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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제1회 기획전 《틔움》

 

참여 작가 MIA, 나른, 대성, 유사사, 은유 (5인)

전시 기간 2025년 4월 4일(금) – 4월 14일(월) (11일)

전시 부문 회화,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서적 등

전시 장소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7가길 3 B1 MatMul 맷멀

운영 시간 매일 10:00-20:00 (4월 5일 - 4월 6일 10:00-17:30)

주최 · 주관 아트인사이트

 

 

"그 감정들이 갈망하는 것은 해소가 아닌 시선이다." 성수동 지하의 작은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문장이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첫 기획전 《틔움》은 이렇게 시작된다. 체에 걸러지지 않은 불순물과 같이 남아있는 감정들, 그것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를 제안하는 전시.

 

우리는 매 순간 감정을 정의하고, 관리하고, 때로는 억누르고, 때로는 통제하도록 요구받는다. 하지만, 《틔움》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그냥 있게 두자'는 것. 그 감정이 어떤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지보다, 그저 존재하도록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다섯 개의 세계, 다섯 가지 틔움의 방식

 

북 아티스트 'Mia(이서연)'의 작품 『나는, 이제 Ça va』는 화려한 실내 공간과 변화하는 하늘을 대비시키며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고백을 담는다. 프랑스어 'Ça va'(괜찮아)라는 작은 위안과 함께. 리소프린팅 기법으로 표현된 흐르는 구름의 모습은 화자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비추어냈다.

 

일러스트레이터 '나른(장의신)'의 작품들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단어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감정들의 세밀한 결을 보여준다. 〈적막〉과 〈다정함〉 시리즈는 연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대성(정주희)'의 작품은 위선이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존재의 근원〉과 〈사랑의 회초리〉는 사교육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일종의 우화적 서사로, 동물 캐릭터들을 통해 공동체적 가치를 환기한다. 다른 작가들의 개인적 감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과 달리, 사회 구조적 문제로부터 오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유사사(오예찬)'의 작품 〈선잠〉과 〈총총〉은 마치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어슴푸레한 잔상 같았다. 정교한 펜 드로잉 선으로 표현된 이 작품들은 "어렴풋한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시도"라고 작가 노트에 적혀 있었다. 특히 〈총총〉에서 시도한 반투명한 종이 조각의 조합은 감정의 층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왔다. 작품 앞에 섰을 때,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미묘한 침범감과 공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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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 (유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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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트

 

 

마지막으로 '은유(박가은)'의 〈별바라기〉 시리즈는 어린 시절의 혼란과 상처를 사막이라는 공간에 비유하며, 성장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펼쳐 보인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각화한 이 작품은, 실패와 아픔이라는 감정을 넘어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 일러스트는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 속에서 더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완결된 이야기'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섯 작가 모두 감정을 정의하거나 규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 감정이 머무는 순간, 감정이 변화하는 흐름을 포착한다. 마치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새싹처럼, 감정의 '틔움' 상태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각 작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감정을 번역한다는 것이었다. Mia는 구름과 편지로, 나른은 연인의 일상으로, 대성은 우화적 동물 이미지로, 유사사는 섬세한 선으로, 은유는 환상적 여정으로. 이처럼 다양한 번역 방식은 감정의 복합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여러 형태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객과의 소통, 컬렉팅의 새로운 시도


 

전시는 작품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비공개 입찰 방식의 상설 경매 시스템은 전시 기간 내내 운영되어,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를 제안하고 소유할 기회를 준다. 이런 판매 방식은 작품 컬렉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예술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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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현장에서는 작가들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굿즈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작가들의 작업 노트와 에세이를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이면의 맥락과 작가의 생각을 함께 읽어낼 수 있었다. 이는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경험을 제공했다.

 

 

 

작은 감정의 위대한 틔움

 

"그 눈빛은 완고하게 닫혀 있었던 마음 한구석의 단단한 벽을 틔우고, 메마르고 굳어진 땅 위로 새순을 틔우며, 마침내 막혀 있었던 숨통을 틔워낸다." 《틔움》은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는 감정들, 억누르는 감정들에 대한 관심과 인정을 요청한다. 감정을 분석하거나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게 두는 것. 그것이 이 전시가 제안하는 '틔움'의 의미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명확히 정의하고 분류하고자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그런 분류를 거부한다. 《틔움》은 그런 모호함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에 틔워지고 있는 작은 감정들과 마주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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