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이라는 말을 보고 곧장 이 책에 끌렸다. 한국 교육 과정 내 예체능 분야, 일명 ‘음·미·체’ 중 가장 낯설고 어려운 분야가 ‘미술’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몸을 움직이라고 하면 쭈뼛쭈뼛 움직이고, 소리를 내라고 하면 미묘한 음이라도 내면서 참여했지만, 유독 미술은 손과 뇌가 영 단합을 못했다. 손이 따라주지 않으니 두뇌도 지쳐갔고, 급기야 미술은 나와 잘 맞지 않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뿌리박혔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있어 보이는 문화시민’이 되고 싶어 종종 전시를 보러 미술관에 향하곤 하지만, 작품과 미묘하고 어색한 첫인사를 나눈 뒤 다음 작품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작품 감상 후기 또한 ‘예쁘다, 낯설다, 특이하다’ 등의 표현에 머물렀다. 작품이 좋을 땐 어떤 점이 좋은지 뭉뚱그려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난감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작품은 나에게 묘한 패배의식과 위압감을 안겨주어 허전했다. 그럼에도 미술과 친해지고 싶다는 진심이 항상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겉표지에 칭찬이 자자한 책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다 읽은 후 겉표지에 적힌 추천사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 노아 차니는 미술의 시작점인 선사시대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현대미술까지, 작품 감상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용어, 상징들을 두루 다룬다. 미술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독자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해 보이는 용어, 상징, 배경지식들을 친절하게 풀어낸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미술 감상의 핵심만 잘 풀어 담은 미술관 공략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회독을 한 후 훌훌 털어내는 책이 아니라, 책장에 백과사전처럼 꽂아두고 미술관 혹은 전시에 가기 전 여러 번 꺼내 읽으며 지식을 흡수하고 싶은 책이다.
목차
1장 이것도 예술일까?
2장 미술의 오브제와 기법
3장 크리벨리의 피클 찾기
4장 작품 30점으로 알아보는 미술 사조
5장 조각의 역사
6장 훌륭한 미술품에 나쁜 일이 생길 때
7장 숲속의 디지털 불빛
8장 프로이트는 뭐라고 말할까?
9장 미술품과 경제적 가치
10장 수수께끼 같은 미술사
11장 미술의 미래
목차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에서 3장까지는 ‘몸풀기’다. 본격적인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앞서 필요한 핵심 지식들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두 가지의 접근법을 제시하며 미술을 정의한다. 최초의 예술 작품들을 통해 본능적인 ‘인간의 창작 욕구’를 강조한다. 미술의 정의 및 시작을 살펴본 뒤, 2장에서는 미술의 오브제와 기법을 다룬다. 미술 작품의 양식인 회화, 소묘, 조각, 판화 및 사진에 따른 분류와 각각의 제작 방법을 살피며 미술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다. 3장은 실제 미술 작품을 바라볼 때 필요한 상징 및 알레고리를 다룬다. 작품 속 소품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찾아가는 과정은 비밀 언어를 공유하듯 색다르며, 본격적인 미술 감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의 가장 핵심 내용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4장과 5장이다. 일명 미술 ‘컨닝페이퍼’라는 작가의 말처럼,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4장은 회화 작품 30점을 통해 미술사조 전반을 훑고, 5장은 37점의 조각 작품을 깊이 살펴보며 미술의 역사를 시간 흐름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당장 몇 시간 뒤 전시를 보러 나서야 한다면, 4장과 5장만 빠르게 훑어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기에 부담이 된다면, 이 두 장을 먼저 읽으며 회화와 조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은 뒤 추가로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을 소제목에서 찾아 읽어볼 수도 있다.
6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은 1장부터 5장까지 열심히 배운 미술 작품들이 현재에 이르러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다룬다. 특히 7장, 8장의 경우 미술사 연구가 과학과 접목해, 학제적 연구로 뻗어나가는 등 최근의 동향을 제시한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의 미술사학 내의 이슈, 위치 등을 다룬다는 점이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의 장점이기도 하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한 권을 다 읽은 후, 한국에 있는 내 방에 앉아 해외의 유명 미술관 도슨트의 설명을 들은 듯 마음이 풍족해졌다. 책에 언급된 작품의 실물이 궁금하면, 옆에 있는 노트북을 켜 작품의 상세한 사진까지 살펴보고,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원제인 ‘THE 12-HOUR ART EXPERT’에 걸맞은 구성이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은 시간 동안 미술의 시초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뻗어나가는 미술의 방향성을 선형적으로 꼼꼼히 구성한다. 미술을 잘 모르는 초심자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 재밌게 읽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책 한 권을 읽고나면 한 학기의 미술사 교양 강의를 들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대학에 입학해 첫 학기에 들었던 ‘서양미술사의 이해’ 수업의 필기본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내용을 다시 읽는다면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감회를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