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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제껏 꽤 많은 책을 접했지만, 그 중에서도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책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오늘 소개할 이 책일 것 같다. 어린 시절에도 인상 깊게 읽어 좋아하는 책이었지만, 대학 입시 논술 시험에 실제 지문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21살 이후로는 더욱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내가 입학하게 된 대학의 논술 시험이 그 해 입시의 가장 마지막 순서였기에, 나는 당시 너무나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실제로 같은 대학을 한 해 먼저 입학한 친구가 시험 도우미로 참여하여 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후에 친구의 말에 따르면 당시 내가 합격 여부는 둘째 치고 얼른 모든 것을 끝내 버리고 싶은 눈빛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나를 시험장에서 다독여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책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평소보다 더 벅찬 감정이 밀려오고 심지어 울컥하기도 하듯, 논술장에서 마주한 이 책은 마치 어린 날의 내가 천천히 자라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보호자처럼 느껴졌다. 먼 도착지에 미리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존재 같기도 했다. 이런 직감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여러 대학 중 내가 이곳에 합격한 것이 어쩐지 운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다시 마주했을 때, 문득 말을 걸고 싶어졌다.

 

“어린 날의 내가 너를 펼쳐볼 때, 뿌듯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니? 성장한 내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긴장된 시험장에서 너를 만나게 될 거라는 걸 너는 알고 있었니?”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표지에 그려진 멍청하고 불완전한 동그라미 하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답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튼, 여러모로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은 이 책을 한 번쯤 꼭 소개하고 싶었다.

 

*

 

내가 논술장에서 다시 마주한 이 책은, 미국의 유대인 작가 쉘 실버스타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The Missing Pie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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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그래서 이가 빠져 슬픔에 찬 동그라미 하나가 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딘가 멍청해 보이기도 한 이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동그라미는 여행 내내 노래를 부르며 나아간다. “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나의 한쪽은 … 나 이제 찾아 나선다. 잃어버린 나의 한쪽을…“

 

신기한 점은, 이 불완전하고 슬픔에 찬 동그라미의 여정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때로는 유쾌하고, 심지어 그 불완전함이 동그라미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한 조각을 잃었기에 이 동그라미는 완전한 동그라미처럼 떼굴떼굴 빠르게 굴러갈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며 길 위의 벌레와 대화를 나누고, 꽃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햇살 아래에서 지쳐 헉헉대지만, 이윽고 내리는 소나기의 물줄기를 빈 틈에 가득 담아 다시 기운을 차린다.

 

들판을 지나고, 둥실둥실 바다를 건너고, 밀림을 거치는 여정 속의 모든 순간들이 바로 ‘불완전하기에 가능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동그라미는 우연히 한 조각을 만난다. 땅 위에 누워 있던 조각은 말한다. “그대 몸에서 떨어진 조각이 나는 아니오. … 그 누구의 조각도 나는 아니오. 나는 그저 하나의 조각일 뿐.”

 

이후에도 여러 조각들과 마주치지만, 어떤 조각은 너무 작고, 어떤 조각은 너무 커서 맞지 않는다. 어떤 조각은 너무 뾰족하고, 어떤 것은 ‘거의’ 맞는 듯했지만 결국 떨어져 나가고 만다. 어떤 것은 너무 ‘꼭’ 맞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아쉬운 조각들을 만나며 데굴데굴 여행을 계속하다… 언뜻 꼭 맞을 듯한 조각 하나를 만나게 된다.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는 반가운 마음보다 조심스러움이 앞선다. 동그라미는 천천히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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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진 조각이니?” 그리고 조각은 답한다.

글쎄, 모르겠는데.” 

“넌 그저 하나의 조각이길 원하니?” “글쎄, 어느 누구의 조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넌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싶진 않지, 그렇지?” “꼭 그렇지도 않아.”

“우린 서로 맞지 않을지도 모르고…..” “글쎄…….”

 

머뭇거리는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마치 첫 소개팅의 어색한 순간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망설임을 넘어 서로를 맞춰 본 동그라미와 조각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딱’ 맞는다. 그렇게 짝을 찾은 둘은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어 ‘데굴데굴’이 아니라 ‘떼굴떼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토록 바라던 완전한 모습이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을 줄 알았지만, 동그라미의 굴러감은 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위태로워진다. 이제는 너무 빨라져서 벌레를 만나도 멈추지 못하고, 꽃향기를 음미할 틈도 없다. 무엇보다, 더 이상 빈 틈이 없어진 동그라미는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다.“마치내 차아구나, 마치내 차아구나,,, 시나다 조오쿠…”

 

이윽고 생각에 잠긴 동그라미는, 조각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금 흥겹게 노래하며 굴러간다. 자신만의 속도로, 데굴데굴. “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나, 이제 찾아 나선다. 잃어버린 나의 한쪽을.”

 

여기까지가 이 책의 아주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깊고 섬세한 통찰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을 떠올리다 보니, 과거 웹진 롱 블랙(Long Black)에서 읽었던 한 인터뷰가 자연스레 생각났다. 바로 ‘행복학자’로 유명한 연세대 서은국 교수와의 인터뷰였다.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그는 ‘세계 100대 행복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 분야의 대가다.

 

인터뷰를 곱씹으며 읽다 보니, 오히려 불완전한 동그라미가 누구보다 행복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교수는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며, 생각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인간은 ‘쾌’가 깃든 경험을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지며,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내가 익숙하게 여겨온 상식과는 꽤 달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종종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믿고, 성공과 행복을 쉽게 동일시한다. 마치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어 빠르게 굴러가기만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라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잠을 줄이고, 인내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낸다. 하지만 어렵게 이룬 성공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허무함은, 어쩌면 행복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며, 오히려 그 여정에서 순간순간 경험해야 하는 감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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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긴 고통 끝에 얻은 성공이 극적인 쾌락과 만족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성공 역시 충분히 값지며 박수 받을 만한 것이다. 다만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완전한 동그라미가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삶이 아무리 멋있어 보인다 해도, 계속해서 긴긴 인생길을 굴러가야 하는 동그라미에게는 과연 반복되는 ‘작은’ 행복들보다 의미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의 동그라미는 아주 현명하게 내려준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꼭 맞춰 넣었던 조각을 조용히 내려놓고, 다시금 자신의 속도로 굴러간다. 벌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꽃향기를 맡고, 비가 내릴 때면 빈틈을 채우는 기쁨을 느끼며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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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더 이상 ‘결핍’의 사회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잉여’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서은국 교수는 이야기한다. 즉, 현대인에게 어떻게 이 잉여의 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는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만의 행복의 스위치를 자주 켤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 고단한 인생을 그나마 덜 퍽퍽하게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종착지 없는 인생에서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것이 멋져 보일지 언정, 생각만 해도 숨이 차버려 쉽게 지쳐버릴 것 같다.

 

또한 인터뷰를 읽다 보니, 서은국 교수는 마치 불완전한 동그라미의 인간화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최애 음식으로 ‘평양냉면’을 꼽는다. 그러나 그가 살던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평양냉면을 찾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삶의 재미 요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명예롭고 안정적인 미국 교수직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행복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한 조각을 잃어버려 행복한 불완전한 동그라미와 닮아 있었다.

 

*

 

오랜 고통 끝에 마주하는 오아시스 같은 쾌락은 큰 행복처럼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행복이 더욱이 강도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아시스가 큰 행복이라면 내 인생은 그만큼 메마른 사막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오아시스 같은 행복보다는, 초록의 산책길 옆 졸졸 흐르는 개울처럼 잔잔하고 자주 마주할 수 있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덧붙이자면, ‘행복(幸福)’의 ‘행’은 ‘다행(多幸)’의 ‘행’과 같다고 한다. “나는 행복해야 해!”라는 강박보다는,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 끼를 맛있게 먹었고, 바쁜 와중에도 좋아하는 친구와 수다를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라는 소소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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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행복할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행복 습관을 소중히 지켜가며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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