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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엠넷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었다.


2021년에 첫 방영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춤에 있어서는 탑인 사람들이 모여 한 판 승부를 보는,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그 해에 단연 가장 큰 화제를 몰았던 예능이었다. 수많은 밈이 쏟아져 나왔고, 댄스 신드롬이 일었다. 그리고 <스우파>를 이어 차례로 <스걸파>(스트릿 걸즈 파이터), <스맨파>(스트릿 맨 파이터), <스테파>(스테이지 파이터)가 나왔다. 지금은 세계로 확장한 <스월파>(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방영되고 있다.


스우파의 참가자들은 아마 학창 시절 ‘제일 춤 잘 추는 애’였으리라. 늘 자신이 속한 곳에서 1위가 당연했던 사람들이다. 스우파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벌어지는 순위 싸움이다. 그리고 내가 스우파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싸우는 것’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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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가 다른 댄스 경연 프로그램과 차별점을 보였던 건 바로 ‘배틀’이다. 이전까지의 댄싱 프로그램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무대를 준비할 시간을 줬다. 반면 스우파는 상대를 지목해야만, 혹은 지목당해야만 자신의 춤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디제이가 즉석에서 틀어주는 노래를 듣고 춤을 춰야 한다. 참가자가 유일하게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럼에도 댄서들은 배틀을 하고 싶어했다. 그것도,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상대를 고르는 게 아니라 같이 춤춰 보고 싶은 상대를 골랐다. 그래서 여러 명배틀이 탄생했고, 명장면 또한 탄생했다. 개인적인 서사가 보이는 배틀도 있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한 편의 쇼도 있었다.


사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 욕망에 솔직해지기’였다.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다.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을 때면 자연스럽게 사이드에 섰고, 달리기 1등을 했는데도 계주를 선뜻 양보했다. 내 승부욕을 드러내는 순간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꾹꾹 참은 적이 많다.


나는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스우파에서는 오히려 잘 싸우는 사람이 매력 있었다. 심지어 욕설을 하는 장면이 화면에 고스란히 잡히는데도 시청자들은 오히려 열광했다. ‘싸우는 건’ 나쁜 게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우아함이란 싸움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아함은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나를 지켜내고, 내가 하고 싶은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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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드러내는 게 어려웠던 건 질까봐 무서웠던 것도 있다. 그러나 자존감은 바로 “누가 뭐라든 내가 1등이라는 당연함”이다. 이것은 오만과는 다르다.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블스 플랜>의 “1등하려고 나온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1등은 한 명이다. 그래서 스우파의 댄서들은 “당연히 내가 1등” 마인드와 함께 또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내 안무가 아니라면(혹은 내가 센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 손해다”. “어쨌든 나는 심사를 받기 위해 나온 사람이다.” 내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이 이미 멋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춤의 강점을 알고 있다.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자존감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스우파에서 매력 없는 참가자들은 오히려 이러한 싸움을 두려워하는 참가자다. 아이돌과 댄서의 차이가 여기서 생기기도 한다. 아이돌의 퍼포먼스는 예쁘게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최대한 많은 대중을 포용하려 한다. 반면 배틀로 커리어를 쌓는 댄서는 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공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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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많이 의식하는 단어다. 어느 순간 자존감은 높낮이가 아닌, 단단함의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충격에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때가 있는가 하면, 타격이 거의 없는 영역도 있다. 마치 메모리폼 방석처럼 아무리 눌러도 말랑하게 구겨졌다가 바로 원래대로 돌아온다. 보통 "내 영역"에서는 이 탄력성이 더욱 쫀쫀하다. 스우파 언니들의 영역싸움은 이 탄력성의 대결이다.


애초에 댄스 배틀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에는 생각보다 외부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나한테 잘 맞는 음악이 나오는지, 저지의 심사 기준. 너무 흥분해서 춤을 춰도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떻게 출까 고민하고 있다가는 시간이 다 가버린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노래로도, 어떤 환경에 가져다 놔도 춤을 신나게 출 수 있는 사람이 이긴다.

 

그래서 스우파는 경연 프로그램의 매력과 춤의 매력이 동시에 살아 있다. 지금 스월파가 아쉬운 이유는 스우파 시즌 1의 주인공들이 아직 그 기세를 못 펼치고 있어서다. 아무래도 정이 든 참가자들이다 보니 시청자로서는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주 스월파에서 참가자들이 배틀을 즐기는 모습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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