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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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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5월은 왕가위의 달이라는 말을 봤다. 5월 1일은 <중경삼림>, 5월 30일은 <타락천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글을 보기 전, 나는 이미 5월을 왕가위 영화로 맞이했다. 그 이유는 크게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단순하다.

 

발단은 이렇다. 5월부터는 연휴도 있겠다, 연휴 기간에 하루에 영화 두 편씩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개수를 채우기 위해 넷플릭스 영화 목록을 뒤지던 중, ‘1시간 반짜리’, 즉 100분이 넘지 않는 영화를 발견했다. 그게 바로 <중경삼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기가 막힌 우연을 눈치챘다. 나, 5월 1일에 중경삼림을 보게 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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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연은 나를 왕가위 영화와의 기막힌 ‘인연’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주변 친구들이 한창 홍콩 영화에 빠져 결국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내 마음의 벽은, 이 우연의 일치 앞에 쉽게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5월 초 연휴 내내 방구석 ‘왕가위전’을 열었다. 상영 시간표는 <중경삼림>, <타락천사>, <아비정전>,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2046> 순이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게 만든 홍콩 배우는 과연 누구일까?(물론 부제목에 언급했지만, 잠시 모르는 척 넘어가 보자.) 역시 홍콩 영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 장국영? <중경삼림>에서 5월 1일의 우연을 만들어낸 금성무? 혹은 <아비정전>의 아련한 짝사랑을 연기한 유덕화? 여기까지 왔으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언급되지 않은 바로 그 사람. ‘양조위’다.

 

 

 

<중경삼림>의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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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 역대급 등장씬이라고 꼽히는 게 바로 강동원의 ‘우산씬’이던가. 하지만 나에게 역대급 등장씬은 양조위의 <중경삼림>이다.

 

순찰 경찰이 모자를 벗어 올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가다듬으며 샐러드를 주문하는 바로 그 장면. 그 짧은 등장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금성무를 잊을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해당 사진은 다른 장면이니, 내가 느낀 등장씬의 충격을 느끼고 싶다면 꼭 영상을 직접 보길 바란다.)

 

 

 

<화양연화>의 주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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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양조위하면 떠올리는 ‘눈빛 연기’는 <화양연화>에서 절정에 달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려진과 주모운은 서로의 배우자들이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된다. 둘은 배우자들의 만남을 이해해보기 위해 그들의 만남을 따라해 보며 점차 가까워진다. 배우자들의 외도 사실보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기 시작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영화 내내 노골적이거나 짙은 스킨십은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농도 짙은 눈빛은 아슬아슬하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련함, 욕망, 죄책감이 뒤섞인 주모운, 양조위 배우의 뜨거운 눈빛은 <화양연화>를 본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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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양조위의 훌륭한 연기는 <해피투게더>, <2046>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왕가위의 영화를 를 연달아 보며, 한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존재하는 배우의 매력을 새삼 느꼈다.

 

특히 <화양연화>와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진 <2046>에서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 주모운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양조위라는 배우를 다각도로 조명한 왕가위 영화를 떠올리면,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 <바빌론> 속 대사가 생각난다.

 

["알아요. 마음 아프겠죠. 아무도 비극을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100년 후에, 당신과 나 둘 다 죽고 난 후,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보는 순간 당신은 다시 살아날 거예요." / "I Know it hurts. No one asks to be left behind. But in a hundred years, when you and I are both long gone, any time someone threads a frame of yours through a Sprocket, you will be alive again"] - Elinor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다.

 

지금 양조위 이름을 인터넷 검에 검색하면 백발의 아저씨의 이미지가 상단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 양조위라는 2000년대 초반, 젊고 훈훈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조금, 아니 못해도 20년은 일찍 태어날 걸 그랬다. 배우는 자신의 젊고 찬란했던 시절과 연기를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직업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양조위의 필모그래피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설레고 기대된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또 누구보다 금방 빠져나오는 ‘금사빠’인 나지만, ‘눈빛 연기’하면 오랫동안 양조위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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