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KakaoTalk_20250724_19224577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4192832_ascpkhkq.jpg)
트롯은 오랜 시간 세대를 아우르며 대중을 위로해온 장르다. 이제 그 트롯이 공연예술과 결합해 ‘트롯컬’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트롯열차>는 바로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자, 변화를 직접 향유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필자에게 해당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가수 심수봉을 통해 트롯을 좋아했던 기억을, 무대 위에서 다시금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트롯열차>는 CGV 피카디리 1958 피카디리홀에서 공연된다. 극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무대가 펼쳐진다. 스크린은 배경이 되고, 싱어롱 장면에서는 비교적 큰 자막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연출은 공연에 실험적 성격을 더하며, ‘실험극’의 요소를 일부 내포한다. 그런데도 해당 공연을 ‘트롯컬’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트롯을 향한 관객과 출연진의 애정 때문일 테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저마다의 감정과 추억을 품고 있다. 이에 트롯이라는 장르가 무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또 그 무대가 어떻게 향유될 수 있을지를 주의 깊게 지켜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트롯열차>는 기대에 응답하려는 노력이 분명히 담긴 작품이었다.
공연의 몰입도는 관객의 향유 방식에 따라 좌우된다. 장르 특성상, 관객과 무대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이는 공연에 활기를 더하는 동시에, 흐름을 저해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필자가 관람한 회차에서는 일부 관객이 넘버를 따라 부르거나 대사를 예측해 먼저 말하며, 배우가 “몇 번 본 티 내지 말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는 이머시브 장르가 즉흥적인 반응이 개입될 수 있는 환경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관객의 향유 방식이 무대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특정인만의 잘못은 아닐 테다. 장르적 실험이 동반하는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트롯컬’이라는 형식을 처음 시도하는 만큼, 관람 방식 또한 관객 스스로 익혀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관람 방식의 다양성은 공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다른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트롯열차>는 한계를 정하지 않은 공연이었다. 남진의 <둥지>에 맞춰 진행된 커튼콜과 트롯 넘버를 함께 부르는 싱어롱 장면 등, 관객이 능동적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들은 ‘함께 즐기는 경험’이라는 취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필자 역시 이런 이머시브한 접근이 트롯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특히 김수찬 가수의 팬덤이 보여준 활기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팬덤 ‘차니사랑’은 단순한 관람객을 넘어, 마치 작품의 일부처럼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연에 선정된 관객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는 중장년층 관객의 정서와 섬세하게 맞닿아 있었다. 선정된 사연 중 다수가 김수찬 가수의 팬들이었고, 가수는 그에 보답하듯 팬서비스를 성실히 이어갔다.
<트롯열차>는 많은 부분에서 도전을 감행한 작품이다. 익숙한 장르에 새로운 공연 형식을 더함으로써 트롯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무대를 완성한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고는 공연 내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 진심은 관객에게도 전달되었다.
향유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무대를 제작한 제작진과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행위다. <트롯열차>가 다시 관객을 만날 날에는 더 많은 이들이 새로운 ‘트롯컬’의 형식을 원만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감정과 추억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