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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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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토요일의 오후 4시에 대학로의 JCC아트센터를 찾았다. 혜화동의 야트막한 언덕길 사이에 자리잡은 이곳은 교육기업인 재능교육이 지난 2015년 설립한 아트센터로, 서울 도심에서는 최초인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외벽은 초여름의 햇살을 맞아서인지 유독 다른 건물들 사이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에 들어선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공기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JCC아트센터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리지만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전부 재즈 공연의 경험뿐인지라 다시 마주한 이곳의 공기가 사뭇 특별했다. 재작년의 첫 방문에서도 아담한 공연장을 채우는 재즈의 선율을 풍성히 누렸던 만큼, 오늘의 재즈는 또 어떤 감상을 전해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이날의 공연은 피아니스트 신아람이 색소포니스트 김기범과 드러머 김선빈과 함께 결성한 ‘비움 프로젝트’의 두 번째 음반 ‘After Bium’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비움 프로젝트의 출발이 된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비울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라는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비움’이라는 테마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살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쇼케이스 콘서트답게 모든 곡들의 작곡 비화를 함께 들어볼 수 있었는데, ‘비움’의 자세가 가져다준 결과를 오롯이 담은 곡이나 그 비워냄 이후의 마음가짐으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 곡, ‘비워냄’의 절정을 도전적으로 실험한 곡 등 비움이라는 일관된 테마 안에서도 모든 곡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셋리스트의 순서 또한 그 흐름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끔 세심하게 구성되어, 작곡가의 여정에 동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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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

 

To My Youth

The Farewell

Hometown Reverie

밤고양이

자유로운 보폭 (Free Strides)

May All Be Peaceful

엄마의 정원

Journey Unbound

 

 

비움 프로젝트는 재즈 밴드로는 독특하게 콘트라베이스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그래서 박자의 중심을 잡는 베이스의 무게감 대신 나머지 세 악기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며, 공백과 소리 사이에서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 이 점에서 비움의 목적어를 음악적 요소로 독해할 수 있겠지만, 여덟 곡의 이야기들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중 두 번째 곡 ‘The Farewell’은 비움이라는 행위에 동반될 수밖에 없는 ‘작별’을 주제 삼은 곡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첫 번째 곡 이후에 곧바로 이어진 이 곡은 작별에서 오는 정서를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색소폰이 선율을 주도하고 피아노가 뒤따르며, 두 악기의 단일한 호흡 사이에서 작별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곡 전반에 감도는 공허함 사이에서도 이후의 진전을 예고하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감지되면서, 곡은 마치 열린 결말과도 같이 마무리됐다.


세 번째 곡은 보다 명시적인 주제를 담은 ‘Hometown Reverie’로, 직전 곡이 남긴 비가시적인 감상을 특정한 심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곡이었다. 작곡가는 본인이 어릴 적부터 살아온 동네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했던 오래된 빌라 건물이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마주했던 생소한 감정을 담았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곡의 도입부는 마치 어릴 적의 기억으로 진입하는 듯 아득한 명랑함이 섞여 있었다. 이에 색소폰 특유의 음색이 무게감을 더하며 감정의 균형이 적절히 유지됐다. 하지만 피아노의 감정폭이 점차 확장되고 색소폰 역시도 리드미컬하게 높낮이를 변주하면서, 곡 전반의 에너지는 점차 극적으로 상승해 갔다. 옛 추억의 상실로 마주한 낯선 공백을 혼란한 정서로 표현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곡의 열기는 이내 잦아들었다. 감정의 파도를 매듭짓고 정돈된 마음가짐으로 돌아오려는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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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이야기를 마치 에세이처럼 담은 세 번째 곡, 그리고 뒤이은 네 번째 곡 ‘밤고양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섯 번째 곡 ‘자유로운 보폭(Free Strides)’는 마치 명상 끝에 얻는 깨달음처럼 보다 관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작곡가는 이 곡은 ‘비움이라는 훈련의 절정기에 쓴 곡’으로, ‘그냥 나답게 가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을 담아 보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어떤 올무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마음껏 실험해 보면서, 특히 멤버 3인의 캐릭터가 묻어나는 솔로 파트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작곡했다고 한다. 작곡가에게 비움의 의미는 한편으로 ‘나다움’이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설명대로 이 곡은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단언할 수 있는 순서였다. 자유분방하게 몰아치는 드럼 사운드가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았고, 피아노와 색소폰 역시도 각자의 톤으로 개성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세 악기의 호흡은 불일치와 일치의 경계를 거듭 넘나들며 긴장감 사이의 조화로움을 이루어냈다. 주인공의 자리는 쉴 틈 없이 바뀌었지만 때로는 세 악기가 전부 동시에 주연이 되는 듯했다. 리듬감 역시도 고조와 하강을 반복했는데, 그 다채로운 구성 사이에서도 모든 선율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 재즈의 정수가 밀도 있게 녹아들어 있었다.

 

뒤이은 두 곡, ‘May All Be Peaceful’과 ‘엄마의 정원’은 다시금 초반부의 분위기로 돌아와 관객에게 다정한 메세지를 전했다. 주변 모두가 내면의 평화를 이루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이 자리에 다다르기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부모님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완성된 곡들이었다. ‘비움’의 과정 끝에 조명하게 되는 가장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 본 프로젝트를 통해 작곡가가 가꿔온 내면의 색깔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순서였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Journey Unbound’로, 비움 이후의 자유로운 여정을 담은 곡이었다. 무언가의 끝은 곧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에, 그 출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 이를테면 기대감이나 두려움 등이 뒤섞인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잰 종종걸음을 연상케 하는 드럼과 피아노의 리듬감 사이로 색소폰의 음색이 감정적 높낮이를 더했다. 그 감정은 그저 등 떠밀린 채찍질이 아닌, 이 다음을 향해 발걸음을 채근하는 설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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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키워드는 비움이었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함께함이었다. 이들이 자신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티스트로서는 자신의 작품 세계 속 하나의 핵심만을 남기는 비워냄이었지만 작곡가이자 연주자, 누군가의 동료이자 가족으로서는 주변의 소중함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짐작하면서, 이번 공연이 표현하는 ‘비움’을 가장 잘 전달하는 아티스트 노트의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늘 채우는 것에 집중했지만,

비웠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정규 3집 앨범 “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깨달았다.

‘비운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없애는 행위가 아니라,

더 소중한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신아람 아티스트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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