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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통과 대중, 그 경계 위에서.

by 고은솔 에디터
2025.06.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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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마치 댐과 같다. 이는 신인철 저자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를 읽고 작성한 감상에서도 언급했었다. 그러나 당시는 건강상의 이유로 충분히 작성하지 못했다. 이에 이번 기회에 다시금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댐과 같다.


한국은 혐오의 밀도가 높다. 고급 예술은 한없이 귀하며, 대중 예술은 폄하된다. 대중 예술은 공부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잘하면 되는 장르로 치부된다. 이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이 깊어져 온라인에 반응을 구해도, 다른 나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이란다. 대중화는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인가. 마음에 드는 클래식이 음원 플랫폼에 유통되지 않아, 다시는 들을 수 없던 순간이 있다. 대중화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는 수단일 것이다. 창작을 존중하면서도 유통과 향유를 지원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해금 연주가 김보미의 음악과 삶을 조명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 사뭇 반가웠다. 김보미 저자의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도서를 통해 저자의 삶 속으로 초대한다.

 

저자 김보미는 중학교 시절부터 해금을 시작해, 30년 넘게 해금을 연주해온 연주가다. 대중에게 해금은 여전히 낯선 악기일 테다. 그렇다고 해금 연주가가 에세이를 집필했다고 해서, 곧바로 대중 예술에 이바지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경험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예술가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대중이 이에 다가설 때 낯선 존재였던 해금도 점차 대중 예술로 확장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잠비나이’라는 밴드의 일원으로 해금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돌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이란 매우 특별해서 선별된 사람들만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족적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매우 진솔하고 담백한 고백이다. 무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공연한 ‘잠비나이’다. 물론, 에세이가 으레 그렇지 않냐며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는 그러한 위치에서 나온 진솔하고 담백한 고백들이 도서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1부 초입에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종로의 단성사 극장에서 관람했던 《서편제》가 소개된다. 《서편제》는 찬란히 아름다워서 저자가 국악 음반을 처음 구매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해당 도서는 저자에게 일종의 회고록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독자는 이를 통해 저자와 해금을 함께 탐구한다. 회고록이 되기도, 탐구서가 되기도 하는 해당 도서는 저자의 고백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이제 막 예술가로서 중간 지점을 통과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2부는 성장 일기를 작성하듯, 예술의 여정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오늘 무대에서 실수가 있다면, 내일의 무대는 오지 않았다. 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예술가들도 동감할 것이다. 필드는 학교 공연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학교 공연은 필드에서 인정될 수 없다. 대상과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은 연주자가 곡을 창작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이 유일했다. 이러한 환경에 대중의 선택을 받은 음악이 현대에서 전통 음악으로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자존감에 철갑을 두른 예술가가 그토록 꺼리던 철 지난 팝송을 결국 연주하게 된 것은 ‘현실’이라는 한순간이었다. 이십 대가 저물 무렵에는 마찬가지로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기 꺼리던 친구 두 명을 더 만났다. 바로 피리를 전공한 이일우와 거문고를 전공한 심은용이었다. 재학 중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새로운 세계가 되어준 것이다. 2017년에는 최재혁과 유병구가 합류해, 현재의 5인조 밴드가 완성되었다.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기 꺼린다는 공통점으로 모인 세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무엇을 해보자’보다 ‘무엇은 하지 말자’가 그들의 기준이었고, 이제는 ‘무엇은 하지 말자’를 넘어 콘서트를 열 정도로 성장하였다. 창작 수업이 제한적이었기에, 커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즉,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기 꺼리는 연주자는 아마 이들 외에도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우연을 운명 삼아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운명이 존재할까. 현대의 전통 음악이 사실은 대중음악임을, 그리고 ‘잠비나이’가 결성되었음을 돌아보면, 그 안에는 ‘우연’이 자리하고 있다.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다짐은 이들을 낯선 길로 이끌었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잠비나이’가 각자의 선택과 우연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듯, 우연히 만난 예술을 운명처럼 간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대중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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