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하나의 예술 작품은 그 작품을 만든 창조주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어떤 작품은 감상한 뒤 책장을 덮고, 미술관 문을 나서며, 선율이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작품 너머 이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까지 호기심을 뻗도록 한다.

 

특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추상회화 혹은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는 화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소설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선율을 만드는 일이라면, 과연 미술은 무엇을 만드는 활동인 걸까? 화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거나 상상해 내고, 손에 쥐고 있는 붓끝의 방향을 정해 쓱쓱 그려내는 걸까?

   

여기 잠시 한 사람의 뇌에 들어가보자. 이 사람의 머릿속 한편에는 신전 하나가 세워져 있다(우리 모두의 머릿속에도 있을 것이다). 이 신전에 모셔진 존재들은 불변의 존재들이 아니다. 귀스타브 모로가 있던 자리를 구스타프 클림트가 차지한다. 마찬가지로 그 안에 존재하던 피카소에게 실망해서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의 신전에 모셔진 존재들은, 지금의 ‘나’와 가장 감수성이 잘 맞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존재들은 새로운 작품들을 감상하는 나만의 기준이 된다.

 


20250425_내가 사랑한 예술가들_표지(평).jpg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미술사가이자 미술평론가인 마이클 페피엇이 쓴 에세이 중 27인의 삶과 예술을 다룬 책이다. 60여 년간 동시대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작품을 감상해 온 그의 신전 속 역사를 살짝 들춰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그간 스쳐 지나온 예술가들의 존재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그가 다룬 예술가들을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반 고흐,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부터 오브리 비어즐리, 도라 마르, 조란 무시치 등 다소 낯선 화가들까지 다양하다. 미술사에 굵직한 영향을 미친 작품을 만든 미술계 거장들의 삶을 읽는 일은 한 분야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하는 일인 동시에 그림에 담긴 시대상을 보는 일이었다.

 

책에는 다양한 시대를 살아냈던 화가들의 삶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특히, 예술가들끼리의 격별한 우정 혹은 갈등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과 그의 후원자였던 하리 케슬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크기변환]마욜과 케슬러.png

아리스티드 마욜(좌)과 하리 케슬러 백작(우)(출처: 위키백과)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예술이 가진 최고의 의의에 대한 신념만 뺀다면 서로 극과 극이었던 두 사람은 처음 만난 190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193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삶을 철저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_54쪽, 「아리스티드 마욜」

 

 

크고 작은 삶의 태도, 성적 지향, 계급 모두 정반대인 사람이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두 사람의 우정은 근사하게 느껴졌다. 이 책에는 이처럼 미술로 세상을 접하고, 세상을 그려내고, 사람들과 소통한 여럿 멋진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화풍을 중점적으로 다루기에 주요 작품명을 글로 소개하지만, 도판을 싣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27인 화가 중 인상 깊었던 3인의 화가와 궁금했던 그림을 함께 소개한다.

 

 

 

같은 시대, 다른 시선 - 피에르 보냐르(와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레크)


 

 

“그의 목표는 자기 작품에 담긴 의미를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것이었고, 배관공을 감상자로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린다는 말까지 직접 했었다.”

 

_77쪽, 「피에르 보냐르」

 

 

개인적으로 한눈에 보았을 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직관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과 여운을 즐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인상주의 그림을 즐겨보는 편이다. 미술 작품과 관계없이 음악도 글도 내게는 그렇다. 누가 보더라도 그 작품에서 예술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바로 느낄 수 있으면 싶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인용한 피에르 보냐르의 말이 와닿았다.

 

피에르의 그림은 일상 속 존재를 조명한다. “이해와 애정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뻔한 것들이 다시 생각해 볼만한 대상”으로 다가오도록 만든다.

 

반면,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다른 시선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다. 피에르가 일상의 사적인 순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았다면, 로트레크는 파리라는 도시의 이면―예를 들어 서커스, 매춘부, 하층민의 삶―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았다.

 


로트레크.jpg

 

피에르.jpg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트, <오페라 극장에서의 막심 드토마>(위) (출처: 위키피디아)

피에르 보냐르, <정원에서의 낮잠>(아래) (출처: Artvee)

 

 

두 그림만 비교해 보아도, 피에르는 주로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에 놓인 여성을 주로 캔버스에 담았다. 아내 마르트를 모델로 삼아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반면 로트레크는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같은 시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두 화가의 삶과 그림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의 시선은 피에르에 가까운가, 혹은 로트레크에 가까운가.

 

 

 

일탈 혹은 ‘비정상’을 조명하다 – 크리스티안 샤드


 

그림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어느 시대의 삶 속 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속 화가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다양한 시대상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크리스티안 샤드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 중 독특한 존재들에 끌렸다. 그래서 그 존재들을 자신의 캔버스 위로 옮겼다. 그런 샤드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샤드가 “자신의 흥미를 끌었던 사람들과 환경을 아주 밝고 배율 높은 렌즈를 대고 속속들이 캐보도록 우리를 유도”한다고 이야기한다.

 

 

[크기변환]1샤드.jpg

크리스티안 샤드(출처: 위키백과)

 

 

샤드가 살던 당시, 독일 베를린은 자유분방한 성적 해방, 전위 예술 등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예술이 존재했다. 샤드는 이 도시 속 인물들 속 ‘비정상’적이며 도시의 주변부에 머무는 독특한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샤드의 <새가슴을 가진 아고스타와 검은 비둘기 라샤>라는 그림은 서커스 단원 두 명의 초상화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각각 ‘새가슴’이라는 기형적인 가슴을 가진 백인 남성 ‘아고스타’와 보아뱀을 몸에 칭칭 감는 묘기를 선보였던 흑인 여성 ‘라샤’다. 사회가 만든 ‘정상성’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을 담고자 했던 샤드가 직접 두 사람을 모델로 섭외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샤드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평소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 혹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샤드는 아마도 그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끌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을 자신의 유일한 해방구로 삼은 사람 – 니콜 드 스탈


 

캔버스를 꽉 채운 물감의 두꺼운 질감이 느껴지는 그림. 니콜 드 스탈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든 감상이었다. 그의 그림 중 <지중해 풍경>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캔버스 너머 그의 생애를 처음 만났다.

 

저자는 그에 대해 “물감의 언어를 발명했다”고 표현했다. 붓이 아닌 나이프로 물감을 벗겨 캔버스 위에 바르듯 그려낸 그의 그림을 보면 고요하지만,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중해 풍경>은 스탈이 프랑스 지중해의 빛과 풍경에 매료되어 그린 그림이다. 제목을 모른 상태로 처음 보았을 때 이 그림이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단번에 알 수는 없었지만, 하늘색, 보라색, 파란색, 흰색 등 시원한 색들의 조합이 마치 바다를 연상시켰다. 자연스레 캔버스 앞에 놓여 있었을 풍경이 떠올랐다.

   

 

“살아오는 내내 나는 그림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려야만 살 수 있었다. 그것만이 온갖 인상과 감각, 불안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오직 그림을 통해서만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_278쪽, 「니콜 드 스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일찍이 부모님을 잃어 양부모님의 손에서 컸으며, 모두에게 혹독했던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거쳐 가족을 꾸렸지만, 일찍 아내를 잃었다. 이러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미술계에서 입지를 굳히던 스탈은 41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삶에서 큰 역경을 여러 번 마주해야 했던 스탈에게 그림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컸으리라 추측된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삶의 순간순간을 버티며 나아가는 힘을 얻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그리고 쌓아 올렸을 그의 그림 속 질감을 느끼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생의 에너지가 감상자들에게도 닿는 듯하다.

 

 

 

나만의 예술가 신전을 만드는 시간


 

 

“위대한 예술과의 교감은 그 무엇도 감히 깨트릴 수 없는 특유의 신성한 감동을 선사한다. (...) 예술은 거의 말 그대로 근심을 잊게 하고, 과거로 거슬러 가게 하며, 상상 속에서 미래로 가게도 해준다.”

 

_8쪽, 「들어가며」

 

 

예술가의 작품은 그의 삶과 떼어놓고 바라봐도 좋지만, 그의 삶을 이해했을 때 한 점의 그림에서 받을 수 있는 감상은 더욱 풍부해진다.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미술을 풍부하게 감상토록 돕는다. 그 교차점을 지나는 동안, 어쩌면 미술은 다른 예술에 비해 창작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간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가 없었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가 '신전'에 모실 새로운 화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미 오랫동안 예술가들과 함께해 온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간 좋아했던 화가와 한층 더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삶 속에 늘려가는 일은 분명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예술가들로부터 배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우리에게 삶에 맞서는 작은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