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인간은 늘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자 하는 욕구를 품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모든 곳을 위성 지도 하나로 도달할 수 있는 지금, 사람들은 이 욕구를 온라인으로 풀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에서.

 

메타버스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트렌드 경향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는 이런 메타버스를 활용한 '부캐 만들기' 가 점점 유행할 것이라 예언했다.

 

메타버스의 유행은 이미 예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다. 크게 히트 친 메타버스 앱 '제페토'는 이미 2018년에 출시 되었고, 2021년 페이스북이 'meta'로 이름을 바꾼 사례만 보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세계와 또 다른 자아인 ae(아이)와 함께 활동하는 '에스파', 버츄얼 아이돌 '플레이브' 등 연예계를 넘어 메타버스 캐릭터를 활용해 채팅하는 앱 '본디'까지,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메타버스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이런 메타버스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메타버스 속 시스템 체재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캐릭터를 찾아 커스터마이징하고, 온라인상에서 사용하는 돈인 캐시를 모아 캐릭터를 가꾸어 나가고… 배불뚝이 컴퓨터를 거쳐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까지 우리는 이미 많은 게임을 통해 이러한 절차를 거쳐왔다. 이런 게임 중 하나가 '심즈'이다.

 

 

13141.png

 

 

'심즈' 내 동년배여도, 동년배가 아니어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라 생각한다. 게임 '심즈'는 가상 세계 속 인간인 '심' 들을 만들고, 그들의 인생을 꾸며나가는 시물레이션 게임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다른 게임 속 캐릭터와 다르게 심즈 속 심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욕구를 표현하며, 스스로 움직인다. 이 탓에 유독 괴담이 많은 게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심즈를 또래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즈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심즈 게임의 유통사인 EA가 심즈 4를 무료로 배포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헐레벌떡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하고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으니, 심즈 4는 생각보다 용량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용량이 작고 느린 노트북을 사용했던 나는 결국 심즈 하나를 다운받기 위해 장장 일곱 시간을 책상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심즈를 빨리하고 싶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13111.png


 

심즈는 캐릭터들의 얼굴부터 체형, 직업과 성격까지 모두 정할 수 있다. 게임의 제일 큰 묘미는 'cc' 템을 사용하여 캐릭터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cc' 템이란 심즈 안에서 캐릭터를 정밀하게 꾸밀 수 있는 여러 아이템으로, 일반인들이 제작하여 배포하기에 좀만 서치 해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아이돌 메이크업에 빠져 있었던 나는 기다란 속눈썹과 예쁜 아이라인, 뽀얀 피부로 설정해 주는 cc 템을 다운받았다.

 

모든 cc 템을 장착시킨 내 캐릭터 '윤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나의 워너비 그 자체였다. 게임을 하던 도중 설정 창에 확대되어 뜨는 슬의 얼굴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른다.

 

나는 이런 슬이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심즈에는 'cc 템' 외에도 '치트 키' 가 있다. 검색창에 치트 키를 사용할 수 있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 치트키대로 상황이 바뀌거나 캐릭터가 움직인다. 그중에서도 나는 '머니 치트 키' 를 사용했다. 해당 치트 키를 몇 번 입력하자 슬의 통장에 금방 몇십 개의 0이 붙었다.

 

상점에 들어가 가장 좋은 가구 세트를 구입한 뒤, 작았던 집을 중축시켰다. 그리고 헬스 방, 취미 방, 침실 등 방을 여러 개로 나누어 집을 차곡차곡 꾸며나갔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꼭 가꾸겠다고 생각했던 마당도 만든 뒤 스파 기기와 분수대도 놓아주었다. 슬의 직업은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작가로 설정했다. 이상형과 닮은 심도 추가로 만들어 남편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은 완벽해 보였다.

 

심즈 속 슬이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착착 살아 나갔다. 으리으리하고 대궐 같은 집에 완벽한 외모와 몸매, 소설가로서의 훌륭한 커리어,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편까지. 나는 스스로가 슬이라도 된 것처럼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그사이 밝았던 방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컴퓨터만 바라보니 앞으로 뺀 목이 아팠고 뻑뻑해진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은 뒤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목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니 화장대에 놓인 작은 거울이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슬이에 비해 너무 초라 해 보였다. 눈은 왜 이렇게 작고 얼굴은 왜 이렇게 동그란지. 얼굴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돈되지 않은 방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했던 방은 좁고 형편없어 보였다. 절대 좁은 크기의 방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노트북을 다시 바라보았다. 넓은 침실에서 다리를 꼰 채 친구와 통화하는 슬의 모습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경쾌한 게임 효과음이 흘러나오는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을 빠르게 닫았다. 노트북 화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고요해졌다. 모든 것의 암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심즈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게임을 다시 접속하기 무서웠던 것 같다. 게임 속 캐릭터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또 들까 말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작고 마른 몸에 선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아 까무잡잡한 피부, 너무나도 맘에 들지 않는 얼굴. 외모가 한 사람의 평판을 결정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중학생이던 난 외모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관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기억해, 너는 별의 조각으로 만들어졌고 그 누구도 너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나사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말이다. 맞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별의 조각으로 만들어졌고, 메타버스 속 어떤 별을 방문하더라도 0과 1로 만들어진 캐릭터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리의 삶이 훨씬 빛난다는 것을.

 

 

 

20250407001129_alqxmxlc.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