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옛것을 좋아한다. 필름카메라, 테이프 캠코더, 만화책 같은 것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요즘 애들 중 가장 요즘 애들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CD’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실물로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CD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듣기보다는 소장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네모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담긴 앨범 아트워크와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앨범을 듣는 행위는 단순히 노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다짐과 과정이 담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를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앨범 전체를 집중해서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우연히 저렴한 일체형 CD 플레이어를 하나 샀고, 음질은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CD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그 뒤로는 모으는 목적이 아닌 듣기 위한 목적으로 변해 CD를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모두 모을 정도로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이제는 LP나 카세트테이프도 수집하기 시작했고 카세트를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를 중고로 구했다.
이 글은 단지 CD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노력해야 즐길 수 있는 LP, 테이프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전에 필름카메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했던 ‘오감’과 ‘손맛’이라는 키워드는 CD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경험이자 가치 있는 소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뚜껑을 열고 CD를 꺼낸 다음, 일체형 플레이어라면 CD를 끼우고 선을 ‘딸깍’ 아래로 내리면 CD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라디오처럼 생긴 멀티플레이어나 네모난 플레이어는 '딸깍' 뚜껑을 열고 CD를 넣은 뒤 다시 닫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돌아간다.
트랙이 끝날 때마다 ‘삭—’ 하는 소리와 함께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마지막 곡이 끝나면 음악이 멈추는 동시에 열심히 돌아가던 CD의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또 스트리밍 사이트 음원에서 들을 수 없는 기계 자체의 자글자글한 노이즈 소리도 함께 들린다. 모든 과정이 하나의 감각적 경험이 된다.
CD는 자연스럽게 앨범 단위로 감상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여러 번 듣다 보면 애정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들으니 별로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경험에 따르면 CD로 들을 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음악들이 따로 있다. 예를 들면 Mac DeMarco나 Cigarettes After Sex처럼 음악적인 색깔이 일관된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CD로 들을 때 특히 매력이 돋보인다. 앨범 전체를 따라가는 감정의 흐름이 일관되야 지치지 않고 많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검정치마의 앨범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로우파이 데모 앨범은 CD 플레이어로 들을 때 유독 좋다. 거친 질감의 음악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참 신기한 경험이다.
나는 ‘번거로움’과 ‘가치’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기도 하다. 원래 알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그 반짝이고 두근거리는 순간은 우리의 삶까지 작은 변화를 가져온다.
CD가 돌아가는 소리, 손으로 디스크를 넣고 꺼내는 행위, 앨범 하나를 끝까지 듣는 경험. 그 모든 것들이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서 ‘겪는 것’으로 바꿔준다.
물론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해서 에어팟으로 듣는 음악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플라스틱 기계의 버튼을 직접 눌러 음악을 재생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