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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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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 바다 검게 물들고

구름 비바람 오가던 하얀 하늘 회색 빛 들고

맘속에 찾아온 어둠을 그대로 두고

밤을 덮은 차가운 그림자마냥 굳어간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 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 악동뮤지션의 <얼음들> 가사 중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어두움 속에 살아야 하는 걸까. 딱딱하고 추운 얼음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꽁꽁 얼어간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본인 스스로를 얼음처럼 녹을지 못 녹을지도 모르는 세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나, 하오펑, 샤오가 등장하는 배경은 춥디 추운 겨울 그것도 경계에 놓여있는 연변이다. 여행 가이드인 나나는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꽤 각광받는 선수였고, 하오펑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상하이의 커리어맨, 샤오는 가진 거라곤 든든한 몸뚱이와 그 자신감으로 나나를 짝사랑하는 마음뿐이었다. 겹칠만한 공통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세 사람이지만 여행에서, 술집에서, 친구라서 그들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하오펑의 연변 여행기를 핑계로 삼아 셋은 잠시 삶에서부터 훨씬 더 멀어지고자 한다. 클럽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토하기, 서점에서 책을 훔치면서 내기하기, 폭설이 가득 내린 백두산에서 곰을 만났지만 살아남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혀 이해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여행기이지만, 이상하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런 여행의 흐름이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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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가 그리운 것. 나나가 겪는 향수병은 “자신의 꿈”을 향한 질환이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그녀가 오래된 상자에서 꺼낸 것은 바로 여러 개의 메달. 꽤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각광받는 선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집에 찾아온 동료의 말을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타 선수들에게도 큰 질투를 받을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하오펑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답하던 그녀는 지금의 일은 재미도, 힘듦도 그리고 보람도 없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샤오의 기타 선율에 울던 그녀는 발목에 남은 상처에 한없이 무너졌고, 백두산에서 만난 곰을 보아도 앞에 주저앉을 만큼 삶에 대한 의지도 불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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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펑은 상하이 금융권에서 일하는 소위 말해, 퍼펙트한 남자다.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 스마트한 두뇌.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받기 싫은 유일한 전화는 바로 “정신 병원에서 온 전화”다. 오늘은 와야 한다, 내일은 와야 한다. 하오펑의 정신적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음을 알 수 있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얼음은 “회피”였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 높은 곳에 서서 몸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삶의 선 안으로 돌아왔고 죽을 용기도 없어서 삶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런 그가 나나와 샤오를 만나 조금은 삶의 의지를 극복하는가 싶었지만, 나나와의 에로스적 사랑도 샤오와의 우정도 그런 그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회피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삶의 태도를 무의미하게 유지시키는 생명유지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나와의 샤워로 얻은 온기의 손길들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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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 대중이 가장 서술할 표현이 애매한 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인과 가장 많이 닮았다.

 

나나를 사랑하지만, 샤오를 애정하지만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상처받고 결국 연변을 떠나는 인물을 샤오였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욕망과 갈증,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한탄.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나. 한곳에 집중하기도 힘든, 양극단의 지점에서 매일을 고뇌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그 또한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샤오의 도망은 회피가 아니라 처음으로 던져본 충동 혹은 개인적인 표현과 같았다. 나나의 말, 주인아저씨의 말에 늘 순순히 따르던 샤오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손을 들어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지만 슬픈 희망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이 경계 투성이인 세상에도 우리가 소리 낼 공간은 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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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 간의 관계는 서로를 돌보는 식으로 비치는 것보다 개개인의 아픔과 현실을 더 극적이게 보여줬다. 위로와 배려를 나누기에는 서툰 세 사람.

 

다시 한번 이 영화는 청춘물이 아니라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걸 글을 쓰며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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