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온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을 꺼내 수면 위에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녹기 시작하고 다시 물로 돌아간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안소니 첸 감독은 이러한 자연의 원리, 물과 얼음의 순환을 포착하여 인물 간의 관계에 적용한다. 그리고 푸를 청에 봄 춘, 대개 뜨겁고 푸른 것으로 묘사되는 청춘 대신 얼어붙은 청춘을 그린다.
펜데믹 동안 실존적 위기와 집단적 우울증을 겪는 청춘들. 그들은 낮은 온도에서 쉽게 얼어버린다. 그러나 수면에 올려놓거나, 물에 넣어두거나, 얼음과 얼음끼리 만나게 하여 약간의 온기를 전해줄 수만 있다면. 또다시 녹아 다양한 형태의 가능성을 품은 상태가 된다.
부상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가이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나나,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앞만 보며 달려오던 하오펑, 뚜렷한 목표 없이 현재를 흘려보내는 샤오. 우연한 이 셋의 만남은 서로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녹여준다.
새로운 사람들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서로 친해지기 위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듯, 그들은 얼어붙은 얼음을 깬다. 언더락 잔의 얼음을 녹여 마시고, 술에 취해 상기된 얼굴로 얼음을 나누어 먹는다.
기타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클럽에 혼자 앉아 우는 이들은 왜 이토록 힘든가.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에는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일지 몰라도, 그들 스스로는 심각한 불안에 빠져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계, 연변이라는 배경 설정은 그들의 불확실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마구 섞여 등장하는 한국어와 중국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세 청춘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천지를 보기 위해 백두산을 오른다.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장소,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눈이 잔뜩 쌓여있고 뚜렷한 길이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참을 돌아 거의 다 도착했으나, 안개가 꼈으니 올라가도 소용없으리란 무전을 받는다. 비록 천지는 아니지만, 하오펑은 예상치 못한 멋진 절경을 마주하고, 나나는 단군 신화 속 곰에게서 치유 받는다.
그들은 천지를 보지 못했으나, 괜찮다. 목적지를 정하고 시작했더라도, 사실 그것만이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도착하는 곳이 곧 목적지.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바를 최대한 느끼면 된다.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백두산의 모습은 나나와 하오펑 그리고 샤오의 앞에 펼쳐진 거대한 삶의 여정이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동행자 또한 그러하다.
얼어붙은 청춘의 얼음들을 따듯해져 녹아내리고, 또다시 어디로 갈 것인가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는 그들의 몫이다.
크고 단단한 서사를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에게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대사 자체가 많지 않고, 개연성이 뚜렷하지 않은 작품에는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세 인물을 흐릿하게 그려놓은 이유는 우리가 채워넣을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구멍이 뚫려 있는 인물들에 나의 이야기를 차곡 차곡 채워 넣어 볼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여정은 어떤 모습이려나. 나는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려나. 새하얀 눈과 단단한 얼음이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