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유행
사회에서 살지 않은 온전한 '개인'은 어떤 도덕을 갖게 될까? 반대로, 시대와 나라, 환경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서 살아본 사람은 어떤 도덕을 갖게 될까?
어렸을 때는 흔히 말하는 노숙자를 보면 불쌍했다. 배고프고 춥고 빈곤한 그들의 처지에 연민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노숙자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노숙자를 게으름과 불결함의 상징으로 본다. 가장 많이 듣는 그들은 말이 사지 멀쩡한데 일을 안 한다는 말이다.
대중적인 인식의 유행, 트렌드가 있다. 10년 전에는 흥부가 착한 사람, 놀부가 나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흥부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 놀부는 유능하고 돈 많은 사람이다.
과연 10년동안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흥부전의 참된 진실과 교훈을 알게된걸까?
사람들은 진실은 저 너머에 두고 유행에 몸을 맡긴다. 유행하는 대중들의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순식간에 흡수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과 행동이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대부분 사회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말이다.
선과 악, 금기, 연민의 마음, 사랑의 형태 등등 모든 생각과 행동이 사회적 틀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자명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저 상대적인 '기준'일 뿐이다.
사람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길바닥에 주저앉지 않는다. 사회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 '이상한 사람,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길바닥에 주저앉는 건 이상하고 금기인 행동일까? 웃긴 건 인류에게는 의자는 물론 '길바닥' 자체가 없었던 시절도 있다는 것이다. 의자나 침대가 당연한 생활 양식이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회적 통념을 버리고 생각해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저 앉은 곳이 길바닥인 거고 길바닥 위에 앉은 것일 뿐이다.
나는 항상 청개구리 심보가 든다. 미, 추, 선, 악, 심지어 개인의 기호까지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는걸 알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사회와 타인에 지배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기둥을 세워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배척받는다. 소수자들이라고도 하며 자신의 기둥을 세상의 기둥으로 만드는 사람을 혁명가라고도 부른다. 안과 밖 중 밖에 있는 사람들, 독특하고 자기만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또한 항상 노력한다. 선하다고 하는 것들, 악하다고 하는 것들을 볼 때면 멈추고 다시 생각한다. 머리를 백지로 만들고 온전히 나의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나의 눈으로 보기 위함도 있지만 동시에 진실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볼때 진실의 눈으로 봐줬으면 하기 마음이기도 하다.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지만, 신경쓰지 않는 흠보다는 흠이 없는 게 당연히 좋을터다.
대중이란건 개인의 집합인데 역설적이게도 이 대중은 명확한 방향을 갖고있다. 모든 개인이 각자의 방향을 갖고있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중구난방, 혁명가, 소수자, 밖, 독특한 사람, 기둥을 세운 사람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