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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자 사상가 톨스토이는 인간 존재와 사회 질서, 신에 대한 성찰을 문학과 사상의 경계에서 풀어낸 인물이다. 대표 저작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고백》이 있다.

 

그는 본디 귀족 출신이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 길러졌다. 자신의 형을 따라 입대한 후 처음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러시아 민중의 삶과 현실 문제에 깊이 사색하는 문학가이자, 사상가로 자리매김한다.

 

교육자이자 농촌계몽운동가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에 학교를 설립해 농민의 교육을 통해 사회 변화를 촉구했다. 또한 문학적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종교와 국가, 자본의 권위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현대의 시선에서도 다소 급진적인 주장으로 인해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되는 한편, 민중에게는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는 후기 사상에서 ‘노동하지 않는 자의 소유’를 가장 부도덕한 범죄로 규정하며, 사적 소유에 반대하는 급진적 윤리관과 기독교적 평화주의, 무정부주의를 접목한 ‘기독교 아나키즘’을 주장했다. 국가 권력은 조직된 폭력일 뿐이며, 참된 공동체는 내적 도덕과 양심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 이론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유일한 대안으로 지지했고, 이를 소개하는 여러 글을 남겼다.

 

톨스토이는 단지 철학적 이상이 아닌 실천적 삶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고취했다. 종국에는 술·담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말년에 집을 떠나 생을 마감함으로써 ‘소유’라는 현실에 도전했다. 그의 사상은 이후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 비폭력 저항 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거대한 죄 : ‘노동하지 않는 자의 토지 소유’


 

노동하지 않는 자의 토지 소유보다 큰 죄는 없다.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톨스토이는 토지 소유와 노동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농민들이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표면적으로는 노예제가 폐지된 것 같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지주에게 예속된 노예나 다름 없다.

 

 

우리는 노예제 폐지에 대해 논하고들 있지만, 우리는 노예제를 폐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더 난폭한 형태, 즉 인신을 구속하는 노예제를 폐지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더 교묘하고 배신적인, 더 저주받은 형태의 노예제, 즉 인간을 사실상 노예로 만드는 동시에 그의 자유를 찬양하는 산업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

 

p. 221

 

 

명백한 폭력 대신 자본의 논리 뒤에 숨어 기만하는 것, 이것이 ‘거대한 죄’다. 자명한 죄보다, 합리화된 불의가 더 큰 악이라는 통찰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렇게 낮은 임금으로 일을 해야 하는가? 만약 그들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면, 대체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p. 223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 위에 높은 강도의 노동 조건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삼는 구조는 투자가 아닌 그저 착취일 뿐이다.

 

다른 맥락에서 현대에 대체 불가능성의 신화가 팽배하다. 마치 커리어가 그것을 보장해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체될 뿐이다. 우리 중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 대체 불가능은 그저 신의 영역이다.

 

 

 

기독교 아나키즘 : 권력 없는 공동체를 향한 열망


 

톨스토이는 종교 없는 정치, 사랑 없는 국정을 경계한다. 그는 진정한 공동체란 ‘사랑’과 ‘믿음’이라는 내적 윤리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정부 인사는 물론 인민의 복리를 추구하는 반정부 인사들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 종교가 없이는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다.

 

p. 243-244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랑이 곧 사람의 ‘필요’를 이해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사랑 없는 정부는 무엇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판단하고, 정책을 집행하는가.

 

그들은 그저 ‘세 가지 거짓’을 말할 뿐이다. 톨스토이는 ‘병역, 조세, 토지 수탈’을 세 가지 거짓이라 지적했다. 한편, 국가는 이를 통해 국민과 영토, 주권을 유지한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제도이지만, 이것이 애국주의에 가려진 위선일 뿐이라고 일침한다.

 

 

결과적으로 통치하는 자들은 복종하는 자들에게 그들 즉 통치하는 자들에게는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로운 일을 하도록 강요한다. … 즉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률을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정부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렇다.

 

p. 258-259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기독교 아나키즘에서 국가는 ‘불필요하다’기 보다 ‘해롭다’에 가깝다. 다소 급진적인 주장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정부는 곧 무법인가. 무법으로 인해 이어질 무질서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그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혹은 윤리적이고, 필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에덴으로의 회귀’는 가능한가


 

철학에도 서사가 있고, 사상에도 사연이 있다.

 

톨스토이의 사상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나온 생존의 윤리였다. 제1차 세계대전, 농민과 노동자들은 군대에 동원되고, 무거운 조세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애국주의라는 명목 아래 착취당했던 그들의 현실을 묵인할 수 없었다.

 

그에게 ‘기독교 아나키즘’은 단지 정치적 이상향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었다. 사랑 없는 권위, 폭력으로 유지되는 정의, 신 없는 윤리를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정당성 위를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질문을 남긴다. 법과 제도가 아닌 윤리와 연민에 기반한 사회를 구축하고, 보편타당함의 오류에 놀아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솔직히 톨스토이의 세계관에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자기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몸부림쳤던 그에게는 찬사를 보낼 수 있을지라도, 그의 사상에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거대한 죄에 대해 논했지만, 그에 앞서 모든 죄의 시작인 ‘원죄’가 있다. 그가 바라는 모습은 마치 에덴 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에게 도전했고, 그 대가로 낙원을 떠나야 했다.

 

그저 모두가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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