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곡의 주인공,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밴드의 프론트맨인 장기하는 ‘눈뜨고 코베인’이라는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며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산울림의 실험적인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 배철수를 통해 접한 한국어 가사의 매력, 그리고 비틀즈의 독창성과 대중성, 너바나와 메탈리카 등 다양한 밴드 음악을 즐기며 음악적 취향을 다져갔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군 복무 중 군악대에서 활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손에 국소성 이긴장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프로 연주자가 아니라 멋진 뮤지션이 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 결심이 바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작점이 되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곡을 함께 연주할 멤버들을 모으던 중, 제작에 도움을 주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밴드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초기 멤버는 장기하(보컬, 기타, 퍼커션), 정중엽(베이스), 이민기(기타), 김현호(드럼), 미미시스터즈(코러스 및 안무)로 구성되었다. 밴드 이름은 신중현과 엽전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누구와 누구들’ 형식을 따랐을 가능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특별한 의미 없이 지은 이름이라고 밝혔다.
2008년, 독립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은 싱글 <싸구려 커피>를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데뷔곡 싸구려 커피 부터 시작해, 전통과 실험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대중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포크부터 전자 사운드까지 아우르며 ‘오래된 대중음악’과 ‘촌스러운 요즘 음악’을 재치 있게 조합하였고,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고 위트 있게 표현한 가사는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나를 받아주오>, <말하러 가는 길>, <오늘도 무사히>,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같은 곡들은 단순한 멜로디에 포크 스타일을 가미해 옛 음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었다.
장기하의 음악은 무엇보다 직관적인 한국어 가사가 큰 특징이다.
4집 앨범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랑이 어딨나요>에서는 사랑, 일상,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소소한 감정들을 대화체로 풀어내며 청자와 더욱 가까운 거리를 형성했다. 예를 들어 노래 <ㅋ>에서는 “쿵쿵”, “쿨쿨”, “콕콕콕콕”과 같은 의성어를 반복하여 리듬감을 만들고, 듣는 이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여 중독성을 형성했다. <가나다>에서는 삼행시 형식을 차용해 “가는 길이지만 나를 생각해요 다른 사람에게”라는 가사로 독특한 전달 방식을 보여주었다. 5개의 앨범 속 모든 곡에 한국어 가사만을 사용하였다.
그들의 곡들은 감정의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랑이 어딨나요>, <우리 지금 만나>, <정말 없었는지> 등에서 다양한 시점의 사랑과 관계를 탐색하며 감정의 혼란을 음악적 다이내믹으로 표현한다. 특히 <기억 안 나>는 전통 록 인트로를 통해 록 사운드를 적절히 활용해 그들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말하듯 노래하는 창법, 반복적인 가사 구조, 의성어와 의태어의 운율감은 장기하와 얼굴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형성하였고 이러한 구성은 진솔한 공감과 음악적 신선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물론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이들의 꾸준하고 독창적인 시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특징들이 잘 녹아 있는 1집: 아무 것도 없잖어, 2집: 그렇고 그런 사이, 3집: 사람의 마음, 4집: ㅋ, 5집: 나란히 나란히를 들어보길 추천한다.
장기하의 공연(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라이브)을 여러 번 관람한 경험이 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23 강릉아트센터 연말 콘서트로, <별일 없이 산다> 로 시작해 직설적 가사를 리드미컬한 밴드 사운드로 풀어내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극장 공연으로 좌석 위주의 불편한 환경이었음에도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에 몰입하며 함께 호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인천 플로우 뮤직페스티벌에서는 무료 지역축제라는 특성상 다양한 세대가 함께 있었고, 장기하 팬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이 점차 모여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70년대 밴드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 리메이크 무대는 관객들의 손동작까지 이끌어내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많은 음악에서 영어 가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일관되게 한국어 가사만을 사용해왔다. 이는 한국어 특유의 운율과 리듬감을 살려 관객에게 친숙함을 전달하며, 반복적인 구조로 인해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한다. 2022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우리 지금 만나>를 부르며 관객들과 번갈아 호응을 주고받는 모습은 그 예 중 하나로, 한국어 가사의 효과를 잘 보여주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데뷔 이래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일관성과 실험정신을 유지해왔다. 그들의 음악은 단지 독특함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 진솔한 감정을 전달하며, 언어와 리듬, 표현 방식의 경계를 허물었다. 공연에서도 이러한 음악적 세계관을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구현해냈고, 나는 그 경험 속에서 그들이 왜 특별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오랜 시간 기억될 진정성 있는 예술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