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자석]이라는 연극 속 '고든'이라는 인물의 하루를 상상하며 쓴 유저 시나리오이다.
눈이 떠진다. 여전히 피곤하고, 팔은 욱신거린다. 상체를 일으키고 이젠 속이 울렁거리지도 않는 매캐한 술 냄새를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고개가 툭 떨궈진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허리를 반쯤 굽히고 세면대에서 대충 얼굴을 씻는다. 화장실에서 나온다. 집 안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퍼질러 있는 그 사람 주위로 온갖 것들이 어질러져 있다. 뭐가 더 부서졌고, 부서지지 않았는지 가늠해보는 행위는 이미 오래전에 그만 두었다. 시선을 빠르게 거둔다. 노트, 펜, Mp3, 이어폰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기타를 들고 집을 나선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빠르게 걷는다. 누구를 지나치며 걷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 그보단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걷는 속도를 좀 더 올린다. 절벽이다. 꽃나무를 스치듯 바라보고 익숙한 걸음으로 빠르게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모자를 벗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는다. 차고 짠 공기가 몸을 가득 채운다. 내가 있던 곳의 공기와는 아주 다르다. 난 여기에 속한 사람인지, 아까 누워있던 곳에 속한 사람인지 자주 헷갈린다. 갈매기가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갈매기들은 3,4월이 되면 대부분 떠나간다. 괭이갈매기만 이곳에서 머무르는 텃새고 다른 갈매기들은 대부분 철새라서 이 시기가 지나면 이렇게 많은 갈매기들은 볼 수 없다. 새들은 3가지 종류로 나뉜다. 철새, 텃새, 길잃은새. 길잃은새는 태풍이나 기후변화 같은 이유로 길을 잃어버린 새들을 말한다. 이방인이다. 이방인. ..
텃새는 길잃은새를 사랑할까. 철새는?. .. 길잃은새 옆에 다른 새가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방인이니까. … 바람을 가르며 나는 한 갈매기가 홍때까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홍때까치가 머물고 있는 얇은 가지 위로 최대한 자신의 무게를 줄이며 살포시 앉는다. 그럼에도 가지는 크게 휘청거린다. 크게 당황한 홍때까치는 화들짝 놀라며 가지에서 발을 뗀다. 어색한 침묵. 말을 걸어볼 수 있을까? .. 찬바람이 줄어들고 떠나야할 때가 다가온다. 하지만, 갈매기는 더 머물고 싶다. 홍때까치는 이곳에 처음 와서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갈매기는 가장 이상한 결정을 내린다. 함께하는 건 새를 살아가게도, 죽어가게도 한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두 새가 주로 머물던 가지는 축 쳐져 있다. 두 새의 그늘 때문에 햇빛을 못 받은 그 가지는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외로운 나그네의 땔감이 되었다. 불이 타오른다. 춤을 춘다. 마치 두 마리의 새처럼. 기쁨에 겨워 정신없이 춤을 춘다. 땀이 통통 튀어올라 빛난다.
배에서 소리가 난다. 기타를 치려고 했는데, 오늘은 안 될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일단 연습실 쪽으로 간다. 엘렌은 없을 것 같지만, 폴이나 프레는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모자를 뒤집어 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근처 펍에서 소세지나 하나 살까 싶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프레를 부르고, 소세지를 먹을거냐고 물어본다. 프레는 질렸다고 말하지만, 내가 사는 것까지 기다려준다. 걸어가면서 입에 욱여넣는다. 퍽퍽하지만 이젠 익숙하다. 연습실에 도착한다. 폴은 이미 와서 기타를 튜닝하고 있다. 폴이 어떤 곡을 할거냐고 물어본다. 프레는 오늘은 비틀즈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헤비메탈은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폴은 엘렌이 하기 싫어할 것 같다면서 깔깔 웃는다. 기타케이스를 열고 정신없이 널브러진 종이들 사이에서 악보를 찾는다. 나도 내 베이스를 튜닝한다. 엘렌은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온다. 펍에 생긴 신메뉴에 대해 정신없이 늘어놓는다. 예상대로 엘렌은 비틀즈가 싫다고 투덜거리지만, 폴은 노래를 시작해버린다. 비틀즈의 In my life다. 눈을 감고 공기를 채우는 소리들을 듣는다. 듣다보면 손이 움직인다. 이 감각이 좋다. 프레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한참을 고개를 흔들며 공기를 가른다. 시간이 많이 흘렀나보다. 엘렌은 펍에 꼭 가봐야 한다며 드럼 스틱을 던져놓고 한참 말한다. 친구들을 따라 펍으로 향한다. 난 한걸음 떨어져서 걷는다. 일단 들어간다. 엘렌과 폴이 정신없이 음식을 시킨다. 맥주까지. 종업원이 음식을 내온다. 친구들은 술에 취한다. 음식을 일단 입에 넣는다. 냄새가 조금씩 울렁거린다. 친구들은 술에 취한다. 소리가 커진다. 참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펍에서 나온다. 난 조금도 취하고 싶지 않다. 내가 누워있던 곳의 냄새를 없애고 싶다. 다시 절벽으로 향한다. 이곳에 속하고 싶다. 세상은 어두워졌다. 몸에 바람을 더 넣는다. 이 바람이 없다면 난 몸에 구멍을 만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일단 눕는다. 언제 돌아가야할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숨이 한숨이 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