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동극장 창작연희극 '단심(單沈)'
완전한 선역과 완전한 악역은 보통 소설 속에만 등장한다. 실제 세상에서는 사실 애매한 종류의 사람들이 훨씬 많다. 훌륭한 이들도 어떤 부분에서는 약점을 숨기지 못하고, 나쁜 사람들에게도 마냥 손가락질하기엔 미묘한 입체적인 구석이 있다. 그래서 ‘말레피센트’나 ‘조커’처럼, 많은 창작물에서도 기존의 이야기 속 악당의 서사에 주목하는 시도가 종종 이루어진다.
하지만 선한 역할을 비틀어 보는 시도는 흔치 않다. 특히나 우리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 역시도 마냥 선한 효녀의 이미지 바깥의 이면에 대해선 그다지 다루어진 적이 없다. 눈 먼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는 그 효심이, 굳이 부정하기에는 너무 훌륭하기 때문일까.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공연브랜드, ‘K-컬처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單沈)'은 그런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조명하는 공연이다. 기존의 창작물에서는 드물게 다루어졌던 선역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하는 특별한 시도이자,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창작 초연으로 선보이는 신작이다. 한국무용과 사물놀이, 타악 등 다채로운 전통예술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창작 연희극으로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공연한다.
지난 5월 초 공연 첫날, 일부러 별다른 기본정보 없이 관객석에 앉았다. 무용 공연이었기에 내심 기대했던 것은 사실 서사보다는 무대미술이나 안무 등의 시각적인 볼거리였다. 하지만 그 기대를 넘어서서 예상과 달리 심청의 내면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서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무대미술에 대해서는 뒤이어 다루어 보려고 한다.
그림자인 동시에 한 몸을 이루는 두 명의 심청
1막의 첫 장면은 연꽃 위에 엎드린 심청의 모습이다. 흰 한복을 입고 머리를 땋은 전래동화 속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기 하루 전의 시점,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유려한 동작으로 애달픈 감정을 그려내는 심청의 표정은 그저 처연하고 가녀리다. 하지만 이내 등장하는 또 다른 존재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심청의 그림자처럼 그녀를 똑 닮았지만 온통 검은 색인 의상을 입고, 같은 동작을 취하더라도 다른 감정으로 임한다. 물 흐르듯 가볍고 부드러운 심청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조금은 직선적인 동작으로 그녀의 뒷편에서, 때로는 그녀의 맞은편에서 짝을 이루어 움직인다.
둘은 대칭의 구조로 치맛자락을 흩날리고, 서로의 팔을 붙들고 나머지 팔을 뻗어내며 하나의 형태를 만들다가도 어느 한 순간은 멀리 떨어져 각자의 동작을 고집한다. 뒤이어 등장한 심청의 아버지, 심 봉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심 봉사를 꼬드기는 뺑덕까지 가세해 이들 네 명의 관계는 둘-둘이나 하나-셋, 때로는 하나-하나-하나-하나로 끊임없이 편 갈라진다.
뺑덕이야 심 봉사를 등쳐먹으려는 속셈 뿐이고, 그 상황이 마냥 안타까운 흰 옷의 심청은 뺑덕에게 조종당하는 아버지를 계속 붙들어 세운다. 이때 검은 옷의 인물은 심청과 동일하게 움직이다가도 심청의 적이 되어 심 봉사를 방해한다. 그녀가 심 봉사의 지팡이를 빼앗아가면 흰 옷의 심청이 그 지팡이를 다시 되찾아서 아버지에게 쥐어주는 식이다. 하지만 뱃사람들이 심청을 잡아가는 순간에는 심청의 편이다. 그녀는 뱃머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는 심청을 만류하지만 이미 정해진 서사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녀는 ‘심청을 위한 심청의 선택’에는 동의하지만, ‘심 봉사를 위한 심청의 선택’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해서 주인공과 함께하는 이유는 그녀 역시도 심청의 또 다른 내면이기 때문이다. 언뜻 악역 같은 그녀는 심청 마음속의 진솔한 속내를 대변한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두려움과 공포,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어지러이 뒤섞인다. 하나뿐인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스님의 거짓말과 뺑덕의 꼬드김에 넘어간 아버지의 선택은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산제물이 된다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젊은 목숨이 너무나도 야속하다. 그 흑백의 치열한 갈등 끝에 승리하는 쪽은 원래의 이야기대로 흰 옷의 심청이다. 동시에 그녀는 검푸른 바닷물에 뛰어들어 가라앉는다.
이후로 검은 옷의 심청은 한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심청이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늘 자기 자신보다도 우위에 두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이제는 단절되었기 때문일까. 흰 옷의 심청은 신녀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용궁여왕과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용궁여왕은 위엄이 가득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친어머니와도 같은 자애로운 모습으로 심청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검은 심청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은 2막의 결말부 중 심청과 왕의 혼례식이다. 그녀는 혼례식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혼례복을 입은 심청이 왕과 함께 퇴장하자 그녀를 축복하며 물러난다. 심 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이 왕과 혼인하면서 그녀를 짓눌렀던 두 가지 어려움, 곧 가정의 문제와 빈곤의 문제가 해소되고 심청이 비로소 자기 자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이 막을 내리고 어느덧 원래의 복장으로 돌아온 흰 심청과 검은 심청은 흩날리는 벚꽃잎을 뒤로한 채 다정하게 춤을 춘다. 내면 속에서 편 갈라 싸웠던 두 마음이 이제는 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사실 원래부터 이들은 한몸이었음을, 한 쪽이 상대방을 짓누르거나 공격할 필요도 없었고 져주거나 이길 필요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이중성과 자기모순이 도리어 당연한 것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현대와 전통의 감각적 아우름
무대미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닥면과 벽면을 가득 채우는 디스플레이 패널이었다. 대부분의 배경은 민화나 전통 문양을 간결하게 재해석한 그래픽으로 채워졌지만 용궁에서는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용궁 신녀들이 네온 핑크빛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씬에서는, 마찬가지로 핑크빛인 추상적인 배경에 해파리들이 천천히 유영하며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때 신녀들의 머리장식과 부채 등의 소품을 활용해 심청을 지상으로 올려보내는 연꽃의 꽃잎을 형상화하는 연출도 백미였다.
동시에 심 봉사나 뺑덕, 왕 등 지상의 인물들의 의상의 경우 한복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국무용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전통과 현대가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해 냈다. 더불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와집의 일부가 잘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초현실적인 연출, 심 봉사가 눈을 뜨자 배경을 채우고 있었던 흑백의 책가도 모티프들이 점차 컬러로 변환되는 연출 등이 풍성함을 더했다. 무대미술이란 단순한 시각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궁녀와 함께하는 심청의 혼례식이 신녀와 용궁여왕의 대열을 연상케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두 장면이 대구를 이루는 데 더해, 원작의 왕이 여왕으로 변주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도를 곱씹게 되는 연출이었다. 심청은 용궁여왕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 가장 낮은 곳에서 최고의 위치로 올라서며, 심청은 아마도 용궁여왕의 손길을 떠올렸으리라. 어머니의 부재와 계모와의 갈등으로 겪어야 했던 아픔이 비로소 회복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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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심(單沈)'은 시야의 폭을 넓혀 옛 주인공에게서 미처 회자되지 못했던 속내를 뒤늦게야 살피는 시간이다. 선함이 당연했던 이들에게도 남모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 시선에서 의외의 다정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따뜻함은 비단 창작물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을 살필 때도 되새길 법한 자세다.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는 사실 또 다른 심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각자의 행동거지는 그저 솔직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마음속의 폭풍을 애써 잠재운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흰 심청과 검은 심청의 갈등 끝에 그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는 결말을 떠올리며, 그 갈등의 사사로움을 인정하는 것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