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던 말이 있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생기면서 감성이 죽었다. 감성이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연말을 보내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친구들과 라운지 바에서 알코올을 즐기며, 일이 우선인 사람은 일터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볼 것이다. 이들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성인이 알코올 대신에 코코아를 마신다고 해서 성인답지 않다고 할 수 없을 테다. 코코아는 코코아일 뿐이다. 언어 역시 언어일 뿐이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감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표현이 사라질 수도 없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느끼하게 구는 사람에게 오글거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현상을 감성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에서 비로소 낭만은 다시 찾아온다.

 

 

 

안 읽을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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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유머다. 지적 허영이 아니라 출판계의 빛과 소금. 읽지 않을 책을 사놓는 사람은 출판계의 빛과 소금. 이 유머는 2024년 6월에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출판사가 홍보 부스에 붙여두면서 주목받았다. 그래서 도서전에 방문한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이 바로 ‘빛과 소금’이라며 재치를 곁들인 사람들도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1.7권에 불과했다. 도서 구매량은 종이책이 1.0권, 전자책이 1.2권이었다. 연간 1퍼센트대에 머무르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책을 향한 관심을 반기는 자조 섞인 유머로 해석된다. 또한, 필자는 어떤 행위로든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음으로 이를 바라보려고 한다.


문학은 예술 활동을 증명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명백히 문학은 예술에 포함된다. 누구도 예술을 감상만 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말이다. 책을 구매한 것은 출판계에,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 #북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감상하면서 여운을 깊이 남길 것.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을 되새길 것. 그 사실로도 예술의 가치는 충분히 발휘된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구매하지 않는다.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시간을 구매한다.

 

 

 

범위가 명하는 범위에 대하여


 

대중은 차별 없이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예술은 대중을 위한 공공 서비스로서 사(私)익으로 치부될 수도, 될 이유도 없다. 따라서 공적 영역에 사(私)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는 ‘팔 길이의 원칙’이 도입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예술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 대중에게 해를 끼친다면, 건전한 예술로 볼 수 있는가. 범위가 명하는 범위는 대중과 맞추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SNL 코리아는 최근 독서 모임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소설이 영어로 ‘Novel’이니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일명 ‘과시용 독서’를 과장해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출판사들은 ‘과시용 독서에 적합하다’며 자사 도서를 홍보하며 유머러스하게 대응했다. SNL 코리아는 과감한 풍자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도서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감정을 간과한 것이다. 과장된 묘사로 감정의 일부가 희생되었다. 결국 무엇 하나 희생되지 않고 동등해야 본래의 의도를 온전히 알게 되는 순간은 존재한다.

 

감정도 매한가지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생겨난 것도, ‘감성적’이라는 표현이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도 모두 사람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진지하고 격식 있게만 표현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나 유머로도 충분히 의미는 전달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과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한 사람의 진심이 담겨 있다.


이렇듯 각기 다른 방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진정한 낭만은 파생한다. 타인을 평가하지 아니하며 그 사람과 발맞추어 그들을 포용하려는 사회야말로 낭만을 품을 준비가 된 사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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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조베리
정말 오랜만에 제 글이 발행되었습니다. 개인 문서를 제외하고는 다른 일들로 바빠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는데요, 그래서 사실 손이 많이 굳었습니다. 글을 쓴다기보다 떠오르는 단문들을 꺼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네요. 그래도 이미 발행된 터.

이번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단순합니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감성을 폄하할 수도, 그렇다고 표현이 사라질 수도 없는 것처럼 이른바 ‘과시용 독서’ 또한 단면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시용 독서’에는 ‘과시(過時)’라는 부정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성인의 연간 독서 구매량이 1퍼센트대에 머무르는 현실에서 도서를 구매하는 행위는 분명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나아가 소설이 영어로 ‘Novel’이니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과장된 묘사로 희화화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술이 아닌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시간을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감정이 그 자체로 존중받고, 다양한 표현이 공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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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14:46:0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