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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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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언가 덕질 중인 것이 있는가. '덕질'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다. 한 분야에 깊게 몰두하는 이들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가 한국에서 '오덕후', '덕후'로 변형되더니 어느새 이들의 팬 활동을 '덕질'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동안 덕질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간은 트로트 팬덤의 부상으로 새롭게 덕질을 시작하는 중장년층이 늘어났다.


연극 <덕질의 이해> 속 우리의 주인공 '김정순'도 뒤늦게 덕질에 빠진 경우다. 그것도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아이돌 그룹 '방패소년단'의 팬이 되었다. 대학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는 겉보기엔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제자와 바람을 피워 얼마 전 이혼한 전 남편, 휴학하고 집에 돌아와 방 안에서만 지내는 딸 하윤을 생각하면 심란해진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방패소년단 사진 한 장이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는 정순은 빼도 박도 못하는 덕후다.


극의 초반에서는 정순이 덕질을 하며 새롭게 만난 세계를 보여준다. 덕질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듣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본다. 같은 그룹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에서는 제자로나 만날 한참 어린 학생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면 "떡밥이다!" 하며 얼른 저장하는 모습이나, 좋아하는 그룹의 곡이 음원차트에서 좋은 순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밍'을 돌리는 모습 등에서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설렘이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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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순을 보는 시선이 다 곱지만은 않다. 정순의 언니 경순도 나이 들어서 트로트 가수도 아니고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며 은근히 핀잔을 주는 인물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트로트 가수 덕질을 하는 이모의 '덕질 역사'도 만만치 않다. 심수봉으로 시작해 이문세, 소방차로 연결되는 이름들에서 눈을 빛내는 이모의 모습은 덕질이라는 것이 최근에 생겨난 것도, 특정한 분야에 국한된 것도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새로운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살면서 늘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해오지 않았냐고 물으면서.


<덕질의 이해>는 이처럼 덕질을 해본 사람, 지금 덕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덕질이 생소하다면 이제껏 모르던 세상을 만나는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객을 사로잡는 힘은 주연이자 이 작품의 유일한 출연자인 배우 김동순에게서 나온다. 그는 유쾌한 에너지로 70분간 퇴장 없이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며 극을 힘 있게 끌고 나간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대목에 열심히 응하다 보면 어느새 낯설던 정순이 가족이나 이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 이 극의 매력이다.


객석과 거리를 좁힌 다음부터 <덕질의 이해>는 좀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분야를 막론하고 덕후가 주목받고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흥하는 가운데, 덕후는 과연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가족이 예매해준 표로 콘서트에 입장하려면 온갖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공개방송 방청에 당첨이 되면 새벽부터 야외에서 대기해야 한다. 스태프의 불친절한 응대는 덤이다. 최근 케이팝 업계에서 꾸준히 비판받는 지점을 담은 장면은 때론 분노를 때론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불만을 표현하려 해도 "그러게 누가 좋아하랬나" 하는 말 앞에서 덕후들은 자꾸 목소리가 작아진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주 인질이 된다.


늘 방에 틀여박혀 있는 딸 하윤의 이야기는 덕질에 회의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윤은 한 아이돌 그룹의 아주 유명한 팬이었지만 좋아하던 멤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난처해진다. 당혹스러움에 해당 멤버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가 그 멤버보다 더한 비난을 받은 기억은 오랜 상처로 남았다. 사랑했던 시간은 수치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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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아하는 마음이 2차 가해나 누군가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현실 앞에서 '건강한 덕질'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팬이 이렇게 쉽게 동네북처럼 폄하당하는 현실 역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특히 케이팝 업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팬이 대부분 어린 여성이라는 점과 함께 산업 특성상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한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건강한 덕질이란 팬 개개인의 고민과 함께 업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일 테다.


덕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덕질을 해서 무엇하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덕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진짜로 하지 않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덕통사고'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사고처럼 일어난다는 뜻이다. 한껏 실망한 다음에도 우리는 또 기대를 하고 새로운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다. 그것은 미련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면 괴로움도 반드시 따라온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용기를 내는 일이다.


덕질의 괴로움을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덕질의 가장 큰 동력은 덕질을 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이다. 때로 그 마음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증폭되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문화나, 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지난겨울의 기억은 덕질이 결코 무용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덕질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잇는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덕질의 이해>도 덕질을 시작한 정순이 그 덕질 덕분에 또 다른 세상을 끌어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다른 세상이란 바로 딸 하윤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몰랐던 세상. 연예인 꽁무니 쫓아다니는 딸이 늘 못마땅하던 엄마는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딸을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성공하고, 딸이 "현생의 최애"라며 활짝 웃는 정순을 보며 정순이 앞으로도 여러 차례 삶의 파도를 뛰어넘으며 열정적으로 살아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런 힘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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