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할 무렵부터 내 손에 쥐어졌던 책이 있다. 바로 『누가 내 머리에 똥을 쌌어?』 같은 그림책이다. 귀엽고 엉뚱한 두더지와 다채로운 색감, 반복적인 구조 속에 담긴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당시엔 그저 재미로 읽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첫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유머와 여운,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장면들. 우리는 그렇게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언젠가 나만의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품고 있다면,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는 한 번쯤 마주쳐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책 제작의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자의 관점에서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창작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성장이 일어나는지를 진심 어린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림책 창작의 길잡이이자 동행자
이 책은 그림책을 처음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총 7단계로 창작 과정을 구성하고 있다.
1단계 주제 찾기부터 시작해, 2단계 이야기 구성, 3단계 캐릭터 만들기, 4단계 더미북 구성, 5단계 그림 스타일 확정, 6단계 피드백과 수정, 7단계 완성 및 출판까지. 각 단계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실습 워크시트가 수록되어 있어 독자가 실제로 따라하며 창작에 도전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가이드북’의 형식을 넘어서 있다는 점이다. 실제 그림책 작가의 고민과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치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 안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특히 교사, 강사, 예비 작가 등 다양한 독자층을 고려하여 구성된 실제 수업 사례와 창작 교육 자료는 교육 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작가와의 대담: 그림책이라는 삶의 언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윤나라 작가와 이서연 작가의 대담이다.
두 사람이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마주한 감정의 곡선, 자신만의 작업 루틴, 영감의 순간, 그리고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들까지 모두 솔직하고 깊이 있게 담겨 있다. 특히 ‘그림책 작가는 늘 무엇을 관찰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때로는 침묵 속에서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는 단지 그림책 창작에만 머물지 않고, 창작 전반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대담 속에서 두 작가는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한다. 창작자에게 이야기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삶의 조각이며,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엮어내는 작업이 곧 그림책 제작인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창작의 리듬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는 무엇보다 ‘과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결과물을 향한 조급함보다는, 자신만의 속도로 그림책을 완성해나가는 여정을 응원한다. 이 책은 말한다. "그림책은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며 천천히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각 장마다 배치된 실전 과제는 단지 과제 수행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그리고 싶은 이야기와 표현하고 싶은 감정에 천천히 다가가게 만든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따라 하기 방식의 창작을 넘어, 자신만의 색과 언어로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길에 필요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누구나 ‘이야기’를 품고 있고, 그것을 세상에 꺼내놓을 자격이 있다고. 비록 지금은 그림을 잘 못 그릴지라도, 언젠가는 나만의 선과 색으로, 나의 시간을 담은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기를. 이제 필요한 건 단 하나, 조심스레 첫 장을 넘기는 용기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림책은 단순히 ‘글이 있는 책에 그림이 붙은 것’이 아니라, ‘그림이 서사의 주체가 되는 매체’다. 그렇기에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은 곧, 나를 알아가며, 나의 이야기를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동시에 세상과 가장 따뜻하게 연결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