표 독려 광고를 내보내는 등 다른 연습생 팬덤과 경쟁이 붙어 과열된다. 매일 매일이 경쟁인 서바이벌이란 동심공제를 통해 형성된 팬덤은 데뷔 이후에도 해당 아이돌의 충성적인 고객이 된다.


또한 팬들과 1대 1로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인 ‘버블’, 코로나 19 발병 이후 도입 된 ‘영상통화 팬싸인회’ 등 팬과 아이돌이 일 대 일로 소통하는 창구가 많아졌다. 즉, 아이돌은 더 이상 단순 ‘우상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친구’, 혹은 ‘가상 애인’ 여기서 더 나아가 내가 돌봐줘야 하는 ‘아이’의 역할로 변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 「둥둥」 속 주인공인 ‘목은탁’은 아이돌이자 솔로 가수인 ‘목형규’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형규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자신의 미니쿠퍼와 서울의 아파트를 팔아 개인 연습실을 구해주고, 보컬·댄스 선생님을 붙여주며, 데뷔 이후에는 명품 패딩과 명품 백 등 다양한 조공을 바친다. 단순한 팬을 넘어 보호자이자 매니저의 역할을 자처하는 은탁의 이런 모습은 흡사 아이를 돌보는 부모처럼 보인다.


나이 차이를 떠나, 현규는 내게 연애 대상이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야생동 물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신선한 먹이를 먹이며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는 것이 동물을 사 랑하는 방법이듯 나는 형규에게 안전하고 보장된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족했다. (「둥둥」, 43쪽)


형규를 향한 은탁의 일방적인 사랑은 얼핏 보면 과장되고 허무맹랑한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 목은탁은 현재 여러 기획사가 행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 구축을 위한 계책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렇기에 해당 작품은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해와 사전 지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2. 소비할수록 고립되는 이들


 

아이돌 산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아이돌의 사회·심리적 고립과 이런 아이돌을 소비하는 팬덤의 그릇된 소비 방식이다. 해당 소설은 이런 아이돌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형규와 은탁이라는 인물을 통해 차근차근 짚어낸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십 대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사회의 기초를 배우는 학교를 자퇴하는 일이 허다하다. 지난 2월 24일 데뷔한 다인원 그룹 ‘하츠투하트’의 경우 아홉 명의 멤버 중 세 명의 인원을 제외한 모두가 중학교를 자퇴했다.


충분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이들은 아이돌로 데뷔한 순간부터 철저한 상품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스케줄만을 다녀야 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이러한 생활은 명확한 자아 확립에 어려움을 주며, 더 나아가 인기를 좇는 것 외의 삶의 목표를 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물론 형규는 그 이후로도 대마초를 계속 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해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피운다던 그것은 형규의 입지가 단단해질수록 오히려 횟수를 늘려갔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는 건 언젠가는 그걸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함께 얻는 것이 었으므로. 꿈에 그리던 대형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자며 연락이 왔을 때, 데뷔 준비에 한창이던 연습생 그룹에 편입되어 얼떨결에 데뷔하게 되었을 때, 첫 공중파 음악방송 무 대에 설 때도 형규는 대마초를 했다. (「둥둥」, 49쪽)


형규는 아이돌 데뷔를 위해, 그리고 아이돌로서 성공하기 위해 평생을 다 해 노력해 온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언론은 이런 형규의 월드 투어 성공 여부에 대한 기사를 실시간으로 뽑아낸다. 성과에 대한 평가와 이에 대한 객관적 수치가 기사를 통해 전 국민적으로 알려지는 삶,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늘 경쟁해야 하는 삶, 몇십만명의 응원을 받지만, 누구보다 고립된 삶. 그것이 아이돌 목현규의 인생이다. 이런 현규는 대마초를 통해 화려한 아이돌과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느껴지는 격차와 외로움을 떨쳐내려 한다.


아이돌 팬덤의 사랑은 맹목적이자 절대적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일으킨 사회적 문제를 옹호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팬을 이에 대한 예시로 들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돌의 팬덤이 팬 활동을 중단하는 이른바 ‘대거 탈덕’ 현상이 일어날 때 ‘나만 콘서트 가게 다 탈덕하라’ 고 말하는 팬 또한 존재한다. 이는 마약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남기 위해 기꺼이 마약 운반책이 되어주는 은탁의 모습과 흡사하다.

 

 

 

3. 선명할 수밖에 없는 빨간색


 

소설은 호수에 빠진 은탁을 외계 생명체가 구해내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들은 형규를 향한 은탁의 사랑을 ‘백 퍼센트 순수하게 상대를 향한 이타심만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죽음’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마냥 ‘이타심’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은탁은 인생에 별 흥미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삶은 이미 지루하게 완벽하고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부족하고, 누구보다 빛나는 형규라는 인물을 만나며 인생의 목표가 달라진다.


형규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형규뿐만이 아니라 나까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형규와 같은 사랑스러운 성씨를 가진 사랑스러운 나, 반짝이는 형규를 더욱 반짝이게 해주는 쓸모 많은 나. (「둥둥」, 41쪽)


은탁은 형규를 통해 투박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성인 ‘목’씨를 좋아하게 될 정도로 가치를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그의 성공을 인생의 일 순위로 둔다. 하지만 형규의 마약 복용 사실을 알게 된 뒤,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거나 물건을 팔아 대마초를 구입하다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는 마약 구입 비용을 대 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혼자만 안다는 달콤함과 형규의 꿈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오만함에 중독되어 마약 투여를 은근슬쩍 종용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형규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무척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외계 생명체들은 도대체 왜 그녀의 사랑을 이타적이라고 평가한 것일까.


소설의 도입부를 보면 호수에 빠진 은탁이 인천 대교 교각에 달린 두 개의 조명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조명은 빨강, 분홍, 초록, 노랑 순서대로 불이 들어오다 다시 빨간색이 켜진다. 여기서 쓰인 빨강은 풍선과 응원 봉에 쓰이는 형규의 상징색이다. 소설 속 은탁은 이러한 빨간색을 ‘되돌아간다’고 서술하고 있다.


완벽하게 깨끗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을 시작하면 욕심이란 게 생기며, 이러한 욕심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저면에는 ‘남을 이롭게 하거나 위하는 마음’인 ‘이타심’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며 갈팡질팡하던 은탁이 결국 죽음을 택한 것처럼, 콘서트가 무사히 끝났다는 외계 생명체의 말에 ‘넌 대마초 같은 거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는 아이였잖아’ 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하는 것처럼. 덕질을 하며 분홍, 초롱, 노랑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원천에 깔려 있는 빨강, 즉 이타적인 감정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서포트’를 목적으로 형규의 마음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채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은탁의 사랑은 남의 집 아저씨처럼 구는 아버지의 사랑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탁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4. 딜레마의 반복 속에서 빨간빛을 향해


 

영국의 철학자인 필리파 풋이 제시한 ‘트롤리 딜레마’론은 윤리학에서 가정하는 사고 실험 중 하나로, 제동장치가 고장 난 탄광 수레의 방향을 선택함으로써 소수 혹은 다수의 사람을 희생시키는 상황에 대한 선택을 묻는다. 해당 문제는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에 대해, 반대로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을 윤리학 관점에서 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설계된 실험이다.


소설 속에서 은탁은 이런 ‘트롤리 딜레마’와 유사한 상황을 많이 마주한다. 첫 번째 상황은 캐리어와 관련 된 선택이다. 그녀에게는 총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캐리어를 붙들고 구조를 기다리기’이다. 이러한 선택은 ‘나’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인 형규가 사회적으로 무너지게 할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은 형규의 마약 투여 사실이 까발려지지 않도록 캐리어를 열어 모든 머핀을 물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선택을 할 경우 ‘나’는 곧바로 익사해 버릴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화방으로 가기 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호미 화방을 가게 된다면, 은탁이 지금처럼 형규를 만나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만, 반대로 형규가 외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댈 수도 있다. 반대로 신촌의 삼익 화방으로 가게 될 경우 은탁의 거대한 인생 목표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형규가 마약을 할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지에는 앞에서 서술한 ‘빨간색’이 함께 등장한다. 캐리어에 매달려 있을 때는 교각의 빨간 조명을 보았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잠드는 순간에는 교각 불빛의 잔상을 보며 습관처럼 빨간색을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답을 선뜻 고르지 못한다. 소수의 목숨도, 다수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영원한 우상이 되어야 할 아이돌이 사회적 논란을 빚어 징역살이하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형벌일 것이다. 내 분신 같은 존재이자 나의 전부인 아이돌이 죽는 것과 정말 내가 죽는 것. 또한 형규가 마약을 하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과 성공한 형규를 바라보며 고양심을 느끼는 것. 양쪽 다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은탁은 쉽게 한쪽을 고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색을 따라간 은탁은 현규를 위한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 죽음을 택해 형규의 마약 투여 사실이 세간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하며, 대담하게 길거리에 나온 그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삼익 화방을 택한다.


나는 가뿐히 몸을 일으켰다. 잠옷을 훌렁훌렁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왠지 자꾸만 기분이 좋아 흠흠, 콧노래가 나왔다. 이런 날엔 역시 쇼핑이지. 신촌 쪽으로 올라가 화방에 들렀 다가 현대백화점엘 가볼까.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미대생이라고 해서 물감 범벅을 한 앞 치마만 입고 다녀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둥둥」, 70쪽)


은탁이 이런 선택을 한다고 해서 소설의 결말은 새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해피 엔딩을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 은탁은 졸업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 미술 도구를 사러 가던 중 형규를 만난다. 이후 은탁은 그에게 정신이 팔려 미술 도구를 사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해당 선택을 통해 은탁은 무사히 미술 도구를 살 것이며,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화실을 차릴 것이다. 조금 지루한 삶일 순 있어도 누군가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던 과거의 모습과 달리,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깨칠 수도 있다.


이유리 작가는 해당 소설을 통해 사랑으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의 양면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 순간에도 자신의 아이돌을 향해 숭고한 붉음을 표현하고 있을 수많은 팬덤이, 그리고 은탁과 형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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