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달콤한 R&B, Softstorm 장르의 밴드 The Gap Band의 앨범을 CD나 카세트테이프로 구하기 위해 후쿠오카로 향했다.
일본 밴드도 아닌데 굳이 일본까지 간 이유는 한국보다 밀도 있는 레코드 가게가 많다고 생각해 원하는 앨범을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다.
이 앨범을 꼭 사야 하는 이유는 Stay With Me 트랙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벅차오름이 느껴졌던 곡이다. 마치 무대가 끝난 뒤 크레딧과 함께 흐를 것 같은 찬란한 음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곡을 ‘실물 앨범’으로 손맛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듣고 싶었다. CD나 카세트테이프 특유의 노이즈와 함께.
후쿠오카에 도착해 총 네 곳의 레코드숍을 방문했다.
1. Tower Records
가장 먼저 간 곳은 가장 유명한 타워레코즈였다.
처음엔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정말 많아서 한국의 교보문고 핫트랙스 느낌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가장 다양한 장르와 물량이 많았던 곳이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 가는 레코드 가게라 천천히 둘러봤는데, Charli xcx의 일본판 CD가 눈에 띄어 소장욕구가 들어서 바로 구매했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티팝의 대표 주자 야마시타 타츠로 코너도 작게 있었다. 더 좋은 매물이 있을까 싶어 일단 타워레코즈의 슬로건인 ‘NO MUSIC NO LIFE’ 굿즈들이랑 몇 가지 소품만 구매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걸음들이 괜스레 행복한 기분을 선사해줬다.
2. Border Line Records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Border Line Records이다.
나는 100세 인생 중 일부를 살아가고 있고, 전세계 레코드숍을 다 가본 건 아니지만 이곳은 정말 오래 기억을 남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특히나 천장에 빼곡히 걸린 레코드들과 저렴한 가격, 다양한 장르의 구성. 특히 록과 재즈 중심의 셀렉션이 인상 깊었다.
작년에 오사카 레코드 가게를 갔을 때 직원에게 재즈 음반을 추천받기 미션을 했던 게 생각나 이번에도 보사노바 재즈와 일본 재즈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직원분은 고민도 없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며 하나를 추천해주셨고, 일본 재즈 앨범도 여러 장 소개해주셨다.
그런데 그중 한 앨범 커버에 비둘기가 그려져 있었고, 나는 비둘기를 정말 싫어해서 그건 포기했다. 이후엔 번역기를 돌려 The Gap Band IV 앨범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돌아온 건 슬픈 대답뿐이었다.
그래도 CD 세 장을 구매하며 다음에 갈 곳에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나왔다.
3. Ticro market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근처에 있는 ticro market records였다.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명반들이 골고루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R&B 음반은 부족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LP가 아닌 CD와 카세트테이프만 사겠다고 다짐했는데, 이곳은 LP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밀려왔다.
나는 레코드 가게에선 ‘눈이 마주친 아는 앨범’을 만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해 무조건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음반이 있는 가게에선 꼭 아는 앨범이 있나 살핀다. 이번에도 눈이 마주친 앨범이 있어 CD가 있냐고 물어봤지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점점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턴 내가 정한 또 다른 여행 미션이 있었다. 레코드가게에서 음반을 구입하고 필름카메라로 인증샷 찍기다. 이 미션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사야 했는데 어떤 음반에 야마시타 타츠로 이름이 써있는 걸 보자마자 고민도 없이 구매했다.
4. 70’s Records
마지막 희망으로 향한 곳은 70’s Records. 리뷰에 오래된 음반이 많다길래 간절한 마음을 안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좁고 담배 냄새가 가득한 공간,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펑크 음악. 가장 오래된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비틀즈와 록 음반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기념 삼아 예전에 좋아했던 록 앨범이라도 사볼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직원분께 The Gap Band 앨범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그 가수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솔드아웃됐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밀도 있는 레코드 가게에 방문한 것만으로 크게 만족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BOOKOFF 매장도 들렀지만 역시나 LP뿐이였다.
지금까지 갖고 싶던 앨범이나 카세트테이프는 전혀 구하지 못해 속상하고 당황스러웠고 결국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왔던 길을 다시 걸어 타워레코즈로 향했다. 그리고 야마시타 타츠로와 호소노 히루오미의 명반들을 사오며 나의 미션을 약 60%는 성공한 여행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짧은 여행을 통해 느낀 건 후쿠오카의 레코드숍은 록과 비틀즈 음반이 유독 많은 도시라는 점이다. 비록 원하던 음반은 구하지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재미와 새로운 앨범들을 발견한 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The Gap Band 앨범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기에 다음 목적지는 도쿄다.
이처럼 목적이 있는 여행은 더 풍부한 감정과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긴다. 같은 즉흥적인 여행이라도 마음속에 명확한 주제가 있는 여행은 훨씬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