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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이자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체로 유명한 화가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 탄생 165주년을 기념 [아르누보의 꽃 : 알폰스 무하전]을 관람하기 위해 마이아트뮤지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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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체코 출신의 젊은 화가 알폰스 무하는 어느 날 연극 <자스몽다>의 포스터 작업을 의뢰받게 된다. 완성된 포스터는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파리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무하는 단숨에 대중과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무하는 '자스몽다'의 성공 후, 슬라브 민족의 전통과 신화적 요소를 결합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한다. 이 양식은 유려한 곡선, 세밀한 장식, 신비로운 여성상으로 특징지어지며 '무하 스타일'이라 불리게 된다.


전시는 무하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프롤로그를 포함한 5개의 장으로 나누어 그가 남긴 예술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했는지를 조망하고 있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삽화가로 활동했던 무하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전 과정을 관람할 수 있었다.  1885년, 25세였던 무하는 쿠엔 벨라시 백작의 후원으로 유럽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서 2년간 유학하며 역사화와 종교화를 중심으로 한 회화를 교육받고, 그 후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과 클라로시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후원 관계가 종료되며 학비는 물론 생활비마저 마련하기 어려운 재정적 상황을 맞게 되고, 삽화가로서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는 인쇄 기술이 발달하며 출판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고 마침 무하의 뛰어난 드로잉 실력은 출판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생계를 위한 삽화 작업 중에도 예술과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예술적 탐구를 지속했던 무하는 전통적인 미술 교육과 당대의 새로운 예술을 두루 경험하며 성장했고, 삽화로 구축한 섬세한 드로잉은 후에 '무하 스타일'의 기반이 되었다.


[1장 '뮤즈가 건넨 붓, 화가가 그린 전설']에서는 무하에게 결정적 전환점을 가져다 준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무하를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지스몽다' 작품이 유독 인상적이었는데, 이 포스터로 유명해진 무하는 상업 석판 인쇄 업계에 새로운 화풍을 퍼트리게 되었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날, 인쇄소에서 작업할 화가를 구할 수 없었던 사라 베르나르의 극단이 무하에게 급하게 요청해서 탄생한 포스터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의상과 커다란 잎사귀를 들고 있는 배우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지는 '동백꽃 여인', '백합의 사라 베르나르', '연인들' 등 연극 포스터를 넘어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전시가 이어졌다. 특유의 섬세하고 반짝이는 분위기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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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아르누보의 꽃']에서는 무하가 상업 포스터와 장식 패널을 통해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잡는 과정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르누보는 그 화풍과 특징적인 장식, 섬세한 색감 및 풍부한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아르누보의 진정한 철학은 누구나 평등하게 예술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장식 패널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몇 프랑으로 살 수 있었다. 무하 역시 '국민을 위한 예술'을 열정적으로 응원했고 다양한 주제의 장식 패널을 만들었따. 대중적인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두 개 혹은 네 개의 연작으로 다양한 품질의 용지나 새틴, 비단 등에 인쇄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하루의 단계를 네 명의 다정한 여성으로 표현한 '하루의 시간 - 아침의 눈뜸, 낮의 빛남, 저녁의 관조, 밤의 휴식'이라는 작품이었다. 마치 높은 아치형 창문처럼 보이는 정교한 틀 속에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배경 속에 여성들이 서 있는데, 연작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광고에 의하면 '12색에 금색까지 더 한'이 연작은 40프랑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3장 '무하 오디세이']에서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국제적인 명성을 확고히 한 후, 그의 활동이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확장되는 과정 조명했고, [4장 '슬라브의 화가']는 조국으로 돌아온 무하의 마지막 여정을 그렸다.


그 중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작품 '슬라브 서사시'는 슬라브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20점의 대형 회화 연작으로, 1910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되었다. 이 연작은 체코를 비롯한 슬라브 세계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무하의 필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1928년 체코 독립 10주년을 기념하여 무하는 이 연작을 프라하 시에 기증하였다. 웅장함과 섬세함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하는 포스터, 삽화, 회화, 장식, 미술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보다 널리 보급하며, 예술이 인간과 사회를 연결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 화가였다. 여전히 반짝이고 아름다운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기계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익숙한 삽화, 상업물을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무하라는 화가에게 감탄을 느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무하스타일'을 흠뻑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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