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사상집 『거대한 죄』를 신간으로 접했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고 있던 톨스토이는 고리타분한 기독교 도덕주의자였다. 지친 현대인이 ‘고전적 양심 호소형’ 저작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가 쇼펜하우어나 니체, 혹은 불교적 사유처럼 현대적 영혼을 파고드는 철학자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선입견에 균열을 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반쯤은 감응했고, 반쯤은 비판적으로 읽었다. 톨스토이가 다시 호출된 것은, 아마도 과잉정보와 피로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적 요구에 부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본과 권위에 대한 급진적인 반발을—어쩌면 현실도피적인 방식으로—설파한다. 솔직히 말해, 그런 도피와 분노는 내 안에도 잠재해 있었다.
1. 설득하지 못하는 예언자 - 비판적 독해
『거대한 죄』는 기독교적 아나키즘 사상을 토지 문제와 결합한 에세이다. 톨스토이는 토지 소유의 독점이 인류의 분열과 빈곤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해결은 정치적 혁명도, 제도 개혁도 아닌, 양심의 각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심지어는 국가에 기여하는 행위를 거부하라고까지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윤리적 호소가 설득의 언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는 헨리 조지의 단일토지세 이론을 인용하지만, 체계적 설명보다는 도덕적 외침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것은, 독자로서 내가 느낀 불편함이기도 하다.
첫째, 그는 자신을 예언자적 위치에 둔다. 농민의 삶을 이상화하면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이끄는 도덕적 각성을 강조한다. 그는 귀족이자 식자층의 일원임을 자각하면서도, 그 위치에서 대중을 계몽하려 한다. 이는 그의 윤리적 엄격주의와 맞물려, 때로는 호소력보다는 고압적인 인상을 남긴다.
둘째, 그는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 문제 인식은 탁월하지만, 그의 대안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는 농민의 삶이 이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자본주의 사회의 분업화된 노동이 농민보다 더 불행한가? 우리는 그의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을 얻기 어렵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 외면할 수 없는 절실함
책을 읽는 내내 톨스토이에 대한 나의 태도가 결코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의 꼬투리를 잡을 떄마다 톨스토이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우월의식에 찌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그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주로서 땅을 나누고, 집의 재산 분배를 거부하고, 귀족의 생활을 거부하고, 결국 집 밖에서 병사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성자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죄인으로서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우월의식처럼 보이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절박한 비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그가 대안이 없는 순진한 사상가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적 파국을 치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구조는 무너지지만, 인간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82세에 가출했다. 아마 자신의 사상을 실천으로 만들고자 한 최후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가 역에서 병사하는 끝을 선택한 것은 철학과 이상이 이끄는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실존적 결단은, 그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일깨우길 원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자기 이상 때문에, 그는 가출한 노인으로 죽어야만 했다.
나는 톨스토이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못한다. 치열한 삶에서 그가 꿈꾸었던 낙원은, 입증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 그가 호소하는 '본질'이 정말로 본질적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자기이상을 위해 끝없이 투쟁하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글과 삶은 닿을 수 없지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낙원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몸부림친 그의 실존은—치열하고 극단적이었기에—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는 실패한 예언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마치 우리 시대의 결핍을 역설적으로 반사하는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고 각성시킨다. '거대한 죄’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